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행동과 이란의 보복이 중동 에너지 시설 전반으로 번지면서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있다. 3월 19일 브렌트유는 장중 배럴당 119.13달러까지 치솟았다. 중동발 공급 불안이 커질수록 시장의 시선은 자연히 러시아산 원유로 향한다. 한국정부도 정유업계와 러시아산 수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통상부는 미국 정부가 유가 폭등을 막기 위해 대러시아 원유 제재를 일시 해제했다. 이후 러시아산 원유 등 수입 가능성을 타진중이라고 mbc가 보도했다.
현재 러시아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918만4천 배럴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인터팍스가 인용한 OPEC 월간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의 2026년 2월 생산은 1월보다 5만6천 배럴 줄어든 하루 918만4천 배럴이었다. 다만 IEA는 같은 달 러시아 원유 생산을 하루 860만 배럴로 추정해 기관별 차이를 보였다. 숫자에는 차이가 있지만, 큰 그림에서는 러시아가 여전히 하루 900만 배럴 안팎을 생산하는 핵심 산유국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러시아 언론은 이번 전쟁이 자국 에너지 업계에 분명한 가격 수혜를 안겨준다고 본다. 코메르산트는 호르무즈 해협 불안과 중동 공급 차질이 러시아 석유·가스 기업들에 유리하게 작용하며 자국산 대표 원유인 우랄유 할인 폭 축소와 러시아 LNG 수요 확대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특히 일부 분석가는 중국과 인도가 해협을 통해 들여오던 물량 일부를 러시아산으로 대체할 수 있고, 이란산 수출 차질이 우랄유 할인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로이터에 따르면 아시아의 3월 러시아산 연료유 수입은 300만 톤을 넘어 사상 최대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중동 정제시설 차질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동남아와 중국이 러시아산 물량을 더 많이 끌어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중동 불안이 자국산 원유와 연료의 상대적 가치를 높여주는 셈이다.
하지만 러시아를 이번 전쟁의 ‘수혜자’로 단정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러시아 내부의 주된 시각은 오히려 신중론에 가깝다.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크렘린궁 보좌관은 18일 코메르산트 인터뷰에서 현재 전쟁의 영향을 받고 있는 각 국가들과 러시아는 수십 년 동안 해양 분야를 포함해 긴밀한 무역·경제 및 과학·기술 협력 관계를 구축해 왔다고 전제한 뒤 러시아가 중동 분쟁으로 이득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며 석유 및 가스 가격 상승 역시 지속적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푸틴 대통령도 지난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원유가 하루 약 1,400만 배럴, 곧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출의 약 3분의 1에 달했다며, 이 통로가 사실상 막힐 경우 중동 산유국들의 생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시 말해 호르무즈 마비는 러시아에 고유가로 인한 득보다는 러시아가 산유국이기 때문에 세계 수요와 무역 흐름에 의존하는 수출국으로서 가격 상승 반사이익 있지만, 시장 전체를 뒤흔드는 충격을 반길 수 없다는 이야기다.
더 중요한 것은 고유가가 곧바로 러시아의 증산과 수출 확대를 뜻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터팍스가 전한 OPEC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의 2월 원유 생산은 하루 918만4천 배럴로, OPEC이 합의상 허용됐던 957만4천 배럴에 39만 배럴 못 미쳤다. 서류상 증산 여지는 남아 있었지만 실제 생산은 그 수준까지 올라서지 못한 셈이다. 코메르산트 역시 중동 긴장이 러시아산 원유의 할인 폭 축소와 수요 회복 가능성을 키운다고 보면서도, 운임 상승과 물류 부담이 그 효과를 일부 상쇄할 수 있다고 짚었다. 즉, 가격은 오르더라도 그것을 실제 물량 확대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실물 수출 여건도 녹록지 않다. 로이터에 따르면 러시아는 중동발 공급 불안으로 높아진 수요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프리모르스크·우스트루가·노보로시스크 등 서부 주요 항만의 3월 적재량은 하루 170만 배럴 수준까지 떨어질 수 있으며, 악천후와 드론 공격이 선적 일정 전체를 흔들고 있다. 이미 2월 러시아의 원유 수출은 하루 420만 배럴로 감소했고, 원유·석유제품 수출 수입도 95억 달러로 2022년 이후 최저 수준까지 내려갔다. 러시아는 유가 상승의 혜택을 일정 부분 누리면서도, 그것을 곧바로 물량 확대와 재정 안정으로 연결하지 못하는 구조에 놓여 있는 것이다.
여기에 장기 변수까지 감안하면 러시아의 계산은 더욱 복잡해진다. 베도모스티 신문은 전쟁이 길어질 경우 고유가가 결국 세계경제 둔화와 에너지 수요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정부 역시 국내 연료 가격이 불안해질 경우 일부 연료 수출 제한을 다시 꺼낼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결국 러시아는 이번 전쟁에서 ‘가격은 얻되, 물량은 마음대로 늘리지 못하고, 장기적으로는 수요 둔화와 내수 불안까지 경계해야 하는 산유국’인 셈이다. 전쟁의 수혜자라기보다, 불안정한 시장에서 제한된 이익과 구조적 제약을 동시에 떠안은 공급자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는 게 러시아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최승현 에디터 buyrussia2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