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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 간의 가장 큰 차이는 외부 세력의 개입에 의한 '대리전' 여부였다. 우크라이나는 개전 초기부터 미국 등 서방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 극단적으로 "우리(미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우크라이나는 하루아침에 무너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란은 무기든 재정 지원이든 외부로부터 공개적으로 지원받은 건 아직 없다. 러시아의 지원설이 이달 초부터 서방 언론에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지만, 공식 확인된 것이 여전히 없다. 오죽하면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이란으로부터 샤헤드 드론을 지원받은 러시아가 '친구를 버렸다', "친구도 도울 힘이 없다"는 등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나왔을까 싶다.
돈이나 무기가 들지 않는 유엔안보리 결의안 표결에서도 러시아는 이란의 편을 들지 않고 기권했다. 지난 11일 열린 유엔 안보리에서 바레인이 자국을 포함해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 이웃 국가를 겨냥한 이란의 공격을 규탄하고 즉각적인 공격 중단을 요구하는 결의안 초안을 냈는데, 표결에서 러시아는 유엔 상임이사국의 권한을 포기했다. 러시아는 이날 모든 당사자에게 적대 행위 중단과 외교적 해결을 촉구하는 별도의 결의안을 제출했지만, 미국의 반대와 다수(9개국)의 기권으로 채택에는 실패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기습적인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은 한쪽 편을 들지 않고 모든 당사자들이 적대 행위를 중단하자는 러시아의 결의안이 객관적으로 유엔 헌장의 정신에 부합한다. 그러나 진영 논리에 의해 바레인안은 채택, 러시아안은 기각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파이낸셜타임스(FT)가 26일 이란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가 이란에 드론를 제공하며 이란의 전투력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는 보도는 주목을 끌만하다. FT는 “러시아가 이란에 살상무기 지원 의지를 보여주는 첫 번째 증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란 전쟁의 양상이 바뀔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공교롭게도 이 보도가 나온 날(미국과 유럽 간의 시차를 감안하면 최소 12시간 뒤/편집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을 10일간 중단(미 동부 시간으로 4월 6일 오후 8시까지)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숨겨진 이유야 어떻든 48시간 최후통첩을 발령(21일)했다가 갑자기 5일 간의 에너지 (공습) 휴전을 명령하더니 그 시한을 하루 앞두고 또 나온 휴전 연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꽁무니 빼기'로 해석할 만한데, 러시아 지원설과도 관련이 있을까?

FT의 이날 보도는 그간 서방 외신에서 나온 러시아의 이란 지원설을 확인하고 종합하는 기사였다. 그러면서 3월 말에는 러시아의 대(對)이란 드론 지원이 가시화할 것이라고 했다. 러-이란 양국 고위 관계자들이 전쟁 초기부터 드론 제공을 논의해왔는데, 이미 일부가 제공됐든, 앞으로 본격적으로 제공하든 3월 말에는 결판이 날 것이라는 주장이다.
러시아의 제공 기종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란 드론의 초기 모델인 ‘샤헤드-136’을 기반으로 러시아가 개량한 ‘게란-2’나, 이와 유사한 기종으로 예상됐다. 역설적이지만, 최첨단 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가 '현대전의 총아'로 떠오른 드론 분야에서는 이란의 드론 기술을 모방하는 모양새다. 러시아가 '게란-2' 드론을 우크라이나 공습에 대거 동원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일부 언론에 따르면 최고 시속 600km에 이르는 제트 엔진 장착형 '게란 드론'을 개발해 실전에 투입할 가능성도 나온다.
미국도 지난해 여름 처음 공개한 '루카스' 드론을 이란 공습에 투입했는데, 격추된 '루카스'의 잔해가 24일 이란에서 확인됐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루카스 드론은 미국 애리조나에 본사를 둔 스펙트레웍스(SpektreWorks)에서 개발한 것으로, 겉보기에는 샤헤드와 흡사하다. 모듈식 설계가 핵심 특징으로, 앞 부분에는 정찰 센서와 전자전 모듈, 탄두까지 장착할 수 있다. 가격은 약 3만 5천 달러. 루카스 드론의 사용은 3월 초 처음으로 포착됐지만, 이란은 격추한 루카스 영상을 24일 인터넷에 공개했다. 미국도 이란 공습에 값비싼 미사일을 아끼고, 값싼 드론을 섞어쓰는 '가성비를 고려한 군사 작전'에 나섰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비교적 긴(?) 침묵 끝에 러시아가 이란 지원에 나섰다는 사실을 처음 알린 것은 미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WP)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시작된지(2월 28일) 1주일이 지난 3월 6일 WP는 “러시아가 미군 병력과 함선, 항공기의 위치및 이동 경로 등 미국의 군사자산 정보를 이란에 넘겨줬다”며 "이는 이란 미사일·드론의 타격 정확도 상승에 일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동의 알자지라 방송도 “러시아의 첨단 공중 감시망이 24시간 내내 군사 정보 영상을 이란에 제공하고 있다”고 뒤를 따랐다.
이란이 이웃 국가에 있는 미군 레이더 시스템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의 실질적인 지원 덕분으로 보인다. 이란의 보복 공격 대상에는 요르단에 배치된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의 조기 경보 레이더뿐만 아니라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에 있는 다른 미군 시설들도 포함됐는데, 러시아의 위성 정보들은 이들의 세부 정보나 이동 경로를 보다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 타격 전 목표 설정과 타격 이후 피해 평가에도 러시아의 지원은 꼭 필요하다.
이란 군사 전문가 짐 램슨은 "러시아가 제공하는 영상(사진)에 항공기, 탄약 저장 시설, 방공 자산, 군함 이동과 같이 정보 가치가 높은 내용이 포함돼 있다면, 이란의 반격 작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지원설에 대한 미국의 첫 반응은 거의 무시하는 분위기였다.
캐롤라인 레빗 미 백악관 대변인은 6일 모스크바의 개입은 "(미국과의 관계나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과는) 무관한 문제"라고 일축했고,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우려할 일이 아니다"고 대꾸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튿날(7일) 에어포스 원(대통령 전용기)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군사 정보 제공만으로는 이란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우리는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러시아와의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을 담당하는 스티브 위트코프 미 대통령 특사는 에어포스 원 기자회견에서 "러시아 당국에 이란과 군사 정보 공유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틀 후(9일)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이란 전쟁이후 처음으로 약 1시간 동안 전화통화를 가졌다. 우샤코프 크렘린 외교담당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푸틴 대통령과 "현 국제 정세의 전개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고 전했다.
미국이 겉으로는 무심한 척 했지만, 실제로는 러시아의 이란 지원설에 신경이 거슬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러시아의 이란 지원설은 기다렸다는 듯이 언론을 통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미 CNN 방송은 11일 "모스크바와 테헤란 간에는 (WP가 보도한) 군사 정보 교환뿐만 아니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습득한 드론의 대규모 '파도 공격'이나 방공 시스템의 우회 기술 등 이란의 샤헤드 (드론) 운용 전반에 대한 기술적 조언도 제공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미 당국자와 미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의 전황 보고서를 인용, 이같이 전하고 "이제는 점점 더 큰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란이 걸프 국가를 상대로 드론으로 레이더를 무력화한 뒤 미사일 공격을 가하는 방식으로 미군 자산을 타격하고 있는데, 이는 러시아의 드론·미사일 공격 전술과 유사하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러-이란 간 이같은 협력은 지난해 1월 양국 간 지식 및 기술 이전 방안 등을 명시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협정'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ISW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도 이란에 고체 미사일 연료용 전구체를 공급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이 포착됐다. 이란 선박들이 미사일 연료 저장시설을 갖춘 중국 항만과 이란 본토를 정기적으로 왕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WP는 미국 제재를 받는 이란 국영 해운사 소속 선박 2척이 중국 광둥성의 경제특구인 주하이의 가오란항에서 화물을 가득 싣고 이란으로 출항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가오란항은 고체 미사일 추진체의 핵심 원료인 과염소산나트륨을 비롯해 각종 액체 화학물질을 보관하는 대규모 저장시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6일 유럽 정보당국 고위 당국자와 중동 외교관 등을 인용, 러시아가 이란에 위성 사진과 개량된 드론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며 더욱 구체적인 러시아 지원 사례를 전했다.
러시아가 이란을 지원하는 통로는 양국을 잇는 내해(內海)인 카스피해 해상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군이 지난 18일 카스피해 반다르 안잘리 항구에 있는 이란 해군 기지를 타격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스라엘은 카스피해를 통해 러시아와 이란이 드론과 탄약, 에너지 등을 자유롭게 교환해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방 언론들의 러시아 지원설이 사실이라면,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가 긴(?) 침묵을 깨고 이란을 지원하는 이유가 뭘까?

FT는 "국제사회의 주목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닌 이란 전쟁에 계속 쏠리기를 바라는 러시아로서는 이란의 조기 항복을 막기 위해 지원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큰 흐름을 읽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러시아는 이란에 군사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미국의 시선이 이란 사태에 고정되도록 하고 분쟁을 확대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동의했다.
러시아의 이란 지원설은 장기적으로 미국에 엄청 부담스러운 사태 진전이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와 중국의 물밑 지원이 이란을 미국과의 전쟁에서 더 오래 버틸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점에서 미국도 상당한 부담을 느낄 것"으로 전망한다. 니콜 그라예프스키 파리정치대학 교수는 “러시아의 지원이 이란의 공격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러시아는 엔진, 항법, 반(反, 안티)드론 회피 측면에서 샤헤드 드론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고 말했다. 드론은 이란이 미-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에 맞서는 핵심 무기로 활용되고 있다. 나아가 러시아의 지원으로 이란 전쟁이 본격적인 '대리전' 양상을 띠게 된다면, 미국도 지난 4년여간 러시아가 느낀 (미국과 유럽) '대리전'에 대한 심적 부담을 어느 정도 이해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러시아가 이란에 대한 군사 지원을 결정하기까지는 내부적으로 상당히 고민한 것으로 추측된다. 러시아가 이란 전쟁 초기에 어느 측도 편들지 않는 중립적 위치를 고수한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우선 러시아는 미국과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입장에 처해 있다.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러시아로서는 미국의 이란 공격을 대놓고 비난하거나 적대적으로 나서기에는 명분이 약하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조기 종전을 위해 사실상 러시아 편을 들고 있는 상황에서 이란을 돕기에는 심히 껄끄럽다.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이나 포로 교환 등에 적극적으로 중재역할을 해온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 등 중동 국가와의 기본적인 우호 관계를 등한시할 수도 없다. 자칫하면 전쟁을 계기로 유럽에서 우크라이나-나토-유럽연합(EU) vs 러시아로 진영이 나눠지듯, 중동에서도 러시아-이란 vs 미국-이스라엘-걸프 지역 국가 간 대결로 굳어질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이란으로부터 샤헤드 드론과 탄약 지원을 받았다고 해도, 원유 감산/증산 등 에너지 협력의 중요한 파트너이자 지정학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중동 국가들의 입장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러시아 내부적으로는 러시아 출범 후 상당수의 올리가르히(재벌)들이 유대인이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푸틴 대통령이 집권 초기 소위 '1기 올리가르히'들을 대거 축출했지만, 살아남은 유대인 출신 올리가르히가 아직도 적지 않다. 이스라엘과 연결되는 이들의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유대인은 그동안 제정러시아를, 소련을 무너뜨리고 '푸틴 제국'을 만드는 데 앞장 선 세력으로, 19세기 말의 위상과는 상당히 달라졌다.
러시아가 물밑에서 미국과 거래, 혹은 중재에 나섰다는 사실도, 곤혹스러운 러시아의 입장과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와 FT는 러시아가 미국에 이란과 정보 공유를 중단할테니, 미국도 우크라이나에 군사정보를 제공하지 말라는 내용의 협상안을 제안했으나 퇴짜를 맞았다고 20일 보도했다. 이 제안은 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 대통령 특사가 11일 미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스티븐 위트코프와 재러드 쿠슈너와의 회담에서 나왔다고 했다. 한 소식통은 FT에 "미국이 이란 전쟁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낼 수 있는 선택지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러시아가 이용하려고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드미트리예프 특사를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 회복을 향한 진전을 훼손하려는 가짜 미디어 캠페인"이라며 이를 부인하고 반박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지난해 1월 출범 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재정·군사 지원 대부분을 중단했지만, 정보 지원은 계속하고 있다. 또 나토(NATO)가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구매해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방식(PURL 시스템)도 아직은 허용되고 있다.
또 미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는 14일 "러시아는 이란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축 우라늄을 러시아로 이전하자는 제안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거절했다"고 전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통한 '대리전'을 끝내기 위해 미-러-우크라 3자 평화협상에서 러시아편을 들고, 러시아는 이란 전쟁을 '대리전' 국면으로 몰아가면서 미국이 중동에서 발을 뺄 수 있도록 '불길'을 잡아주려는 착각을 들게 한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