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기사
#1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말은 그저 홍보용일 뿐이다."(20일 트럼프 미 대통령)
#2
"3월에는 러시아의 미사일 발사가 줄었다. 1월, 2월에는 주당 100기 이상(158기, 116기 등 100기 이상, 최저 96기)이었으나 3월에는 39기, 86기, 2기에 불과했다.(23일 기준 우크라 대통령실 발표 주간 포격 통계 참조).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24일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기사 중 '우크라이나 타격'(Удары по Украине) 코너에서 "러시아가 어젯밤(23일 밤)부터 미사일과 드론을 이용해 우크라이나를 공습하고 있다"며 "서부 르보프(르비우)를 포함해 주요 도시 중심지들이 대낮에 공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러시아 드론들은 거의 하루 종일 우크라이나 여러 지역 상공을 날아다녔으며, 저녁 무렵에는 르비우와 비니차, 지토미르, 테르노필 등 (이전에는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우크라 서부 지역을 때렸다"고 전했다.
서방 외신들도 "400대 이상의 러시아 드론이 대낮에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를 공격했다"며 "러시아의 공습이 통상 밤(이튿날 새벽)에 집중된 점에 비춰보면 대낮 폭격은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 드론이 이처럼 대낮에 주요 도시의 상공에 나타났으나, 우크라이나 방공망은 이들을 요격하기에는 상대적으로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르보프에서는 주거용 건물은 물론이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건축물도 훼손된 것으로 전해졌다. 중세 시대 건축물이 보전된 르보프 구도심은 전역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르보프는 러시아가 최첨단 단거리 탄도 미사일이라고 자랑하는 '오레슈니크'의 공격을 한 차례 받았을 뿐, 러시아군의 드론 공격이 거의 없었던 곳이다.
러시아의 대낮 드론 공격은 #1, #2에서 보듯이 아주 상징적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4년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축적된 드론 운용 경험으로 이란의 샤헤드 드론 공격에 취약한 걸프(중동) 지역 상공을 지킬 수 있고, 또 그 경험과 기술을 미국 등과 공유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트럼프 미 대통령은 그때마다 "우크라이나 지원은 필요 없다"고 일축했다. 그 이유가 이번에 일부 확인된 것 같다. 우크라이나가 자랑하는 드론 요격 시스템이 러시아군의 대낮 공격도 제대로 막지 못했으니 '홍보용 멘트'라는 폄훼 발언을 반박할 수도 없을 것이다.
스트라나.ua는 "러시아가 시야가 확 트인 대낮에 주요도시들을 거침없이 공격했다"며 "우크라이나의 드론 방어 시스템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과 중동 국가들에게 우크라이나가 샤헤드 방어 전쟁에서 없어서는 안 될 파트너이며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험을 보유하고 있음을 입증하려 애쓰는 시점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러시아군은 이번 공격을 통해 젤렌스키 대통령의 주장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하다"고 짚었다.

물론 러시아의 이날 대규모 드론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방공 시스템이 마비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일부 드론 추적 단체는 지난 24시간 동안(23일 해질녁에서 24일 저녁까지) 우크라이나가 800대 이상의 샤헤드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설사 그렇더라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미사일·드론 공격이 줄어 남아도는 '요격 드론'을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교환하자고 한 제안을 무색하게 만든다. 러시아 드론들이 내낮에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까지 제대로 때린 것은 걸프 지역을 겨냥해 날린 젤렌스키 대통령의 드론 방어 발언에 대한 신뢰성을 훼손했다고 할 수도 있다.
이날 드론 공격을 당한 르보프시 시장과 우크라이나 드론 방어부대장 간에는 날카로운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 드론 방어 부대 로베르트 브로브디(호출부호, 아이디 마자르) 부대장은 25일 안드레이(안드리) 사도비 르비우 시장이 전날 러시아의 드론 공격 이후 우크라이나 드론 방공망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한 데 대해 "부디 징징거리지 말라"며 "날아오는 드론의 97%를 격추한 건 대단한 성과"라고 공박했다. 브로브디 부대장은 "3월 한 달 동안 우크라이나 상공을 날아다닌 러시아 드론이 100대 미만이었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며 "하루에 보통 400~500대는 날아다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데, 샤헤드 드론 556대 중 15대만 놓친 것은 대단한 성과다. 지구상의 어떤 방공 시스템도 드론의 95~97 %를 격추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방어부대장이 아무리 선방했다고 주장하더라도, 러시아 드론이 우크라이나의 가장 외딴 지역까지 비교적 자유롭게 비행하며 주요 도시의 중심부를 공격했다는 것은 우려할 만하다.

이날 공격 하나만으로 우크라이나의 드론 방어 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섣부르다. 트럼프-젤렌스키 대통령이 왜 그동안 드론 방어 작전에 대해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지 살피는 게 보다 객관적일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MS NOW TV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이란 공격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드론 지원 관련 발언은 단순한 정치적 홍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만난 스테파니 룰 기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의 드론 방어 지원및 도움에 대해 물었더니, 그(젤렌스키 대통령)가 우리를 도왔다고 말하는 모든 것은 순전히 정치적, 홍보 목적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에도 걸프 지역의 드론 공격 방어 작전을 젤렌스키 대통령의 도움이 필요 없다고 여러 차례 말한 바 있다.
트럼프-젤렌스키 대통령의 주장이 서로 엇갈리는 게 포착된 것은 지난 3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카타르 국왕 및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과 우크라이나의 드론 방어 기술 활용에 대해 논의했다고 발표하면서부터다. 그는 "중동 파트너 국가를 보호하기 위한 (드론 방어) 협력은 우리 자신의 방어 능력을 약화시키지 않는 선에서만 가능하다"고 신중한 자세를 유지했다. 나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휴전이 이루어진 후에야 중동 국가들이 이란 드론과 싸우는 것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며 중동 지도자들이 러시아에 휴전 압박을 가해줄 것으로 촉구하기도 했다.
그의 이같은 태도는 파이낸셜 타임스(FT)의 5일 보도를 계기로 바뀐다. FT는 미국과 최소 한 곳의 걸프 국가가 이란의 샤헤드 공격 드론을 요격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와 요격 드론 구매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수천 달러에 불과한 요격 드론으로 러시아군의 샤헤트 개량 드론(게란)을 첫 국가"라고 치켜세웠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목소리가 커진 것은 당연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도 드론 문제에 대해 도움을 요청했다며 자가 발전(?)을 시작했다. 10일에는 대국민 영상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는 드론 공격 방어에 세계 최고의 경험을 갖고 있다”며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걸프 국가들의 요청에 따라 우크라이나 드론 전문가들을 보내 방어 기술을 전수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미국의 요청을 받아 요격 드론과 전문가팀을 즉각 파견했다고도 했다.
그의 주장은 자연스럽게 우크라이나 요격드론과 탄도 미사일을 격추하는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교환 제안으로 이어졌다. 샤헤드 드론 요격에 최적화한 드론을 줄테니, 패트리어트를 달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요격 드론은 우크라이나 와일드 호넷츠사가 개발한 드론 '스팅'이다. 최고 속도가 시속 300㎞에 달해 평균 185㎞ 정도인 샤헤드 드론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한다. 요격 성공률이 최대 90%에 달한다는 게 우크라이나 측의 주장이다. 대당 가격도 3천 달러 안팎이어서 가성비 측면에서는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비교조차 안된다.

그 즈음 이스라엘도 우크라이나 도움을 원하고 있다는 보도가 현지 통신사 Ynet를 통해 알려졌다. 이 통신은 14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회담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며 "우크라이나가 갖고 있는 이란 샤헤드 드론 방어 경험을 공유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알렸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콧대가 더 높아지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계속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을 깔아뭉개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폭스 뉴스와 14일에는 NBC와의 인터뷰에서 "중동에서 이란의 드론 방어에 우크라이나(혹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도움은 필요 없다"고 직설적으로 거부했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맞다면 그 이유는 뭘까?
스트라나.ua는 21일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차례, 그것도 상당히 강경한 어조로 젤렌스키 대통령의 드론 방어 제안을 거절했다"며 드론 제조 회사 대표의 생각을 소개했다. 우크라이나 드론 제조 업체 대표는 "(드론 관련 제안에 대한) 미국의 회의적인 반응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다양한 작전 상황에서 드론을 운용해본 우리의 경험은 실로 엄청나지만, 드론의 생산은 중국산 부품을 조립하는 것에 불과해 미국이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중국이 설계하고 만든 부품으로 조립된 드론을 미국산 미사일과 교환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며 "미국이 받아들인다면, '세기의 거래'가 될 터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으로 보면 거절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중국산 부품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설계하고 개발한 부품으로 드론을 생산하는 허브를 구축하고자 하는 미국에게 우크라이나는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도 했다.
지극히 현실적인 그의 실무적 판단이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댄 드리스콜 미 육군 장관은 13일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 기반의 드론 '메롭스' 1만대를 이란에 대한 군사작전을 시작한 후 닷새도 지나기 전에 중동으로 보냈다"며 "이 드론은 원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개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시험된 드론 방어 시스템을 중동에 급하게 배치하고 있다는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의 7일 보도와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메롭스 드론은 구글의 전 CEO인 에릭 슈미트가 투자한 방산 벤처 기업인 '프로젝트 이글'에서 개발했으며, 우크라이나에는 2024년 제공된 것으로 알려졌다. 메롭스 드론은 현재 대당 약 1만 4천~1만 5천 달러이지만, 대량 주문 시 3천~5천 달러로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드리스콜 장관은 예상했다. 샤헤드 드론(최소 2만 달러)의 4분의 1 가격이다. 드리스콜 장관은 "가성비 차원에서 보더라도 이란이 발사한 드론을 미국이 요격한다면, 이란은 쏘면 쏠수록 손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드론 지원을 거절했지만, 걸프 지역 국가들은 수락한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통신은 20일 루스템 우메로프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 서기(사무총장, 장관급)의 소셜 미디어를 인용, 우크라이나가 중동 5개국에 드론 요격 부대를 배치했다고 보도했다. UAE와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요르단이다. 중동에 드론 전문가들을 파견할 것이라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이 현실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여전히 "미국과 드론 협정 체결에 큰 관심이 있다"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등 미국에 대한 구애를 중단하지 않고 있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