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Apr 2026

한류 마중물 모스크바세종학당(원광) 현장을 가다

2014년 한국어 수업 등록 ‘신청’ 인원 1,180명...한류 타고 매년 증가 추세
대중 및 전통 한국 문화 알림이 20년, 애교심이 교풍으로 자리잡아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백석 시인이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를 썼던 1938년은 일제강점기다. 서구 문화가 급속도로 유입됐던 시기다. 러시아 문학을 동경했던 백석은 러시아어를 배웠다. 한반도와 중국 러시아가 국경을 맞닿고 있는 두만 강변에서다. 문학뿐이겠는가, 분단 전까지 음악을 비롯한 문화예술, 유럽의 사조는 러시아를 통해 한반도에 유입됐다. 풍랑과 격정의 한반도 역사에서 러시아는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미소 이념대결 결과 한반도는 분단됐다. 냉전이데올로기는 종식된 지 오래다. 그러나 러시아는 여전히 먼 나라다. 러시아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가 있다. '곰'과 '미인' '보드카'다. (친구 10명 중 8명의 대답이다. 친구들은 대부분 친미인이다. 고등 시절 그들은 미국 빌보드차트를 달달 외우고 다녔다)

- 순백의 땅, 일 년 내내 눈이 내린다. 보드카를 마시며 저벅저벅 길을 걷는 뚱뚱하고 못생긴 남자 옆에 아리따운 아가씨가 팔짱을 끼고 함께 걷는다. 그들 옆으로 어슬렁어슬렁 곰이 걸어간다 - 러시아하면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다. 그런 우리에게 아직은 낯선, 예술의 본고장 모스크바에도 한류의 열기가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다.
 
러시아는 한류 초입 단계다. 드라마 등 영상 콘텐츠가 케이블 및 위성 TV를 통해 전달된 ‘한류1.0’ 시기를 거치지 않았다. 유튜브, 러시아 도메인 등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영화 및 드라마 배급도 녹록치 않다. K-Pop 등 콘텐츠 수입 유통 경로도 거의 부재하다. 러시아인(모스크바)들은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 K-Pop 등을 P2P 등 공유 사이트와 러시아 도메인을 통해 접한다. 사이트 운영진들은 자체적으로 자막을 제작하고 더빙한다. 비상업적인 커뮤니티 중심이 특징이다. 한국문화에 대한 동경은 자연스럽게 한국어 학습으로 이어진다. 한류에 따른 전 세계적 시류 같다. 각자 보고 듣고 춤추던 현지인들은 가상 커뮤니티를 통해 교류한다. 젊은 혈기는 광장을 필요로 한다. 오프라인의 최적지를 찾는다. 그곳이 '러시아 한국문화원'과 '모스크바 세종학당(원광)이다. 2회에 걸쳐 한류 마중물을 찾아간다. 소치올림픽으로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한 러시아 한국문화원 소식은 부득이 두 번째 전하게 됨을 밝힌다.
 

                

설원이다. 모스크바의 2월은 눈꽃이 개화하는 시기다. 바닥이 희게 한 뼘 씩 자라고 있다. '뽀드득 뽀드득' 눈을 밟는다. 꽃을 사랑하는 러시아인들에게 눈은 부추 꽃이다. 차도와 인도가 무색하다. 모든 경계를 다 지웠다. 벌써 일주일째다. 한류는 세계 각 민족의 다양성과 차이를 감싸 안았다. 감동을 이끌어냈고 동감이 작용했다. 소록소록 내리는 눈의 화음이 조화롭다.

러시아 학기는 2월 초 시작된다. 모스크바 세종학당(원광)(교장 전종순)도 개강했다. 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학기에 등록을 신청한 학생 수는 1,180명인데, 학교 시설과 교육여건상의 문제로 다 수용할 수 없다고 한다. 이 1,180명의 학생들 중 기존 재학생 408명을 제외한 초급반 1-1반 학생들(690명)은 2주 동안 수업한 후에 시험을 보고, 그 시험 결과에 따라 200-250여명만 정식으로 등록시킬 예정이다. 이것은 수업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엄정한 심사를 거쳐 추리는 것이다. 전종순 모스크바세종학당(원광)교장은 “수업의 질을 높이고 선생님과 학생들이 수업에 원만하게 임할 수 있도록 까다로운 절차 과정을 거쳐 학생들을 선발한다”고 전했다. 수업 태도나 과제, 출석 등 학사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학생은 진급대상에서 제외된다. 수업의 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세종학당(원광)은 주중 주말, 각각 초, 중, 고, 최상위 등 15개 반이 운영된다. 총 6학기 3년 과정이다. 일요일에는 수업이 끝나는 2시부터 한국문화 수업이 진행된다. K-Pop 노래반을 비롯해 사물놀이, 전통무용, 태권도 등을 매주 일요일에 실시하고 있다. 한국역사, 예절, 한국음식 실습 등은 연중행사에 반영하고 있다. 한국어 선생님은 교사 12명을 비롯해 유학생 및 현지 거주 한국인 등 보조 강사 20명 이상이 학습 도우미로 활동한다. 2008년 세종학당으로 지정됐으며, 1993년 개교 이후 한국어 교육 및 한국전통 문화 알림이 역할을 하며 한국과 모스크바 문화 교류의 장이 돼왔다.
 

 

11시, 수업 시작 30분 전 학생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영하 20도. 뺨을 긋고 가는 칼바람에 얼얼한 양 볼에 훈기가 닿자 추석 상에 진설한 홍옥처럼 얼굴이 발갛다. 학생 수가 가장 많은 1-1, 1-2 반은 2층 대강당과 1층 홀에서 진행된다. 학생들이 벗어 놓은 신발이 강당 입구에 가득하다. 250여 좌석을 마련했지만 빈자리는 없다. 제시간에 도착했지만 공석이 없어 바닥에 철퍼덕 않고 공책을 편다. 서서 청강하는 학생도 여럿이다. 지나갈 틈이 없다. 교사는 사할린과 모스크바에서 30년 간 한국어를 가르쳐 온 배태랑 선생님이다. 첫 시간은 한국어 자모 발음 수업이다. 교사는 러시아 알파벳 옆에 모음을 적는다. 그리곤 보조강사 선생님들이 큰 소리로 발음한다. 학생들은 귀를 쫑긋 세운다. 맨 뒷자리에 앉은 학생들은 슬며시 머리를 앞으로 당겨본다. 잘 듣기 위해서다. 이번에는 여자 보조 선생님이 발음한다. 남성과 여성의 소리 높낮이가 다르기 때문에 번갈아 가며 발음한다. 'ㅏ', 'ㅔ', 'ㅣ', 'ㅗ', 'ㅜ' 학생들이 따라 읽고 받아 적는다 'ㅏ'나 'ㅔ'는 구별되는데 'ㅗ','ㅣ'는 당최 구분하기 힘들다는 표정이다. 선생님은 '오이'라는 단어를 보드 판에 적는다. '먹는다'라는 동사를 적는다. '오이를 먹는다' 학생들이 따라 발음한다. 선생님은 맨 앞줄에 있는 여학생을 지적한 후 읽기를 시킨다. '해보세요. 오이를 먹는다' 학생이 발음한다. '오이를 먹는다' 옆에 있는 남학생에게도 시킨다. '오이를 먹는다' '어이를 먹는다' 러시아어 억양이 그대로 묻어있다. 다시 발음한다. '아이를 먹는다' 선생님이 응한다. '아이가 아니라 오이를 먹는다예요. 예짜트 지쩨이는 '아이를 먹는다'는 뜻이에요' 학생들이 박장대소한다. 영하 20도 안팎의 차가운 공기와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기가 창문에 맞닿아 김이 뿌옇게 서렸다. 십대부터 사오십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그러나 젊은 층이 대다수다. “K-Pop 동아리 활동해요. 동방신기랑 슈퍼주니어 좋아해요. 가사 내용 알고 싶고 한국 드라마도 좋아해서 한국어 공부 시작했어요(이리나 비탈리예브나 22, 여)”, “김기덕 감독 만나는 게 소원이에요. 한국 인디 록 좋아해요. 러시아 자막으로 내용 이해하는 것보다 직접 알아듣고 싶어서 다니고 있어요”(미하일 크리코프, 29세, 남), “대학 졸업 후 한국 기업에 입사하고 싶어요. 한국어를 잘하면 아무래도 취업하기 유리할 것 같아요(세르게이 안드례예비치 23, 남)”, “할아버지가 한국 분이예요. '도라지' 노래를 부르시는 걸 어렸을 때부터 들었어요. 그 가락이 좋아 한국어 공부 시작했어요. 저도 한국인의 피가 흐르니까 당연히 한국어를 배워야죠”(천발렌찐, 36세, 남)
 
한국어를 공부하게 된 계기는 각양각색이다. 고려인 3세의 정체성 찾기는 할아버지의 노랫가락에서 시작됐다. 한국 글로벌기업 취업을 선호하는 러시아 현지 젊은 친구들도 많다. 특히 한국 영화나 드라마, K-Pop, 예능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았다. 그러나 한국 전통문화나 순수예술 분야에서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등 한국 고유의 전통문화에 흠뻑 빠진 현지인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차이코프스키 음대를 졸업한 박 마리나는 “사물놀이 공연을 보면서 고전클래식에서 느끼지 못하는 박진감에 흠뻑 젖어들어 이곳에서 1년 넘게 풍물을 배우고 있다”며 “사물놀이를 위해 긴 머리까지 잘랐다”고 소개했다. 문학 전공자라고 소개한 리자 안렉산드로브나는 “모스크바에 열린 '한러 문학포럼'에서 신경숙 작가를 처음 알게 됐다”며 “러시아 문학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색적인 정서에 끌렸고 한국어로 소설을 읽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어 수업이 끝났지만 발길을 재촉하지 않는다. 아쉽다는 표정이다. 교실에는 'LG'와 '삼성'등이 후원한 교육용 빔과 학습용 브라운관이 설치돼 있다. '노래반'과 '태권도' '사물놀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려는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눈다. 한국 연예인 이야기, 수업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한국에 대해 속삭인다. 신조어도 기가 막히게 그들은 내뱉는다. '짱이야', '당근이지', 헐이다.




'진심으로 다가가면 진정으로 다가옵니다.'
 

• 인터뷰 - 전종순 모스크바세종학당(원광) 교장
 

글로벌 시대다. 국경은 지도위에서만 존재하게 됐다. ‘노마드(nomad, 유목민·방랑자)'와 ‘디아스포라(Diaspora, 이산·흩어지다)' 등의 신조어가 유행한다. 민족·국가 간 탈영토화가 확대되고 있다. 탈영토화는 산업분야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문화영역도 마찬가지다. 한류의 기류가 전 세계로 뻗어가는 것도 같은 이치다. 93년 개교한 모스크바세종학당(원광, 교장 전종순<사진>)은 93년 개교했다. 작년 20주년을 맞았다.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알려왔다. 러시아와의 문화 협력 교류 활동도 해왔다.

학교에 따르면 주중 세종학당 주말 원광학교로 운영돼 왔던 학교는 2013년 주중, 주말반이 합쳐지면서 2013년 1,391명이 등록, 2014년에는 1,180명(2014년 2월 2일 기준)이 등록 신청했다. 모스크바 세종학당 공식통계에 따르면 2009년 287명, 2010명 382명, 2011년 504명, 2012년 713명이 등록했으며, 주말반인 원광학교 등록자수를 합하면 매년 700여명 이상이 모스크바세종학당(원광)에서 한국어를 익혔다. 총 8,000여명이 넘는 현지인들이 참가했다. 다른 국가에 비해 여건이 좋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가 아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 어리석은 영감이 산을 옮기는 것처럼 학교 설립 본연의 취지대로 운영해왔을 뿐이다.

학교 운영 활성화 키워드는?
- 사심을 갖지 않고 진심으로 학생들을 대할 때 학생들도 우리의 기운을 느낍니다. 이신전심이지요. 20년여 년의 시간동안 학교를 운영하며 그 본연의 자세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자는 그 마음을요.

한류에 대한 관심이 언어 학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유는?
-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문화적 호기심의 저변에는 민족의 문화와 사상을 담은 언어가 기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 언어 습득은 필수적입니다. K-Pop을 좋아하는 러시아인들은 그 노래 가락과 춤 외에 가사 내용이 알고 싶을 것이고, 한국영화나 드라마 마니아들도 더빙이나 자막이 아니라 직접 자신이 내용을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를 갖게 됩니다. 그렇다면 자연히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되는 것 아닐까요.

대중문화와 더불어 한국전통문화를 소개하는 것도 중요하다
- 전통문화라고 부르는 우리의 고유한 유무형의 재산들은 장구한 세월동안 보존돼 온 것입니다.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지요. 전달만 잘 된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의 매력은 그들과 더불어 또 다른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국의 대표적 전통문화를 접할 수 있는 여건과 기회를 주는 것도 우리의 역할입니다. 사물놀이반, 태권도반, 한국전통무용반을 운영하는 이유입니다.
 
한류와 모스크바 세종학당(원광)의 관계는?
- 한류로 인해 한국어를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또 한류와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꾸준하게 우리의 문화를 알리고 한국어 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저희 본연의 임무지요. 앞으로도 모스크바세종학당(원광)은 현지 사정에 맞는 합리적인 교육 시스템을 갖춰나가고 체계화하며 지속적인 발전을 이끄는 것을 주요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인재를 양성하는 데 계속해서 부단한 노력으로 경주해나갈 것입니다.


<모스크바 세종학당(원광)>
• 개설 1993년 1월, 2008년부터 세종학당 운영
• 학기운영: 총 6학기 3년 과정, 주중반, 주말반 실시
• 수업: 한국문화, 노래, 한국역사, 예절, 한국음식 실습 등
• 한국어 선생님은 교사 12명 보조 강사 10명 이상
• 현지 거주 한국인 및 유학생, 소수 러시아인으로 구성
• 수준별 편성(총 15개 반 편성)
  초급과정(1-1, 1-2) 4학급
  중급과정(2-1, 2-2) 5학급
  고급반(3-1, 3-2) 2학급
  최상위반(4) 1학급 
  어린이반 3학급
• 수료 인원: 매학기 750여 명 등록, 350-400여 명 수료.
            현재까지 연인원 8,000여 명. 2014년 1학기 1,180여명 수업 중

 

2014. 02. 12 

최승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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