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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현지시간)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도심을 질주하던 장갑차량 2대를 헝가리 대(對)테러부대 요원들이 막아 세웠다. 그리고 차량에 탄 우크라이나인 7명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헝가리 정부가 이날 SNS(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한 우크라이나의 현금 수송 차량을 억류하는 순간이다. 헝가리 당국은 압수한 외화 현금과 금괴 사진을 공개하며 우크라이나인 7명을 돈세탁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우크라이나 정부는 "합법적인 현금 수송작전을 방해한 헝가리의 국가 테러"라고 반박했다.

헝가리 정부가 '우크라이나 금괴 수송 (차단) 작전'이라고 명명한 이 사건은 그동안 양국 간에 하나 둘씩 쌓인 반목으료 터져나온 또다른 형태의 충돌에 불과하다. 지난 4년간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친러 성향을 보인 헝가리는 이웃 나라 우크라이나와 사사 건건 반목하고 충돌해 왔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이즈베스티야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헝가리 대테러 요원들은 5일 약 4천만 달러(약 590억 원)와 3천500만 유로(약 602억 원)의 현금과 금 9㎏을 운반하던 우크라이나 오샤드방크(은행) 소속 직원 7명을 체포, 연행했다. 헝가리 정부는 그 장면을 영상으로, 압수한 화폐와 금괴를 사진을 공개했다.
헝가리 당국은 이들이 마피아의 자금을 돈 세탁한 혐의를 잡고 조사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억류된 우크라이나인 중에는 우크라이나 보안국(SBU) 산하 테러 대응 특수작전센터의 소장을 지낸 겐나디 쿠즈네초프 장군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안드레이(안드리) 사비가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금융권의 그간 현금 수송 방식을 근거로 "헝가리가 우크라이나인을 인질로 잡고 돈을 훔친 것"이라며 "국가 테러"라고 비난했다. 오샤드방크 측도 이날 "러시아의 침공(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뒤 외화와 귀금속은 육로로 운송되고 있다"며 "이번 운송도 오스트리아 라이파이젠 은행과의 계약에 의거해 유럽 세관 규정을 지키면서 현금과 금을 받아 오던 중"이라고 설명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번 사건이 2010년부터 무려 16년간 장기 집권해온(1998~2002년에도 한차례 집권했다/편집자)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정부의 운명이 걸린 4월 총선을 한달여 앞두고 터졌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페테르 마자르가 이끄는 야당(친유럽 성향의 티서당)에 뒤지는 것으로 알려진 오르반 총리측이 판세를 뒤집기 위해, 아니면 오르반 총리의 재집권을 막으려는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술수를 차단하는 차원에서 이번 사건이 터진 것으로 분석된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유럽연합(EU)과 우크라이나는 오르반 총리의 총선 패배를 바란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있다. 오르반 총리는 선거 유세를 통해 "집권당(피데스당)이 헝가리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막고 있으며, 저렴한 러시아산 에너지 구매로 전쟁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줄이고 있다"는 논리로 대응한다. 헝가리 총선을 앞두고 키예프(키이우)와 부다페스트 간의 정치적 충돌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터진 이번 사건도 정치적 맥락에서 이해하는 게 맞다.
객관적으로는 오르반 총리 정부가 무리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후 흐름을 오르반 총리가 그린 그림대로 흘러가는 듯하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현금과 금괴의 수송 주체인 우크라이나 오샤드방크의 설명은 사실과 부합한다. 우크라이나 금융권은 2022년 2월 전쟁 발발 이전에는 외국에서 들여오는 현금과 귀금속 등을 키예프 보리스필 공항에서 통관한 뒤 현금 수송차량으로 수송했다. 하지만 전쟁 발발이후 유럽(주로 오스트리아)에서 헝가리를 경유하는 육로로만 운송되고 있다. 더 길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위험한 여정이지만, 전쟁 중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오랫동안 우크라이나에 외화와 귀금속을 공급하는 주요 업체는 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하는 우크라이나 라이파이젠 은행이었다. 오스트리아 빈에 본사를 둔 라이파이젠 은행 인터내셔널의 자회사다. 이후 우크라이나 국영 은행인 프리바트방크(은행)과 오샤드방크가 이 시장에 합류했다.
2025년 한 해 동안 우크라이나 금융권은 총 118억 달러의 외화를 수입했고, 2024년에는 159억 달러, 그리고 전쟁 이전인 2021년에는 해외로부터 43억 달러를 들여왔다.
오샤드방크 측은 "오랫동안 거의 매주 현금과 귀금속을 오스트리아 라이파이젠 은행과 표준 서류 절차를 거쳐 운송해 왔다"며 "이번 사건은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조치"라고 주장했다. 또 "헝가리와 유럽 사법 당국에 항소하고, 돈과 직원, 장갑차량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며 "신속히 반환되지 않으면 자금 탈취 사건으로 보고 유럽 사법 재판소에 제소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오르반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돈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가입도 허용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구금된 우크라이나인 7명은 모두 추방될 것"이라고도 했다.
현금 수송및 탈취 사건으로 헝가리와 우크라이나 관계는 더욱 험해졌다. 사건은 곧바로 EU의 대(對)우크라 900억 유로 대출금 문제로 번졌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이튿날(6일) "오르반 총리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EU의 대출을 계속 막을 경우, 그의 전화번호를 우크라이나 군에 넘기겠다"며 "그들의 언어(군사적 행동)로 이야기하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헝가리 정가가 들고 일어선 것은 아주 당연하다. 4월 총선에서 오르반 총리에 도전하는 야당 지도자 페테르 마자르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겨냥해 "어떤 외국 정부 지도자도, 헝가리인 한 명에게조차 위협을 가할 수 없다"며 "오르반 정부는 물론, (총선 결과로) 들어설 미래의 티서(당) 정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며 해명을 요구했다.
마자르는 나아가 "젤렌스키 대통령이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할 때까지 EU는 우크라이나와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헝가리의 에너지 공급은 정당 정치나 선거 운동을 초월하는 국가적 문제"라는 이유를 들었다. 스트라나.ua는 "마자르의 이같은 발언은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헝가리에 널리 퍼져 있음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오르반 총리의 정적이자, 친유럽 성향의 야당 지도자 조차 이같은 사회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설화'(舌禍)로 이어진 EU의 대 우크라 대출금 문제는, 우크라이나가 헝가리 에너지 안보를 직접 건드리면서 뜨거운 감자가 됐다. 지리상 해상 운송이 불가능한 헝가리와 슬로바키아에게는 우크라이나를 1천500㎞ 거치는 드루즈바 송유관이 에너지 안보의 핵심 축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손상됐다'는 이유로 드루즈바 송유관 사용을 지난 1월 말 차단했으니 오르반 총리와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가 열을 받을 만도 했다.
오르반 총리는 EU 집행위원회에 우크라이나가 드루즈바 송유관을 통해 러시아산 석유를 계속 공급하도록 압력을 가해줄 것을 촉구했고, 슬로바키아와 함께 우크라이나에 대한 경유 공급을 중단하는 등 우크라이나를 압박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거듭된 공격 탓에 드루즈바 송유관의 복구까지는 기술적으로 한 달 반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당연히 헝가리와 슬로바키아는 이 설명을 믿지 않았고, 부다페스트는 송유관 관련 위원회의 접근권(회의 참가)을 요구했지만, 키이우는 이를 거부했다. 화가 난 오르반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필수 물자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충돌의 본질은 4월 총선을 둘러싼 양국의 정치적 의도에서 찾아야 한다. 헝가리는 두르즈바 송유관 폐쇄 등 우크라이나의 모든 조치를 총선을 앞두고 오르반 총리에게 정치적 타격을 가하기 위한 의도적인 시도로 본다. 헝가리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지난달(2월) 23일 EU의 대(對)우크라 900억 유로의 대출과 대러 추가 제재안을 거부했지만 성에 차지는 않는 듯하다. 키예프는 자칫하면 오는 4월부터 EU 등 외부의 재정 지원 없이 국가 살림을 꾸려나가야 할 처지로 몰렸다.
현금 수송이 양국간 외교 현안으로 비화한 것도 이같은 양국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
유럽 일각에서는 오르반 총리가 드루즈바 송유관 문제를 국내 정치(총선)에 이용하기 위해 무리하게 우크라이나 이슈를 부각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야당에게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페테르 시야르토 헝가리 외무장관은 4일 모스크바를 방문, 러시아에 포로로 잡힌 헝가리계 전쟁 포로 두 명(헝가리, 우크라이나 이중 국적자)을 데리고 귀국했다. 이는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북한군 포로 2명의 송환 해법을 제시한 것으로 이해되지만, 키예프에서는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4월 총선이 끝날 때까지 양국은 사사건건 충돌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