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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코털을 건드린 것일까? 여우굴에 불을 피운 것일까?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달(2월) 28일 미 백악관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 밴스 부통령과 벌인 설전의 후폭풍이 몹시 거세다. 미국은 코털을 건드린 우크라이나를 응징이라도 하듯, 모든 지원을 중단할 기세(미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보도)다.
반면 유럽과 캐나다 등 서방 일부, 미국 민주당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옹호하며 우크라이나의 전쟁 종식과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 조급해하는 트럼프 행정부를 압박한다. 유럽은 2일 런던에서 열린 긴급 정상회의에서 미국이 빠진 대(對)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을 논의하고 유럽의 새 안보체제 구축에도 나설 태세다. 유럽 주둔 미군의 일부(2만명) 철수도 현실화할 우려가 높아졌다(워싱턴 포스트 2일자 보도). 백악관 충돌을 계기로 유럽에서 아시아로 전략적 중심 추를 옮기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구상은 곧 현실로 닥쳐올 조짐이다. 여우굴은 곧 비게 되지 않을까?
불행하게도 어떤 경우든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에 일사분란하게 맞서온 미국과 유럽의 분열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백악관 충돌이 벌어진 뒤 거의 사흘 동안(시차 감안), 당사지인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물론, 유럽과 러시아도 이번 사태 대응에 긴박하게 움직였다. 비난하고 지지하는 각국 고위 인사들의 발언이 잇따르고, 사태를 분석하고 전망하는 언론 보도가 쏟아졌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젤렌스키 지지-트럼프 비판 시위도 열렸다. 궁극적으로는 전쟁 종식 방안을 놓고 벌어지는 미-러-우크라-유럽간의 이해 다툼이지만, 직접적인 동기는 4자간 자존심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4인4색, 서로의 셈법이 다르니, 백악관 충돌의 후유증이 오래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백악관 충돌로 가장 불안한 쪽은 역시 우크라이나다. 러시아와 전쟁을 계속하는 데 가장 큰 지원국인 미국의 국민 감정을 건드려놨으니 서둘러 봉합해야 할 처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백악관 충돌 다음 날인 1일(현지시간) 오후 미국의 지원에 대한 감사를 시작으로, 전날의 발언을 해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장문의 글을 엑스(X·옛 트위터)에 올렸다. 글은 "(전략적 파트너 관계인) 서로의 목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화가 정직하고 직설적이어야 한다"면서 "우리는 '광물 협정'의 서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광물 협정이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을 향한 첫 단계가 될 것"이라며 미국 측 주장에 동의했다. 전날 백악관을 떠난 직후 올린 가시 돋힌 엑스(X) 메시지와 비교하면 한층 부드러워졌다.

정상회의에 배석했던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실장과 옥사나 마르카로바 주미 대사가 눈물을 흘리며 백악관을 떠났다는 전언이 흘러나오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유럽 긴급 정상회의가 열린 런던에서 더 이상 영어 사용을 원하지 않았다는 보도를 보면 그에게도 비로소 '현타'가 온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에 항복하지 않고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미국의 지원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겨냥해 '정권교체 카드'까지 꺼내 들었으니 양국의 감정적 충돌은 쉬 해소될 것 같지는 않다.
◇자존심 상한 미국, 우크라 압박을 멈추지 않는다
손님(젤렌스키)를 집(백악관)으로 초대했다가 체면을 구긴 주인(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 대통령)은 분을 삭히지 못하는 듯하다.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지도자들(젤렌스키 대통령 측)이 '평화에 대한 의지'를 입증할 때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군사원조의 중단을 지시했다고 미 블룸버그 통신이 3일 보도했다. 이에 따라 항공이나 선박편으로 운송 중인 무기나, 폴란드 등 제3국에서 인도를 기다리고 있는 군수 물자 등 우크라이나에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든 군사 원조가 멈출 것이라고 미 국방부 관계자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긴급 소집된 회의에서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에게 지원 중단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이에 앞서 미 뉴욕 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2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중단을 논의할 회의를 긴급 소집했다고 보도했다. 회의에는 헤그세스 국방장관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등 핵심 참모들이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식통은 NYT에 "회의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의 중단, 혹은 취소가 논의될 터인데, 여기에는 바이든 전 행정부 시절에 승인된 탄약 및 장비의 마지막 인도분 선적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전 행정부 시절에 결정돼 6개월 이내 집행해야 할 대우크라 군수 지원금은 약 38억 5천만 달러가 남아 있는데, 이것마저 취소될 것이라는 뜻이다. 사실이라면 우크라이나에게는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백악관 충돌 이후 워싱턴 포스트(WP)를 시작으로 미국 주요 언론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 지원이 곧 중단될 것으로 전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일 미 백악관 고위 관계자의 말을 빌어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이 끝난 직후 대우크라 무기 공급을 일시적 또는 완전히 중단할 가능성을 검토할 것을 명령했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앞으로 몇 달 동안 키예프(키이우)에 군사적, 정치적 지원을 제공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백악관의 대우크라 군사지원 중단 가능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다뤄온 매체는 미 NYT다. 1일에도 익명의 백악관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무기및 탄약 제공에서 군사및 위성 정보의 공유, 우크라이나군 훈련 실시까지 우크라이나에 대한 모든 지원을 사실상 중단할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 즈음 캐롤라인 리빗 미 백악관 대변인도 폭스 뉴스에 "우리는 더 이상 실제적이고 지속 가능한 평화가 없는 먼 나라(우크라이나)에서 전쟁 자금으로 백지수표를 쓰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밴스 부통령에 맞서 한마디로 지지 않았던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에 미국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았다. 미 백악관은 반(反)트럼프 세력을 무마하기 위해 발언의 배경을 설명하고 진실을 규명하는 긴 성명서를 인터넷에 올렸다. 성명은 "미국 대통령과 부통령은 항상 미국 국민과 세계에서 미국의 지위를 존중하는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싸울 것이며, 미국 국민이 착취당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명은 이어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설전 중에 나온 대통령, 부통령의 주장들을 하나씩 들며 그 경위를 설명했다. "우크라이나에게는 카드가 없다" "3차 세계대전을 갖고 게임을 한다" "탱크를 파괴하기 위해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을 제공했다"(이상 트럼프 대통령) "지난해 10월 야당(민주당)을 위해 펜실베이니어에서 선거운동을 했다"(밴스 부통령)는 발언들이 대상이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사실상 중단하는 실질적인 조치도 미국에서는 이미 부분적으로 내려진 상태다.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최근 미국 사이버 사령부에 러시아에 대한 공격적인 디지털 활동(사이버 공격 작전)을 포함한 모든 계획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으로 미국 보안전문매체 '레코드'가 지난달 28일 보도했다. 소식통은 '레코드'에 "이번 조치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작전이나 러시아 대상 신호정보 수집은 계속될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조치는 러시아에 집중된 사이버 능력을 멕시코 마약 카르텔과의 싸움에 집중하기 위한 시도로 해석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마약의 국경 통과를 막기 위해 이미 8개의 멕시코 카르텔을 테러 조직으로 지정하고, 카르텔 주요 인사들과 인프라에 대한 군사적 조치를 옹호한 바 있다. 그렇다고 해도 미국의 대러 사이버 공격 중단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 사이버 공격을 용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우크라이나가 받는 실질적인 타격은 적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미 국무부도 키예프가 통제하는 영토 내 에너지 시설의 복구 프로그램 지원을 중단했다고 미 NBC 뉴스가 보도했다. 우크라이나에서 미국 지원 기관의 업무를 담당했던 국제개발처(USAID) 직원은 NBC에 "이것은 우리가 우크라이나나 기존 투자에 관심이 없다는 신호를 러시아에 보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미 백악관은 USAID를 통한 해외 원조 다년 계약 6천200건 중 5천800건을, 미 국무부는 9천100건 중 4천100건을 취소할 예정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강한 압박은 무기 제공 중단으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하워드 루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2일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동안, 미국은 키예프에 대한 안보 보장이나 다른 어떤 지원도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우크라 정상회의에 배석한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내내 '나는 어떤 양보도 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는 우리 땅을 떠나야 한다' '3천억 달러의 전쟁 배상금을 원한다' '미국의 안전 보장을 원한다'는 말만 계속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요구는 어리석고 비합리적이었다"고 비판했다.
캐시 파텔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도 이날 "우크라이나는 자금 세탁과 부패의 땅"이라며 "키예프에 제공된 수천억 달러의 미국 지원금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조사할 것"을 지시했다. 비탈리 샤부닌이 이끄는 우크라이나 부패방지행동센터의 활동을 중심으로 FBI의 대우크라 감찰이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폭스 뉴스 앵커 출신의 언론인 터커 칼슨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정치적 살인과 미국 무기의 불법 재판매 혐의로 기소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SNS를 통해 "지난 3년 동안, 서방 후원자들의 묵인 아래 우크라이나는 엄청난 양의 미국 무기를 국제 암거래 시장에서 팔아치웠다"며 "그 무기들은 팔레스타인 하마스와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 그리고 현재 시리아를 통제하는 세력 등 전 세계 무장 단체의 손에 들어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우크라이나인들(보안국,SBU)은 정치적 목적으로 여러 사람을 죽였고, 미국 언론인과 모 국가 정상(푸틴 대통령?)을 살해하려고 했다"며 "언젠가는 이 모든 사실은 드러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퇴진 압박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들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쟁에 대한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라고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일 CNN 방송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국과 협상할 수 있고, 나아가 러시아와 협상을 통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며 정권 교체를 암시했다. 또 공화당 소속인 마이크 존슨 미 연방 하원의장은 NBC 방송 인터뷰에서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 그(젤렌스키)가 정신을 차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거나, 그 일을 할 다른 누군가가 우크라이나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 측근들이 백악관 충돌 직후 일제히 트럼프 편에 선 것도 눈길을 끈다. 일론 머스크 정부 효율성 위원회(도지·DOGE, 굳이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규제개혁위원회)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 없었다면 당신(젤렌스키 대통령)이 강해질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하는 영상 아래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스스로 자신을 파괴했다, 배우 자격도 없다"는 댓글을 달았다.
대통령의 아들 트럼프 주니어는 "이게 바로 리더십의 모습"이라며 "미국은 이용당하는 데 지쳤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에 배석했던 루비오 국무장관을 비롯해 헤그세스 국방장관,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등은 엑스(X)에 "어떤 대통령도 하지 못한 방식으로 미국을 수호해 준 대통령에 감사한다" "미국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고 썼다. 루비오 장관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해 "백악관 충돌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도 했다.

사건의 한 당사자인 밴스 부통령은 "처음부터 젤렌스키 대통령과 충돌할 의사가 없었다"며 "말다툼은 즉흥적으로 벌어졌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NBC 방송은 부통령과 가까운 소식통을 인용해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충돌은 기자의 질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밴스 부통령이 상대(젤렌스키)의 부적절한 외교적 행동을 보고 지적한 데에서 비롯됐다"고 전했다.
백악관 충돌이후 눈에 띄는 또 한 사람은 한결같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주장해 온 린지 그레이엄 미 상원의원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한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사임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주저하지 않고 "물러나서 우리와 함께 사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세우거나 아니면 자신의 행동을 바꿔야 한다"며 누구보다 먼저 젤렌스키 대통령의 거취를 거론했다.
미-우크라 정상회담이 파국으로 끝나는 바람에 최고의 오찬을 즐긴 행운아들도 있다. 스카이 뉴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서쪽 건물(웨스트 윙)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불러 당초 미-우크라 정상을 위해 마련한 오찬을 함께 했다.

◇궁지로 몰린 우크라이나와 젤렌스키 대통령?
백악관 다툼 이후 우크라이나와 젤렌스키 대통령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1일 '우크라이나의 이중고-푸틴에서 트럼프까지'라는 제목을 달았다.
FT는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군사 지원 없이 전쟁을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는 앞으로 암울한 2개의 시나리오 중 하나에 직면할 것"으로 우려했다. 침략자(러시아)를 보상해주는 (평화) 협정에 서명하거나, 최대 후원자인 미국 없이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FT에 따르면 일부 군 지휘관들과 의원, 공무원, 작가(블로그) 등은 "미국의 추가 지원이 없어도 적어도 6개월은 버틸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전은 '드론 전쟁'으로 변했고, 우크라이나도 드론의 개발 및 생산에 선두주자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6개월 후에는? 미국이 다시 무기와 병력을 지원할까? 그것이 고민이다.
우크라이나의 앞날은 어차피 젤렌스키 대통령의 선택에 달렸다고 해야 한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서방의 지지와 계엄령을 이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한 '1인 체제'를 사실상 구축했기 때문이다. 그가 정치적 경쟁자들과 올리가르히(과두 재벌 세력)을 모두 제압하고, 군과 정보, 언론 등을 장악했다는 게 객관적인 평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백악관 충돌이후 미국과 종전에 대한 메시지를 혼란스럽게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에 러브 콜(구애)을 보내면서도 사과하지 않았고, 전쟁을 빨리 끝내야 한다면서도 미국식 종전 방안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또 트럼프 대통령과 화해를 권하는 유럽 정상들의 설득에 응했다가 다시 '마이 웨이'(My Way)를 외치는 등 언론으로 하여금 갈피를 잡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가장 큰 관심은 미국의 사임 압박에 그가 순순히 응할지 여부다.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가입이나 미국의 안보 보장이 있을 경우,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했지만, 트럼프 미 행정부 하에서는 2가지 전제가 충족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강제로 물러나게 해야 할 터인데, 그게 가능할까?
지난해 5월로 공식 임기가 끝난 젤렌스키 대통령은 계엄령을 이유로 대통령직에 머물고 있다. 임기가 끝나기 직전 대통령직의 연장 여부를 놓고 '헌법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바이든 당시 미대통령을 비롯한 서방의 강력한 지원으로 그 고비를 넘겼다.
그의 대통령직을 흔들 수 있는 요인은 △미국과 유럽의 지지 철회 △우크라이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정 △제 2의 유로마이단(야누코비치 친러 대통령 정권을 전복시킨 대규모 시위) △군부 쿠데타 △조기 종전후 대선 실시 등을 상상할 수 있다. 그나마 현실성이 있는 것은 조기 종전 후 대선 실시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종전 카드'다. 휴전→선거 실시→당선자의 종전협정 서명이라는 3단계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다.
스트라나.ua는 2일 아예 젤렌스키 대통령을 바꿀 수 있는 카드는 현실적으로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 아무리 정권 교체를 부르짖어도, 본인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뜻이 없고 그를 강제로 쫒아낼 방법도 실제로 없다는것이다. 그를 몰아낼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군부인데, 아직 그런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나마 젤렌스키 대통령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은 유럽의 여론이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주선하고 지금까지 그를 대통령을 변함없이 지원해준 영국과 프랑스가 백악관 충돌 이후 조금씩 동요하는 분위기다. 우크라이나전 종전을 유럽 전체 안보의 방패막이로 활용하고 유럽을 떠나려는 미국을 잡으려는 구상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돌출 행동으로 어그러졌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현지 분위기는 '젤렌스키 지지'로 돌아서는 느낌이다. 브리짓 브링크 주우크라이나 미국 대사가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 루비오 장관의 엑스(X) 포스팅(메시지)을 우크라이나어로 번역해 공유하자 부정적인 댓글이 쏟아졌다. "노년에 미친 사기꾼." "엿먹어, 브링크 대사. 역겨운 헛소리야" "미국이 부끄럽다" 등이 댓글이 욕설과 함께 달렸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브링크 대사는 오랫동안 젤렌스키 대통령과 크고 작은 갈등을 겪어 왔다. 오죽했으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해 블링컨 당시 미 국무장관에게 브링크 대사의 본국 소환을 요구했을까? 그 이유는 브링크 대사가 자신을 비판하는 NGO 세력을 옹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젤렌스키 대통령의 대국민 지지도도 상승세로 바뀐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일각(주로 야당)의 관측대로 그가 백악관 충돌을 국민 단합용 보여주기 쇼로 기획했다면, 대성공이라고 할 수있다.

트럼프-젤렌스키의 충돌로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은 물건너 간 것일까?
스트라나.ua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에도 전쟁의 조기 종식을 거부함에 따라 평화 협상은 연기될 수 밖에 없다는 전망이 주를 이루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게 유일한 시나리오는 아니다"고 짚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휴전에 부정적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이반 충돌을 계기로 더욱 강경하게 휴전을 밀어붙일 경우, 흐름이 어느 쪽으로 쏠릴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워싱턴 방문길에 세운 외교적 목적은 분명했다. 즉각적인 휴전 요구를 철회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을 계속하도록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나아가 키예프의 협상 지위를 강화하고, (유럽 주도의) 평화유지군 파견을 지원하고 가능하면 러시아에 추가 제재를 가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을 얻어내는 대가로 미국과 '광물 협정'에 서명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본격 협상에 들어가기도 전에 기자들 앞에서 공개 설전을 벌이는 바람에 젤렌스키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는 없던 일이 됐다. 오히려 미국으로부터 평화를 원하지 않으면 미국은 떠날 것이라는 최후통첩만 받아들었다. 그리고 정상회의 파행 사흘만에 '미국의 대우크라 군사 지원 중단'이라는 '레드 카드'도 받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FT가 전망한 두 가지 선택중 하나를 택할 수 밖에 없는 처지로 몰릴 것 같다. 굴욕적으로 러시아와의 평화협상에 임하느냐, 미국의 지원 없이 전쟁을 계속해야 하느냐. 그의 선택은 조만간 드러날 것이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