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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 대한 미국의 '에픽 퓨리(거대한 분노) 작전'(이란 전쟁)이 4일 닷새째로 넘어간다. 초반 판세는 일방적인 미국 우세 양상이다. 일찌감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비롯해 이란의 정치 군사 지도부를 대거 제거했다. 그렇다고 이란의 권력 체제가 무너질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전쟁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전쟁이 길어지면 당사자들은 차츰 깊은 '수렁'으로 빠져든다. 포연에 휩싸이지 않은 이웃나라들이 이득을 챙기는 건 당연한 수순. 전쟁을 승리로 끝내 미국이 중동의 지정학적 지형을 완전히 바꿀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전쟁이 막 시작된 지금 최대 승자는 이웃나라 러시아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전쟁 당시 최대 승자는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일본이었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숨은 승자는 미국이라는 진단과 일맥상통한다.
'우크라이나전 3년째 전쟁 저널리즘'(이진희 저 맑은 샘 출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 6개월이 지난 2024년 10월 기준으로 최대 승자는 미국이었다.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영국 외무장관은 2024년 1월 18일 다보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 우크라이나 조찬에서 “미국은 단 한 명의 미국인도 잃지 않고, 러시아 무기의 50%를 파괴하는 데, 겨우 국방예산의 10%를 썼다”고 주장했다. 미국 측에 “존경한다”고 비꼬기도 했다.
린지 그레이엄(Lindsey Graham) 미 공화당 상원의원은 2023년 말 미국의 대(對)우크라 추가 군사지원안이 하원에서 발목이 잡히자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벌이는 것은 미국에게 좋은 투자”라며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도움으로) 18개월 만에 빼앗긴 영토의 절반을 되찾았고, 미국인은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 나토(NATO)는 (핀란드, 스웨덴 가입으로) 확장됐고, 러시아 경제는 붕괴되고 군대는 파괴됐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승자라는 논리다. 당시 미 국방부도 대우크라 지원을 ‘현명한 투자’라고 부르며 “미국에서도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언론 플레이를 펼쳤다.
이 주장은 맞다. 당시 미국은 5년(2019~2023년)간 글로벌 무기 판매량이 이전 5년보다 17%P 이상 늘어나 전체 무기 거래의 40% 이상을 점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경쟁하던 러시아는 당연히(?) 무기 수출이 급감했다. 스웨덴 싱크탱크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발표한 '2023년 국제 무기 이전 동향' 보고서를 보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고 역내 방공망을 강화해 온 유럽은 무기 수입량이 이전 5년(2014~2018년)에 비해 1.94배 늘었다. 전쟁 이전 글로벌 무기 수입 점유율이 0.5%도 안 됐던 우크라이나는 5년 사이에 점유율 4.9%를 차지하면서 세계 3위 수입국으로 올라섰다. 이 같은 무기 수요를 흡수한 국가는 당연히 미국이었다.
미국은 또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의 에너지 지형을 완전히 바꾸는데 성공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러시아로부터 석유와 가스 등 값싼 에너지 자원을 확보해온 독일 등 유럽이 미국에서 비싼 에너지를 싣고 오도록 만든 것이다. 미 블룸버그 통신은 2024년 3월 31일 자체 집계 결과를 바탕으로 유럽의 미국산 석유 수입량이 3월 하루 평균 220만 배럴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했다. 하루 평균 수입량도 전쟁 전인 2021년 110만 배럴에서 2023년 180만 배럴로 크게 늘어났다. 특히 프랑스와 스페인 등은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인도 등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미국산 에너지 수입량도 크게 늘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는 원유 가격의 안정을 위해 자발적 감산 조치를 코로나(COVID 19) 사태 이후 계속 시행했는데, 미국은 생산 증가 → 수출 확대라는 어부지리를 챙기는 형국이다. 로이터 통신은 2024년 상반기 OPEC의 세계 석유 시장 점유율이 27%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이 그 지분을 챙겼다.

그러나 이같은 판세는 미국의 이란 전쟁으로 뒤바뀔 조짐이다. 이번에는 미국이 전쟁 당사자로 등장하면서 러시아가 어부지리를 챙길 전망이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 블룸버그 통신의 칼럼니스트 마크 챔피언은 3일 미국의 미사일 소비량과 유가 및 가스 가격의 급등을 근거로 "이란과의 전쟁에서 유일하게 명백한 승자는 푸틴 대통령"이라고 선언했다. 나아가 "전쟁이 길어질 수록 러시아가 얻는 수혜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군사작전이 4~5주간 이어지면, 미국의 공격 및 방어 미사일은 크게 줄어들고, 러시아가 전비(戰費)를 충당하는 석유 및 천연가스의 가격은 올라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의 장기간 폐쇄나 걸프만의 석유 및 가스 공급 중단은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글로벌 수요를 다시 불러올 수 있다"며 "미국이 인도에 모스크바산 원유 구매량을 줄이도록 압력을 가한 후, 바다에 떠돌고 있는 러시아발 유조선들이 구매자를 찾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테르예 오슬란드 노르웨이 에너지부 장관은 3일 오슬로에서 열린 회의에서 "유럽연합(EU)은 러시아산 석유및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정했지만, 지난 3~4일간 상황이 복잡하게 변했다"며 "현재의 지정학적 여건을 고려할 때, (EU에서) 러시아산 가스 구매 논의가 재개될 것"으로 전망했다. 유럽의 천연 가스 가격은 최근 75% 급등해 2023년 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상태다. 가스 가격은 앞으로 더 오를 수 있다.
노르웨이는 유럽 최대의 에너지 생산국이다. 가스의 경우 유럽 수요의 약 30%를, 석유의 경우 약 20%를 담당하고 있다. 노르웨이 에너지 분야 전반을 담당하는 오슬란드 장관의 이같은 발언을 허투루 넘길 수는 없다.
앞서 EU는 오는 2027년 말까지 러시아산 가스의 수입을 완전 금지하는 방안을 최종 승인한 바 있다. 이란 전쟁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무기 제공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칼럼리스트 챔피언은 내다봤다. 그는 칼럼에서 "토마호크 공격용 장거리 미사일이나 패트리어트 방공 미사일을 발사하는 데는 몇 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하나를 교체하는 데는 최대 2년이 걸린다"며 "이란 전쟁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패트리어트 미사일 공급을 위협하고, 토마호크 미사일의 이전을 먼 미래로 넘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이같은 우려에 공감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3일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와의 인터뷰에서 "이란 사태로 우크라이나에서 방공 미사일의 부족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지난해 6월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 때,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사일 공급 프로그램이 지연되었다"고 회고했다. 또 "아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다시 일어날까 봐 두렵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는 유럽 자금으로 미국 무기를 구매하는 PURL 프로그램을 통해 패트리어트 미사일 등 미국 첨단 무기를 충당하고 있다.

칼럼은 결론적으로 "미국의 이란과의 전쟁은 크렘린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한 시기에, 키예프(키이우)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불리한 시기에 시작되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이란에 이어 우크라이나에서도 어떤 조건이든 휴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백악관에 확산된다면, 푸틴 대통령에 대한 압박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