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의 명가 농심이 오는 6월 러시아에 현지법인 '농심 러시아(Nongshim Rus LLC)'를 설립하기로 했다. 성장세가 두드러진 러시아 라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동시에 유라시아 시장 전반을 아우르는 라면 거점을 구축할 계획이다. 농심 측은 "전쟁 중이지만, 일부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일상적인 생활이 이뤄지고 있다"며 러시아 라면 시장의 성장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러시아 라면 시장의 성장세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는 "2030년까지 연평균 10%대 성장이 이어지며 시장이 약 10억5천만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또 지난해(2025년) 한국의 대(對)러시아 라면 수출액은 전년(2,615만 달러) 대비 약 75.4% 증가한 4,586만 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러시아 시장에 일찌감치 진출한 팔도 '도시락'은 러시아 용기면 시장에서 점유율 60%를 웃돌며 현지에서 '국민 라면'으로 자리를 잡았다.
삼양식품도 지난해 X5, 마그닛(Magnit) 등 러시아 대형마트와 식품 소매 체인 등에 '까르보 불닭볶음면' 등 비교적 순한 맛 제품을 입점시키며 전년 대비 매출을 약 200% 끌어올렸다.
러시아 라면 시장의 성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달라진 러시아인들의 소비 성향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지구촌 리포트'에 따르면 전시경제 체제 아래서 고물가의 부담을 느낀 러시아 소비자들이 80~100루블(약 1,500~1,900원) 안팎의 라면을 찾으면서, 라면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특히 매장 내에서 라면과 토핑을 선택한 뒤 즉석에서 끓여먹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코노(KONO)'가 2024년 모스크바에 등장하면서 라면도 '한 끼 식사'로 변했다고 한다. 모스크바에서 인기를 끌면서 'KONO'는 크라스노다르와 칼리닌그라드 등 다른 지역으로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 전에 한때 한국 관광객들의 성지로 등장했던 극동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한국식 편의점이 등장해 내부에서 팔도 '도시락'을 먹을 수 있도록 했다. 'KONO' 출현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차르그라드.ru 등 러시아 현지 언론들도 14일 "러시아에서 '라면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며 "라면집이 3년 만에 두 배로 늘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지리정보업체 2GIS의 자료를 인용한 현지 경제 매체 베도모스티는 이날 "4월 기준, 인구 100만 명 이상 도시의 라면 및 면류 전문점은 489개로 전년 동기 대비 11.6% 증가했다"며 "라면 등 아시아 면류 음식에 대한 수요는 주로 젊은 층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고 전했다. 또 2023년부터 3년간 대도시의 라면 및 면류 전문점은 41% 증가한 것으로 집계했다. 이 기간 동안 라면집은 2.2배나 늘어났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라면은 일본식 라멘을 말한다. 면과 고기, 그리고 다양한 토핑을 넣어 조리한 일본 전통 국수 요리다. 2GIS 분석가들은 베도모스티에 "주로 전문 식당에서 제공되던 라면이 일반 음식점에서도 점점 더 많이 등장하고 있다"며 "인구 100만 명 이상의 도시에서는 라면 메뉴가 2023년 이후 12.5% 증가했다"고 밝혔다.
반면 야채, 고기, 해산물 등을 넣고 소스를 곁들여 볶은 면 요리는 점차 인기가 시들해지며 5% 감소했다. 라면 한 그릇의 가격은 전년(2025년) 대비 8%오른 평균 476루블(약 9,000원)이며, 주문 횟수도 21% 늘어났다고 한다. 한국식 라면(팔도 '도시락')의 가격 100루블과 비교하면 4배, 5배나 된다.
차르그라드.ru는 "라멘은 일본의 전통 음식으로, 한국의 라면과 혼동될 수 있다"며 "러시아에서는 '라멘'(рАмен)이나 '라묜'(рамЁн)으로 표기되는데, 일본식 라멘인지, 한국식 라면인지 구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베도모스티는 용기면과 같은 인스턴트 라면(한국식 라면)의 증가세도 주목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지 분석 회사인 NTech는 베도모스티와의 인터뷰에서 "2025년 말까지 인스턴트 라면 판매액이 160억 2천만 루블에 달한 것으로 추정하며, 금액 기준으로 59% 증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판매량도 전년 대비 25% 증가한 1,815만 개에 달했다. 현지 전문가들은 라면의 인기를 저렴한 가격(100루블)과 빠른 서비스(즉석 조리)에서 찾았다. 'KONO'가 일으킨 바람으로 보인다.
일본 라멘과 한국의 즉석 라면으로 갈라지는 러시아의 라면 풍속도는, 분식집에서 시키는 라면과 편의점이나 즉석라면 전문점에서 직접 끓어먹는 라면으로 이미 갈라진 우리의 먹거리 풍경을 뒤따르는 것 같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