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May 2026

유럽-러시아 가스 전쟁? EU, 25일부터 러시아 가스 단기 수입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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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은 대(對)러 제재 조치에 따라 지난 25일부터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의 단기 구매(주로 현물 시장에서의 선물 구매/편집자) 금지에 들어갔다. 장기 계약은 오는 연말부터 금지된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에서 탈피하고 러시아의 전쟁 자금줄을 죈다는 차원에서 내려진 제재이지만, 시기적으로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로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공급이 전세계적으로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프랑스 에너지 그룹 '토탈'의 패트릭 푸얀네 CEO는 26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가 두세 달 지속되면 서방은 에너지 부족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물론, 가장 큰 위협은 세계 석유 수송량의 상당 부분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에 따른 공급 차질이다. EU도 러시아에서 카타르 등 중동지역으로 가스 공급원을 바꿨는데, 카타르 LNG 수출 능력의 17%가 이란의 공습 등으로 마비된 상태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EU는 더 늦지 않게 에너지 대체 공급 루트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는 지난 17일 에너지 부족 위기를 피하기 위해  러시아로부터의 가스 구매 재개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EU가 러시아산 LNG의 단기 구매를 중단했으니, 유럽의 가스 가격은 앞으로 오를 게 분명하다. 스트라나.ua는 24일 블룸버그 통신을 인용해 "가스 수요의 약 12%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 EU가 단기 계약을 통한 현물시장 구매를 중단할 경우, 러시아산 LNG 수입량이 연간 280만~350만 톤 감소할 것"이라며 "이는 지난해 EU 전체 LNG 수입량의 약 3%에 해당한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란 전쟁으로 가스 가격이 약 40% 급등한 시점에 러시아산 구매가 금지된다"면서 "유럽은 겨울용 가스 비축량을 채우기 위해 앞으로 몇 달 동안 더 많은 가스를 구매해야 하는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물론, 에너지 수급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EU 집행위원회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러시아산 가스의 현물 구매를 일시적으로 허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에너지 엑스펙트'의 수석 LNG 분석가인 톰 퍼디는 "금지 조치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를 철회할 경우, EU의 평판에 미치는 위험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러시아산 LNG의 장기 계약마저 중단되는 2027년 1월 1일에 EU에 첫 번째 고비가 찾아올 것"으로 내다봤다. 

EU 본수/사진출처:epha.org
EU 본수/사진출처:epha.org

EU 회원국들은 러시아산 단기 구매 금지 시한을 앞두고 대비를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3월 한달 동안 수십억 유로를 들여 러시아산 LNG 수입을 대폭 늘린 게 대표적이다. 특히 가스 터미널(보관및 재기화 시설) 6개를 운영하는 유럽의 '가스 허브' 격인 스페인은 러시아산 가스 수입량을 사상 최대로 늘렸다. 스페인 매체 엘파이스는 현지 에너지 회사 '에나가스'(Enagás)의 데이터를 인용, 지난 3월 러시아산 LNG 수입량은 전월(2월) 대비 두 배나 늘어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3월 한 달 동안 러시아산 가스 수입량은 거의 1만 기가와트시(GWh)에 달했으며, 이는 연간 수입량의 26.1%를 차지한다고 했다. 전년 동기(2025년 3월의 4,393 GWh) 대비 123%나 늘어났고, 2023년의 가스 위기 때보다도 더 많은 물량이라고 엘파이스는 지적했다. 

분석가들은 스페인의 이같은 물량 확보를 △러시아산 LNG를 저장할 수 있는 '가스 허브'라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위험 △여의치 않는 대체 공급처 확보 △러시아산 가스의 경쟁력 있는 가격 때문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에너지 기업 가스프롬의 가스관/사진출처:가스프롬 홈페이지
러시아 에너지 기업 가스프롬의 가스관/사진출처:가스프롬 홈페이지

러시아는 거꾸로 기존의 유럽 공급 물량을 돌릴 수 있는 대체 수출로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부총리는 지난 3월 6일 "유럽으로 수출해온 LNG 물량 일부를 우호국으로 돌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EU의 추가 제재를 기다리지 않고 수출 경로를 바꿀 것"이라며 대상국가로는 중국과 인도, 태국, 필리핀 등을 꼽았다. 그의 이날 발표는 'EU의 가스 구매 거부를 기다리지 말고 러시아가 유럽에 가스 공급을 끊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푸틴 대통령의 이틀전(4일) 지시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대체 노력은 공교롭게도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와 맞물려 일단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우선, 인도가 1년 만에 러시아산 LNG 구매를 재개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지난 15일 보도했다. 뒤이어 21일 블룸버그 통신이 "중국은 앞으로 몇 년간 유럽의 3분의 1 가격으로 러시아산 가스의 수입을 늘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블룸버그 통신이 추산한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대(對)중 수출 평균 가격은 1,000㎥당 258.80달러로, 유럽의 일부 국가에게 제시된 평균 가격보다 38% 이상 낮다. 3년 후인 2029년에도 중국과 유럽 국가간의 가격 차이가 27%를 넘어설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지난해(2025년)의 경우, 러시아는 중국에 천연가스를 1,000㎥당 평균 248.7달러에 판매했는데, 이는 유럽의 평균 수입 가격보다 38% 이상 낮다.

러시아는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몇 년 동안 중국에는 유럽보다 27~38% 낮은 가격으로 가스를 공급한다는 뜻이다. 그 이유를 러시아 에너지 공기업 가스프롬의 알렉세이 밀러 CEO는 지난해 이렇게 말했다.  가스전의 위치가 가스 소비 지역에 가깝기 때문에 중국에 제공하는 가스 가격은 유럽보다 객관적으로 더 낮을 수밖에 없다." 

틀린 말은 아니다. 러시아는 지난 몇 년간 동쪽(아시아권)으로 향하는 가스관 '시베리아의 힘'을 통해 중국에 대한 가스 공급량을 늘려 왔다. 가스프롬에 따르면,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의 설계 용량은 2025년 현재 연 380억㎥이지만, 실제 가스 공급량은 더 많았다고 한다. 동쪽으로 향하는 러시아의 가스 공급량은 오는 2029년까지 연 525억㎥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싼 가격으로 에너지를 확보한다는 것은 산업의 경쟁력에 그만큼 유리하다. 유럽은 러시아산 가스를 수입금지함으로써 미국과 중국과 같은 주요 경쟁국가보다 높은 에너지 가격 때문에 떨어지는 산업 경쟁력을 다른 요인으로 회복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할 게 분명하다. 유럽에게는 러시아산 가스의 금수 조치가 산업 경쟁력 차원에서 두고두고 후회할 악수가 될 지도 모른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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