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Jun 2026

발트 3국 vs 러시아 충돌로 옮아 붙은 우크라 드론 공격, 그 불편한 진실은?

러시아의 전승 기념일(9일)을 전후한 사흘 간의 휴전 이후 격렬해진 러-우크라 간 드론 난타전이 기어이 발트 연안 3개국(발트 3국,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으로 옮겨붙었다. 의도하지 않은 우크라이나 드론의 유류 저장소 타격으로 에비카 살리냐 총리(신통합당) 주도의 연정이 지난 14일 붕괴하는 라트비아의 정치적 격변을 지켜본 러시아가 발트 3국을 향해 협박성 '드론 공세'를 펼치면서 발트 3국이 화들짝 놀란 표정이다.

문제가 된 드론들은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의 발트해 석유 수출 항구를 향해 쏜 것으로, 어떤 이유로든 경로를 벗어나 발트 3국의 영공을 침범하는 바람에 국제적 분쟁의 불씨가 됐다. 지난 3월 말부터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이 집중된 발트해 연안의 러시아 석유 수출항 우스트루가에서 에스토니아 영공까지는 불과 25㎞ 정도 떨어져 있다. 발트 3국에서 날아오는 우크라이나 드론에게 발트 3국이 영공을 열어줬다고 러시아가 주장할 수 있는 이유다. 


발트해 연안 우스트루가 등 러시아 석유 수출항의 위치. 에스토니아에서 겨우 25km 떨어져 있다. 아래쪽 리보프, 키예프 등 우크라이나에서 발사된 드론은 벨라루스와 발트 3국을 거쳐 러시아 수출항을 타격할 수 있다/얀덱스 지도 캡처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 드론이 발트 3국 영공에 점점 더 자주 출몰하자, 러시아 해외정보국(SVR)은 19일 우크라이나가 라트비아를 설득해 러시아에 대한 드론 공격에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우크라이나군 드론 부대가 아다지, 셀리야, 리엘바르데, 다우가프필스, 예카브필스 등 라트비아의 5개 군사 기지에 배치돼 러시아 대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공세를 폈다. 우크라이나는 이를 통해 군사·경제적 후원자인 유럽연합(EU)에게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공격 능력을 입증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라트비아는 이를 모두 즉각 부인했다. 
바이바 브라제 라트비아 외무장관은 이날 "라트비아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토를 공격할 수 있도록 영공을 열어주지 않는다"며 "SVR의 주장은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브라제 장관은 "러시아가 또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이번에는 SVR이 허위 정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소셜 미디어(SNS)에 썼다.

이후 또 다른 발트 국가인 에스토니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토(NATO) 전투기가 자국 영공에서 우크라이나 드론을 격추했다고 발표했다. 하노 페브쿠르 에스토니아 국방장관은 이날 발트지역 인터넷 매체 델피(Delfi)와 인터뷰에서 "드론 한 대가 에스토니아 상공으로 날아왔다가 보르츠예르브 호수 상공에서 격추됐다"며 "이 드론은 러시아의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던 우크라이나제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페브쿠르 장관은 "(이웃) 라트비아로부터 경고가 왔고, 우리 레이더에도 드론이 포착됐다"며 "이 사건 뒤 곧바로 우크라이나 국방부와 접촉해 '의도치 않은 사고였다'는 사과를 받았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장거리 드론 '류티'/사진출처:우크라 국방부
상공을 나는 드론/영상 캡처


앞서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도 지난 15일 자국 영공을 침범하는 우크라이나 드론을 격추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드론의 비행 경로를 문제삼는 러시아 당국의 대응은 SVR의 이날 성명이 처음은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러시아 석유 수출항을 겨냥한 우크라이나 드론이 정상 궤도를 벗어나 발트 3국 영공에서 출몰하자, 러시아 당국은 즉각 자위권 발동을 언급하며 발트국가들을 협박해 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지난 3월 "우크라이나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EU와 나토 국가들을 맹목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4월에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사무총장, 장관급)가 발트 3국과 핀란드에 "러시아는 자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발트 3국은 공동으로 자국 영토와 영공을 사용할 권리를 우크라이나군에게 부여하지 않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나아가 우크라이나 드론이 자국 영공에 진입하는 것은, 러시아의 전자전(EW) 방어 시스템에 의해 경로가 틀어졌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러시아와 발트 3국 중 누구의 주장이 객관적으로 더 그럴 듯할까? 전쟁 중에 적대 국가와 진실을 주고 받는 일은 솔직히 기대하기 어렵다. 우크라이나 전쟁 보도에서 드러난 저널리즘의 불공정 사례를 분석한 책 '우크라이나 전쟁 3년째 전쟁 저널리즘'(이진희 저 2024년 10월 맑은 샘 발간)은 전시에는 국익을 위해 어떤 거짓말도 서슴치 않는다고 짚었다.

같은 맥락에서 우스트루가항 등 발트 연안의 러시아 본토로 날아가는 우크라이나 드론의 비행 경로를 언론 보도와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분석해 보면, 러시아와 벨라루스,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국경을 따라 또는 그 근처를 지나간다고 꼭 집은 스트라나.ua의 보도를 주목할 만하다. 이 매체는 "우크라이나 드론의 비행 경로는 이론적으로 러시아 방공 시스템의 회피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면서 "그러나 이를 인정하는 국가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측의 거듭된 경고로 발트 3국의 대응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실질적인 안보 위협을 느끼기 시작한 것. 자칫하면 러시아가 자위권 차원에서 (우크라이나 드론 부대가 주둔하고 있다는) 라트비아 5개 군사기지를 향해 미사일·드론 공격을 가할 명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러시아가 발트 3국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미국이 간섭하지 않고 △유럽의 반격시, 러시아가 핵무기 사용(혹은 최후통첩)할 자세가 되어 있으며 △발트해 해상 봉쇄와 같은 유럽의 대(對)러 압박이 위험 수위를 넘어설 경우에 한해서다. 우크라이나 드론의 경로 이탈은 위험 수위를 넘어선 대(對)러시아 압박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나머지 두 가지 조건에 대해서는 러시아가 '실행 가능하다'는 암시를 끊임없이 던져주고 있다. 19일 시작된 러시아-벨라루스 간의 공동 핵 훈련이 단편적인 예다. 러-벨라루스 국방부는 19~21일 사흘간 공격 위협을 받는 상황을 상정한 핵무기 준비및 사용 훈련을 벌인다고 발표했다. 전략미사일군, 북부·태평양함대, 장거리항공사령부 등 핵무기 보유 부대와 레닌그라드·중부군관구 등이 훈련에 참여한다. 러시아 국방부는 또 벨라루스에 배치된 핵무기의 실전 운용에도 훈련의 중점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벨라루스에 전술핵,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 '오레슈니크' 등을 배치해놓고 있다.

 

러시아의 오레슈니크 중거리 탄도 미사일. RS26 루베즈의 개량형이라는 분석도 있다/유튜브 캡처


 

러시아의 오레슈니크 탄도미사일이 처음으로 우크라이나 르보프(르비우)를 타격한 장면/텔레그램 영상 캡처 

하지만 러시아의 자위권 경고는 아직까지 심리전의 성격이 강하다. 러시아가 진정으로 의도하는 것은, 우선 유럽이 해상 봉쇄 등 우크라이나 전쟁에 더 깊숙이 개입하는 것을 막고, 나아가 유럽의 대(對)우크라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것이다. 유럽도 미-러 정상 간의 '앵커리지 정신'을 수용해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주(州) 철군 등 미-러-우크라 3자 평화협상이 타결되도록 동참할 것을 압박하는 카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트 3국은 스스로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구소련의 발트 3국은 강력한 반(反)러 국가들로,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앞장 서 지지하고 EU와 나토에 러시아의 위협을 끊임없이 경고해 왔지만, 태세 전환 조짐이 조금씩 보인다.

지난 4월 초,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가 에스토니아를 공격할 계획이라고 주장하자, 에스토니아 정부는 발끈하며 젤렌스키 대통령를 대놓고 비난했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아예 "러시아의 침공 위협은 없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이후 발트 3국은 우크라이나를 향해 러시아 공격 시 발트 3국의 영공을 침범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잇달아 발표했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에스토니아 측의 우크라이나 드론 격추다. 에스토니아는 19일 나토 전투기를 동원해 에스토니아 영공을 침범한 우크라이나 드론을 격추한 뒤 즉각 이를 발표했다. 지난달(4월) 25일 우크라이나와 공격용 드론과 전자전(EW) 방어 시스템의 공동 생산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행보다. 당시 양해각서는 키예프(키이우)를 방문한 하노 페브쿠르 에스토니아, 미하일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이 서명했다.

스트라나.ua는 "발트 3국의 최근 움직임은 러시아와의 전쟁 위험에 더 이상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짚었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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