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Mar 2026

문화예술 전쟁? 베니스 비엔날레의 러시아 참여 놓고 충돌, 러시아 전시물은 뭐길래..

이번에는 문화·예술 전쟁이다. 이미 4년을 넘긴 러-우크라 전쟁에 버금가는 스포츠, 문화예술 전쟁이 올해들어 이탈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2월) 22일 폐막한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는 러시아의 완패. 겨우 13명의 선수를 '개인중립선수'(Individual Neutral Athletes·AIN) 자격으로 출전시켜 은메달 하나를 수확하는데 그쳤다. 동계스포츠 강국으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이어 지난 6일 개막 팡파레를 울린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패럴림픽에서는 러시아 기수단이 대표팀을 이끌었다. 이에 반발한 우크라이나와 리투아니아, 폴란드 등 유럽 7개국은 아예 개막식을 보이콧했다. 러시아는 개막 사흘째인 9일 알파인 스키 여자 슈퍼대회전 입식 부문에서 첫 금메달을 따 12년만에, 올림픽·하계 패럴림픽을 포함하면 2016 리우 대회 이래 10년 만에 시상식 때 러시아 국가가 연주됐다. 지금까지는 러시아의 완승이라고 할 만하다. 2026 패럴림픽 대회는 15일 막을 내린다.

스포츠 부문에서 1승 1패를 기록한 러시아는 문화·예술 부문에서 베니스 비엔날레 참여를 놓고 또 우크라-유럽과 격돌했다. 초반 승기는 러시아편. 베니스 비엔날레 조직위원회 측이 러시아의 참여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발끈한 우크라-유럽은 비엔날레 조직위원회 측에 정치 경제적으로 강력한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예측불허다. 1895년 출범해 무려 130년 역사를 지닌 베니스 비엔날레는 2년마다 열리는 세계 최고 권위의 미술 전시회다. 미술 전시회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로는 미술 뿐만 아니라 건축과 영화, 음악, 무용, 연극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데, 미술과 건축이 번갈아가며 핵심 주제가 된다. 심사위원단도 전 세계에서 꾸려진다. 올해 제61회 비엔날레는 5월 9일부터 11월 22일까지 열린다.

러시아의 비엔날레 참가는 특수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전인 2019년이 마지막(짝수 해인 2020년이 아닌 것은 코로나19의 여파다/편집자)이었다. 전쟁 발발 직후인 2022년 4월에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러시아 정부와 관련된 사람들의 접근이 금지되면서 러시아관은 사실상 폐쇄됐고, 우크라이나관은 대조적으로 관객들의 응원 방문으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러-우크라·유럽간 비엔날레 충돌은 조직위원회 측이 이달 초 성명을 통해 "베네치아(베니스) 비엔날레는 개방적인 기관(재단)으로, 문화와 예술에서 어떤 행태의 배제 또는 검열도 거부한다"며 러시아의 참여를 허용하면서 시작됐다. 피에트란젤로 부타푸오코 조직위원장은 이탈리아 일간 라레푸블리카에 "분쟁에 관련된 모든 지역 사람을 초청해 관점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면서 "예술이 있는 곳에 대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때 친(親)러 성향을 보였던 우파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 문화부는 "러시아의 복귀를 허용한 것은 비엔날레 조직위원회의 독립적인 결정"이라며 "이탈리아 정부는 러시아의 참여에 반대한다"고 발표했다.

 

베니스 비엔날레/사진출처:베니스 비엔날레 재단 홈페이지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유럽 국가들이 즉각 들고 일어났다. 우크라이나는 8일 베니스 비엔날레 조직위 측에 러시아의 참여를 막아달라고 요구했고, 리투아니아는 "혐오스러운 결정"이라고 조직위를 직격했다. 유럽의회의 초당파 모임도 조직위에 항의 서한을 보내 "러시아의 복귀를 허용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뒤이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베니스 비엔날레 재단에 제공하는 200만 유로의 EU 지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 11일 경고했다. 헤나 비르쿠넨 EU 기술주권 담당 부위원장과 글렌 미칼레프 세대·청소년·문화·스포츠 담당 위원은 이날 공동 성명에서 "문화는 민주적 가치를 증진하고 수호하며, 열린 대화, 다양성, 표현의 자유를 장려해야 하며, 결코 선전의 장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며 "EU의 대러 제재 조치를 준수해야 할 국제문화유산재단(베니스 비엔날레)이 러시아의 참여를 허용한다면, EU 지원금 중단 등을 고려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유럽 22개국 문화부·외교부 장관들도 러시아의 참가에 반대하는 공동 성명에 서명했다. 이에 이탈리아 문화부는 13일 베니스 비엔날레 조직위 측에 그간 비엔날레 참여 문제를 놓고 러시아 측과 교환한 모든 문서를 정부에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또 EU의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의 비엔날레 참여가 EU에 의해 이탈리아에게 부과된 의무와 양립이 가능한지, 아니면 상충하는지 면밀히 검토한 뒤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이처럼 겉으로는 강경하게 보이는 이탈리아 정부의 대처는 여전히 다소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알렉산드르 줄리 이탈리아 문화부 장관은 베니스 비엔날레 재단은 이탈리아 정부와 무관한 독립 기관이란 점을 내세운데 이어 시기도 놓쳤다는 입장이다. 

논란이 가열되자 러시아 경제 유력지 코메르산트 등은 11일 "러시아는 음악 공연으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다시 참가할 예정"이라며 오디오 전시인 '하늘로 향해 뻗어나가는 나무'(Дерево уходит корнями в небо)를 소개하는 등 맞불을 놨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러시아관은 주요 문화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의 다양한 예술적 재능을 선보이는 '음악 축제'로 꾸려진다. 러시아 민속 음악공연단 '톨로카'를 비롯해 러시아, 아르헨티나, 브라질, 말리, 멕시코 출신의 50여 명의 예술가들이 여기에 참여한다.

주제는 철학자 시몬 베일의 저서에 나오는 컨셉인 '뿌리가 흙보다는 빛에 의해 양분을 얻는 나무'다. 이 나무는 '정적'이라는 상징에서 '살아있는' 유기체로, 외부와 연결되고 소통하는 네트워크로 변모하는 과정을 음악(오디오)로 표현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음악의 단조와 장조라는 이분법을 사회문화 영역으로 확장해 중심과 주변부와의 관계를 성찰하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한다.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시된 우크라이나 작품. 전쟁으로 난민이 된 5살 어린이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사진출처:SNS



이틀후(13일) 코메르산트는 미하일 슈비드코이 대통령 국제문화협력 특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시되는 작품의 의미와 참여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슈비드코이 특사는 비엔날레 전시 작품을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강조한 '러시아 문학의 보편적 반응성'에 비유하면서 "우리는 (비엔날레 측과) 문화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여러 나라의 다양한 민족과 공연자들을 한데 묶을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눴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시물을 '러시아 프로젝트'라는 점에 국한하지 말고, 세계의 다양성및 통합을 동시에 보여주기 위해 여러 나라의 민족과 공연자들을 연결한 '보편적 반응성' 차원에서 접근해 줄 것"을 요청했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러시아관은 "동시에 열리고 닫힐 것"이라는 컨셉으로 운영된다. 비엔날레 개막 전인 5월 4~8일 전세계 50여명의 공연자들이 참가하는 대규모 음악 및 조형 퍼포먼스를 선보인 뒤, 이를 녹화해 전시 기간에 관객들에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특히 다민족 국가인 러시아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코미공화국과 야쿠티아 등 오지 지역 출신의 공연자들이 무대에 오른다. 슈비드코이 특사는 "러시아의 이러한 시도가 이탈리아 관객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놀라운 경험을 안겨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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