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승자는 거의 전쟁을 통해 가려졌다. 우크라이나 전쟁(러시아의 공식 명칭은 특수군사작전)과 이란 전쟁(미국의 공식 명칭은 거대한 분노 작전)은 어떻게 기록될까? 아직 진행 중이니,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다.
두개의 전쟁 사이에 다른 점은 분명히 있다. 전쟁 초기의 무자비한 공습 여부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최고지도자를 포함한 정치·군사 지도자들을 제거하고 테헤란 등 주요 정치 군사 핵 시설들을 파괴하면서 극비 작전(거대한 분노)을 시작했다.
러시아군은 푸틴 대통령의 작전 개시 명령에 따라 야음을 틈 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었다. 주요 시설에 대한 공습은 거의 부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형제'와 같은 우크라이나인들과 그들의 민간 시설에 대한 파괴 자제를 푸틴 대통령은 지시했다.


그 결과는 달랐다. 마치 키예프(키이우) 정권에게 겁이라도 주려는 듯 국경을 넘은 러시아군 기갑부대는 유유히 대로를 따라 달렸으나 얼마 못 가 우크라이나 측의 게릴라 작전에 말려 큰 피해를 면치 못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꽃다발을 들고 맞아줄 것으로 기대했느냐"는 러시아군 장성 출신의 카르타폴로프 국가두마(하원) 국방위원장의 핀잔이 나올 정도였다.
미국은 초기 대규모 공습으로 곧 전쟁을 끝낼 것 같은 인상을 안겨주었다. 이란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 등 주요 지휘부가 제거되고, 반격을 가할 주요 군사 시설을 파괴했으니, 이란은 곧 항복할 것 같았다. 이란 반정부 세력이 내부에서 들고 일어나 이란 특유의 신정 체제를 전복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공습으로는 전쟁에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공습에 납짝 엎드려 있던 이란이 조금씩 반격을 가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국제 유가 시장을 뒤흔들었다. 걸프 연안 산유국들도 전화에 휩쓸렸다.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더 큰 충격파를 세계 시장에 던졌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무려 4년 여의 시간이, 이란 전쟁은 벌써 3개월 여의 시간이 흘러갔다. 러시아와 미국은 이제 서로 다른 길을 택한 듯하다. 협상을 통한 종전을 기대하되 그 전략과 과정은 판이하다. 미국은 공습의 한계를 느끼고 서둘러 휴전에 동의한 뒤 협상에 나섰지만, 러시아는 지상전을 계속하며 목표 달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러시아는 특히 휴전을 거부한 채 타의반, 자의반으로 시작된 평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질 때마다 수도 키예프를 위협하는 '강공 작전'으로 상대를 압박하고 있다.

세 차례에 걸친 미-러-우크라 3자 평화협상이 이란 전쟁 발발 후 중단되자, 러시아는 키예프에 대한 위협을 더욱 강화한 느낌이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7, 28일 잇달아 미국에 패트리어트 방공 미사일을 요청하는 발언에서 키예프가 느끼는 위협의 강도를 감지하기가 어렵지 않다.
의문은 러시아가 군사작전의 개시 초기와는 달리, 미-이스라엘처럼 적의 수도(키예프)를 대대적으로 때려 부술지 여부다. 여기에는 러시아 정치 지도자의 의지에다 동원 가능한 무기가 중요한데, 가장 단순한 방법이라면 전술 핵무기의 사용이다. 하지만 몰고올 국제적 파장이 너무 위험해 이를 택하기는 쉽지 않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30일 저녁(현지시간) 대국민 연설(동영상)에서 러시아의 대규모 키예프 공격 가능성을 거듭 경고했다. 그는 "적의 대규모 공습에 대한 첩보 정보는 여전히 유효하니 공습 사이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며 "우리 파트너들(서방 진영)이 러시아 측과 (휴전을) 논의했지만, 모스크바에서 정신을 차릴 것이라는 기대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앞서 스트라나.ua는 28일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 기사 중 '키예프에 대한 공격 위협'(Угроза удара по Киеву) 코너에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장관급, 전 국방장관)가 '러시아는 언제든지 키예프에 대규모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크렘린은 미국에 키예프 공관의 철수를 거듭 권고했다"고 알렸다.
쇼이구 서기는 이날 열린 제1회 국제안보포럼에서 "지난 24일 오레슈니크 탄도 미사일을 포함한 키예프 공습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었다"며 "러시아는 이를 위한 모든 수단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러시아에 남은 것이 없어서 그런 무기(오레슈니크)를 사용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의 이번 키예프 공습은 지난 22일 밤 러시아 점령지인 루간스크주(州) 스타로벨스크의 한 대학를 드론 공격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응징 차원에서 이뤄졌다. 우크라이나의 공격으로 스타로벨스크 대학 기숙사에 있던 10대 학생 등 21명이 사망하고 65명이 부상했다. 분노한 푸틴 대통령은 국방부에 대응 방안 마련을 지시했고, 대규모 키예프 공습이 단행됐다. 러시아 국방부는 그러나 민간인 시설은 공격 대상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쇼이구 서기는 안보포럼에서 외국 공관들에게 키예프를 떠나라는 러시아의 권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다.
반응은 예상한 대로다. 유럽연합(EU) 외교 담당 최고 책임자인 카야 칼라스 고위 대표는 28일 "키예프 측으로부터 전해들었다"는 것을 전제로, "미국 (공관)은 키예프를 떠났지만, 유럽은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우크라 미국 대사관과 우크라이나 측은 미국 공관의 철수를 부인했다.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 외교담당 보좌관도 미국으로부터 (키예프 대피에 대한) 답변을 아직 받지 못했다고 전했으며,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일부 국가들이 모스크바 대피 권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프랑스와 독일은 키예프 공습과 관련해 자국 주재 러시아 대사를 외무부로 초치해 러시아에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임을 전달하는 등 강경 대응했다. 키예프 주재 인도 대사관은 우크라이나에 머물고 있는 자국민들에게 "향후 상황 변화를 고려해 경계를 늦추지 말고 안전 수칙을 철저히 준수할 것"을 당부했다.
우크라이나와 서방 진영은 러시아의 거듭된 키예프 공습 협박에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지만, 내심 고민은 많다. 러시아의 탄도미사일 공격을 막을 패트리어트 방공 미사일의 부족 때문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7일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물자(패트리어트 미사일) 배송을 신속히 처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튿날(28일) 스웨덴 방문에서도 반협박 반호소 식으로 이 문제를 꺼냈다. 하지만 워싱턴에서 들려오는 답변은 아직 없다.

패트리어트 방공미사일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이 직접 우크라이나에 제공하지 않는다. 나토(NATO)가 추진하는, 소위 '우크라이나 우선 지원목록'(PURL) 프로그램에 따라 미국이 유럽 국가들로부터 돈을 받고 미사일을 판매하면 유럽이 이를 우크라이나에 넘기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미국도 이란 전쟁 이후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재고 부족을 이유로 미사일 판매(공급)을 사실상 중단했다.
러시아는 이 틈을 타 키예프에 대한 압박 강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려는 듯하다. 현지에서는 키예프 공격을 자제하려는 "모스크바의 인내도 이제 끝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신 번역을 전문으로 하는 러시아 매체 이노스미(INOCMI)는 27일 '러시아의 자제는 끝났다'는 제하의 '어드반스'(Advance)지 보도를 소개했다. (구유고 연방의) 크로아티아 매체 어드반스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키예프 폭격 결정을 전달했다"며 "크렘린에 전해지는 압박 강도를 볼 때, 이는 허풍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푸틴 대통령이 특수군사작전 개시 명령에서 강조한 '제한적인 작전', '민간인 폭격 자제' 등의 명령이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전쟁을 장기적인 소모전으로 끌고 가 우크라이나는 병력과 탄약, 정치적 안정을 잃고, 서방은 대(對)우크라 지원 의지가 꺾일 때까지 전략적으로 시간을 버는 지금까지의 전략이 더 이상 설득력을 잃었다는 분석에서다.
크렘린을 향한 가장 큰 압력은 군사 행동의 강화를 요구하는 '강경파'(일각에서는 '전쟁파'라고도 한다)로부터 나온다. '크렘린은 목표 달성을 위해 전면전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모스크바는 키예프의 지휘 본부와 산업 시설을 왜 오랫동안 직접 공격하지 않는가?', '특수군사작전이라는 개념이 오히려 전장에서 필요한 각종 결정을 미루는 수단이 된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세력이다.

어드반스는 또 "키예프에 대한 지속적인 폭격 발표는 군사적인 측면보다 훨씬 더 큰 정치적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력한 야간 공습 한 번, 몇몇 인상적인 폭격, 하루 이틀간의 극적인 뉴스 보도로 거두는 효과보다 우크라이나에 전해지는 효과가 더욱 강력하다는 뜻이다. 키예프는 우크라이나의 정치 중심지이자 대(對)러 항전의 핵심인 동시에, 군수 산업과 정보기관, 서방의 원조가 집중되는 배후 거점으로서의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키예프를 그대로 둔 채 전쟁 승리를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라는 주장이기도 하다.
또 석유 수출항 등 주요 에너지 시설에 대한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공격과 물류 거점에 대한 직접 타격 등 러시아가 본토를 유린당하고도 키예프 공격을 더 이상 자제할 타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논리도 작동한다.
정치·군사적 측면에서도 러시아가 키예프 타격에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가 제기된다.
러시아 군사전문 매체 '톱 월'(Top War)은 25일 "우크라이나 언론들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오레슈니크 탄도 미사일의 공격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프로파간다전을 펼치고 있다"며 "TNT 폭발력으로 환산할 때, 오레슈니크 미사일의 위력을 90kg의 폭발물을 매단 게란 드론의 약 36대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전문가들이 키예프 외곽의 빌라 체르크바에 떨어진 오레슈니크 미사일 공격 흔적을 꼼꼼하게 분석한 뒤 이러한 결론을 내렸다는 것인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톱 월은 반박했다. 또 오레슈니크 미사일 피해가 그 정도라면 우크라이나 당국이 피해 상황을 담은 영상을 공개할 터인데, 아직 단 한 장도 공개하지 않았다고 했다. 오레슈니크 미사일로 키예프 도심을 때려 그 위력을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러시아가 예고한 대로 지속적인 키예프 공습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 표적은 도심이 될까?
러시아 외무부는 25일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군수산업 시설뿐 아니라 의사결정 센터와 지휘소를 조직적으로 타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 외국 공관들에게는 피해를 입기 전에 도시(키예프)를 떠나라고 권고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과 최고라다(의회), 국방부, 군정보총국(GUR), 외국 공관 등이 모여 있는 도심 공격을 뜻하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군사 전문가들의 의견을 달랐다.
rbc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군 장성 출신의 안드레이 카르타폴로프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국방위원장은 26일 "우크라이나의 의사결정 센터가 대통령실과 의회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우크라이나군과 그 산하 부대, 예비 부대, 그리고 정보및 보안 기관의 가장 깊숙한 방공 지휘소를 말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문제는 이같은 시설이 키예프 도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어딘가에 은밀하고 견고하게 구축된 요새 안에 있으며, 우리 군의 임무는 그 요새를 찾아내고 적절한 무기를 동원해 파괴하는 것"이라고 카르타폴로프 위원장은 주장했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키예프 중심가(반코바 거리)의 대통령실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며 "그의 사무실에는 경호원 두 명과 청소부 다섯 명이 있을 뿐인데, 거기에 값비싼 탄약을 낭비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러시아군의 공격 표적이 될 수 있을까? 카르타폴로프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만이 이를 결정할 수 있다"며 "더 이상 추측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다.
드네프르강 위의 교량 파괴에 대해 그는 "우크라이나군의 병참에 심각한 차질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파괴해야만 한다"면서 "하지만 이 다리들은 소련 엔지니어들이 20세기 중반에 수백 발의 미사일 공격을 견딜 수 있도록 만든 것이어서, 단순한 미사일 공격은 비현실적"이라고 강조했다. 유일한 방법은 3톤(t)에 달하는 에어 폭탄(활공 폭탄)의 동원인데, 아직까지는 에어 폭탄을 그 곳까지 보낼 방법이 없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측이 러시아의 키예프 공격 계획을 대하는 시각은 조금 다르다.
스트라나.ua는 25일 '모스크바는 왜 키예프를 향해 연속적인 공격을 위협할까?'(Зачем Москва грозит "последовательными ударами" по Киеву)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그 이유로 세가지를 들었다.
우선, 우크라이나의 방공 미사일 부족이 더욱 심각해졌다는 현실적인 이유다. 이전에는 키예프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더라도 강력한 방공망에 의해 대부분이 요격되는 바람에 비용 대비 효과(가성비)가 낮았는데, 이제는 러시아의 많은 미사일이 목표물을 정확하게 때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 모스크바 등 러시아 본토를 겨냥한 우크라이나군의 끊임없는 공격에 대응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키예프에 대한 보복 폭격은 다른 도시나 기간 시설에 비해 정치적 파장을 크다. 또 키예프에는 주요 산업 및 물류 시설, 군사·정치 지도부의 의사결정 센터가 위치하고 있다.
러시아군의 고민은 기대한 만큼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 의 문제다. 우크라이나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공습 사이렌이 울리면 신속하게 벙커로 대피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공식 행사를 중단하고 대피한 적도 있다고 한다. 또 주요 방위산업 생산 시설은 지하에 숨겨져 있다.
일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아킬레스건은 키예프의 상하수도 시설이다. 지난 24일 '보르트니치 폭기' (상수도) 시설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격이 이를 예고했다. 일각에서는 상하수도 시스템이 마비되면 키예프는 지난 겨울철 난방 중단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겨울 수십만 명의 키예프 시민들이 난방 없이 영하 20도의 혹한을 견뎌냈지만, 상하수도 시설이 파괴되면 많은 시민들이 도시를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 당연히 도시 생활 전반이 혼란에 빠질 것이다.
더운 여름철에는 상하수도 시설을, 추운 겨울에는 난방 시설을 공격한다면, 키예프도 여느 최전방 도시처럼 폐허로 변할 수 있다. 그때까지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대러 항전'만 외치고 있을 것인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