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May 2026

예르마크 전 대통령 실장, 돈세탁 혐의로 구속 기로에 - 젤렌스키 대통령은 무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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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던 안드레이(안드리) 예르마크 전 대통령 실장이 돈 세탁 등 비리 혐의로 구속될 위기에 처했다. 우크라이나 국가반부패국(NABU, 이하 나부)과 반부패특별검사실(SAPO, 이하 사포)은 11일 “키예프(키이우) 근교 고급 주택단지(사업 이름은 다이너스티 코티지) 건설 사업에서 '전직 대통령 실장'(예르마크 전 실장)에 대해 4억 6,000만 흐리브냐(약 900만 달러, 약 130억원)를 돈 세탁한 혐의로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고 발표했다.

예르마크는 대통령 실장 재직 시절 정부는 물론, 의회와 외교, 사법부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국정 운영을 사실상 좌지우지해온 거물급 인사다. 그는 러시아의 특수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직후, 대통령과 벙커에서 위험한 순간을 함께 지냈고, 군사 지원 요청 차 해외를 순방하는 대통령의 모든 일정에 동행할 정도로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지난 2019년 젤렌스키 대통령이 집권한 뒤 외교 부문을 총괄하다가 이듬해(2020년) 2월 대통령 실장에 올라 제 2인자로 군림했으나, 지난해(2025년) 11월 자신에 대한 나부의 압수수색이 진행되자 사임했다. 

나부의 압수 수색 이유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우크라이나 권력층을 뒤흔든 에너지 공기업 '에네르고아톰'의 뇌물 스캔들이 아니라, 스캔들의 기폭제가 된 소위 '(대통령의 왼팔 격인) 티무르 민디치의 녹음 테이프'에 등장했던 '고급 별장촌'(다이너스티 코티지)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그 '고급 별장촌' 소문이 6개월 여가 지나서야 사업에 투입된 자금의 돈세탁 혐의로 예르마크 전 실장의 목덜미를 낚아챈 꼴이다.

예르마크 전 실장이 돈세탁 혐의로 수사망에 걸려든 프로젝트인 '다이너스티 코티지'의 전경/러시아 TV 채널 NTV 영상 캡처 
예르마크 전 실장이 돈세탁 혐의로 수사망에 걸려든 프로젝트인 '다이너스티 코티지'의 전경/러시아 TV 채널 NTV 영상 캡처 

'고급 별장촌'은 지난해(2025년) 11월 나부에 의해 구속(나중에 보석 석방)된 알렉세이 체르니쇼프 전 부총리가 추진한 프로젝트로, 네 채 중 두 채가 대통령과 대통령 실장의 몫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였다. 

나부의 선임 수사관인 알렉산드르(올렉산드르) 아바쿠모프는 지난 3월 말 예르마크 전실장에 대한 수사가 길어지는데 대해 "고위 관리들은 변호사와 언론을 동원해 사실을 조작할 만한 힘을 갖고 있다"며 "확실한 증거를 최대한 많이 확보한 뒤 영장을 쳐야 한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나부는 확보한 1,000여건의 녹음 증거를 지난 6개월간 유튜브를 통해 순차적으로 공개하며, 예르마크 전 실장 일당을 압박해 왔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12일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 기사 중 '예르마크 (전 실장의) 의혹과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위협'(Подозрение Ермаку и угроза Зеленскому)이라는 코너에서 "나부는 전날(11일) 예르마크 전 실장에게 혐의 통지서(구속영장)를 전달(청구)했다"며 "키예프 인근의 고급 주택 건설 과정에서 총 900만 달러 규모의 자금을 세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또 "젤렌스키 대통령과 가까운 체르니쇼프 전 부총리와 사업가 티무르 민디치(이스라엘로 도피)도 이 사건의 주된 용의자로 지목됐다"고도 했다.

이날 열린 예르마크 전실장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사포(반부패특별검사실) 측은 사건 피의자들 간의 대화 음성 녹음 파일과 주고 받은 문자 등을 증거로 제시하면서 예르마크 전실장의 구속을 요구했다. 또 그의 석방 시 1억 8천만 흐리브냐의 거액 보석금을 달았다. 사건의 관련 자료가 워낙 방대해 12일에는 법원의 판단이 나오지 않았다. 

'별장촌'은 네 채의 주거용 건물과 공용시설(체육관, 스파 및 기타 편의시설) 등 5개 건물로 구성돼 있다.
스트라나.ua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나부는 '다이너스티 코티지'의 건설 비용 중 10%만 합법적으로 조달됐고, 나머지는 출처가 의심스러운 '검은 돈'이라고 주장했다. 나부는 "건설 자금의 대부분은 사업가(네 채중 한 채의 미래 소유주, 민디치를 뜻하는 듯/편집자)가 운영하는 '돈 세탁소'를 통해 조달되었으며, 그 금액은 거의 900만 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건설 비용의 10%만 은행을 통해 공식적으로, 나머지는 현금으로 건설업체에게 제공됐는데, 체르니쇼프 전부총리의 비서를 통해 현금이 전달됐다는 것이다.

알렉세이 체르니쇼프 전부총리/사진출처:엑스@UAChernyshov
알렉세이 체르니쇼프 전부총리/사진출처:엑스@UAChernyshov
젤렌스키 대통령의 측근 사업가 민디치/사진출처:SNS
젤렌스키 대통령의 측근 사업가 민디치/사진출처:SNS

특히 체르니쇼프 전부총리가 예르마크 전실장이 건설 자금으로 송금한 돈을 자신이 직접 관리했다고 말하는 음성도 녹음 파일에 나온다.

'검은 돈'은 건설 자금이 더 필요해진 2024년, 공사 발주처인 '주택 건설 협동조합'으로 입금됐다. 가공 회사를 통해 제공된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제약회사 등 여러 업체가 입금했는데, 예르마크 전 실장이 그들의 뒤를 봐주고, 녹음에 나오는 '칼슨'(사업가 민디치)이 자금을 갈취, 혹은 모은 것으로 나부는 보고 있다.

스트라나.ua는 "주택 네 채의 소유주는 P1, P2, P3, P4로 불렸는데(여기서 P는 러시아어, 영어로는 R, P0·제로 는 편의시설), P2는 예르마크, P3는 민디치, P4는 체르니쇼프를 가리킨다"면서 "녹음에서 간략하게 언급될 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이 없는 P1은 누구일까"라고 되물었다. 이 매체는 "체르니쇼프 전부총리가 키예프 교외에 자신과 민디치, 예르마크, 젤렌스키 대통령을 위한 주택 단지를 건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2025년 7월 말에 나왔다"며 "P1은 젤렌스키 대통령일 수도 있다"고 짚었다.

 예르마크 전실장의 몫으로 보이는 R2(러시아어로는 P2) 주택/사진출처:스트라나.ua
 예르마크 전실장의 몫으로 보이는 R2(러시아어로는 P2) 주택/사진출처:스트라나.ua

실제로 녹음 파일에서 체르니쇼프 전부총리 (녹음 당시 지역사회·지방개발부 장관)가 전쟁 발발 직후인 2022년 3월 '상사'의 지시라며 주택 건설을 독려했다. 이 사건에서 '상사'는 젤렌스키 대통령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 정부 수반이었던 슈미갈 총리는 이 프로젝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택 건설은 체르니쇼프 부총리에게 비리 혐의가 제기된 2025년 여름 중단됐다.

민디치의 녹음 테이프에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목소리도 담겨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그가 P1이라면, 이론적으로는 대통령도 형사 사건의 피고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나부는 12일 대통령이 해당 사건의 피고인이 아니라고 공식 발표했다.

스트라나.ua는 "우크라이나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기소 면책 특권을 누리므로 피고인이 될 수 없다"면서 "대통령이 피고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반부패의 칼날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지근거리까지 와 있다고 본다. 예르마크 전 실장의 영장 청구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보내는 반부패기관의 '마지막 경고'라는 해석도 있다.

검찰 측은 구속영장 실질 심사에서 별장촌 건설 과정의 세부 내용을 슬쩍 공개하기도 했다. 그중의 하나가 관련자들이 별장촌 건설을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라고 불렀다는 사실이다. 이 명칭은 전쟁 직전인 2022년 1월 정부가 발표한 새해 도로 건설 프로젝트를 뜻했다. 하긴 별장촌의 설계 비용만도 73만 5천 달러에 달했으니, 그렇게(대규모 건설 프로젝트) 부를 만도 했다는 게 주변의 평이다.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는, 2020년 7월부터2022년 8월까지 예르마크 전 실장의 아버지인 보리스 예르마크였다.

우크라이나 고등부패법원의 예르마크 전 실장 구속영장 실질 심사 장면/영상 캡처
우크라이나 고등부패법원의 예르마크 전 실장 구속영장 실질 심사 장면/영상 캡처

예르마크 전 실장은 11일 돈세탁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다. 그는 현지 매체 '우크라이나 프라우다'에 "저는 아파트 한 채와 차 한 대만 있을 뿐인데, 지난 몇 달간 저에 대해 전례 없는 여론의 압력이 가해졌다"면서 "수사는 정치적 발언이나 언론 캠페인, 또는 그 어떤 형태의 압력에도 독립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변호인도 "이번 사건 수사에서 일정한 패턴을 발견했다"며 "법에 따라 사건을 조사하고 구체적인 혐의를 제기하는 게 아니라, 공개할 수 없는 수사 자료가 대량으로 언론에 유출되는 마녀 사냥식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항의했다.

정치적 후진국, 혹은 부정부패가 심각한 나라일수록 큰 사건 뒤에는 늘 음모론이 따라 다닌다. 이번 예르마크 전 실장의 부패 스캔들 폭로에도 음모론이 꿈틀거린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트럼프 미 대통령이 러시아와의 '앵커리지 합의'(우크라이나군의 도네츠크 철수)를 젤렌스키 대통령이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가하기 위해 이번 사건을 터뜨렸다는 주장이 첫번째로 나온다. △크렘린이 최근 잇따라 돈바스에서 우크라이나 군대 철수가 전쟁 종식의 전제 조건이라고 밝혔고 △푸틴 대통령이 '전쟁 종식이 임박했다'고 말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키예프에 대한 압력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언론이 보도한 것 등이 정황 증거로 제시됐다.

더욱이 전날(11일)에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전 대변인 율리야 멘델이 터커 칼슨 전 미 폭스 뉴스 앵커와의 인터뷰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마약 중독자이며, 2022년 3월 이스탄불 러-우크라 협상에서 돈바스를 포기하기로 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터커 칼슨 전 미 폭스뉴스 앵커와 인터뷰하는 멘델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 대변인/영상 캡처
터커 칼슨 전 미 폭스뉴스 앵커와 인터뷰하는 멘델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 대변인/영상 캡처

유럽연합(EU)와 미국의 전임 바이든 행정부와 밀접한 우크라이나 내부 세력이 예르마크 전실장의 비리 폭로 배후에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른바 '반(反)젤렌스키 연대'의 주도설이다. EU는 우크라이나 EU 가입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운 법치주의 구현을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압박하는 카드로, '반젤렌스키 연대'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명목상의 정부 수반으로 밀어내기 위해 '별장촌 비리'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음모론이 사실이든 아니든, 예르마크 전실장의 비리 스캔들은 앞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향한 고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스트라나.ua의 분석이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우크라이나에 재앙이 될 것'이라는 전제 하에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를 잃더라도 나토 규약 5조에 따른 안보 보장과 미국의 대규모 투자를 받는 조건으로 전쟁을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는 현실론이 우크라이나 정치 지도부에 퍼져 있다는 외신 보도가 그 근거다. 이들은 전쟁의 신속한 종식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젤렌스키 대통령과 측근들의 개인적인 입지를 들기 때문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번 사건으로 이미지와 정치적 영향력이 추락하면, 전쟁 종식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기 더 쉬워진다는 것이다.

문제는 EU의 입장이다. 돈바스 철군을 전제로 한 미-러 간의 전쟁 종식 방안을 계속 반대해 왔기 때문이다. 이란 전쟁을 계기로 세계 정세는 급변하고 있으며, 유럽에서도 푸틴 대통령과의 협상 개시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이미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게 그나마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 스캔들로 인한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후속 조치를 내놓을 것이다. 그 중 하나로 국가보안국(SBU)과 국가수사국(SBI)을 이용해 나부에 반격에 가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우크라이나의 부패와 반부패 간의 싸움은 더욱 혼탁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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