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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전승 기념일 9일을 전후한 사흘 간의 휴전은 결과적으로 폭풍전야의 고요에 불과했다. 사흘 혹은 나흘간 상대에 대한 '장거리 공습'을 중단하는 동안, 비축된 미사일과 드론 등을 총동원한 러-우크라 양국의 난타전은 지난 주말(16~17일) 최고조로 불타올랐다. 베도모스티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방공군은 17일(현지시간) 지난 24시간 동안 우크라이나 드론 1,054대와 유도 폭탄(통칭 에어폭탄, 활공 폭탄) 8발, 장거리 순항 미사일 2기를 격추했다고 발표했다. 또 미국산 다연장로켓시스템 하이마스(HIMARS)와 플라밍고 장거리 순항 미사일, 넵튠-MD 장거리 유도 미사일이 무력화됐다고 했다.
이번 발표에서 관심을 끈 것은 모스크바를 겨냥한 우크라이나의 대규모 드론 공격이다. 세르게이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은 "지난 24시간 동안 모스크바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드론 120대가 격추됐다"며 "17일 자정 이후에만 드론 최소 80대가 요격됐다"고 말했다. 또 1년여만의 최대 규모 공격이라고도 했다.
모스크바 수도권을 뜻하는 모스크바주(州)의 안드레이 보로비요프 주지사는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으로 힘키에서 3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했으며, 1명은 잔해에 깔려 있다"면서 "이스트라에서는 드론이 주거용 건물을 타격하면서 4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드론이 모스크바 외곽의 에너지 관련 시설을 겨냥하면서 석유·가스 정제시설 인근 공사 현장 작업자들이 다수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러 인도대사관은 사망자 가운데 인도 국적자 1명이 포함됐다고 전했다. 또 모스크바 주요 공항들이 드론 공격으로 운영을 중단했다. (한국행 항공기가 출발했던) 셰레메티예보 공항에서는 200편 이상의 항공편이, (유럽행 항공기가 이착륙하는) 브누코보 공항에서는 75편이 지연되거나 취소됐다. 러시아 교통부는 모스크바로 향하던 51대의 항공기가 이날 밤 회항하거나 다른 공항으로 옮겨갔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의 이번 공격은 승전 기념일 휴전 뒤 러시아의 13, 14일 대규모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미사일·드론은 당시 수도 키예프(키이우) 등 우크라이나의 20개 지역을 강타하면서 최소 27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키예프는 15일을 희생자 추모를 위한 공식 애도의 날로 지정했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응징'을 다짐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의 대규모 공격과 두 자리 숫자의 사상자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에 모스크바 피해 사진이 거의 올라오지 않는 것은 모스크바시 당국의 사전 대비 때문으로 보인다. 과거 우크라이나 드론이 모스크바 도심을 때렸을 때, 시민들이 우왕좌왕하고 손상된 건물 사진(영상)이 다수 올라왔었다. 또 우크라이나 드론이 이번에도 모스크바 방공망을 제대로 뚫지 못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모스크바시 당국은 지난 13일 드론 공격 장면이나 사보타주(비밀 폭파 작전)이후의 피해 상황을 담은 영상(사진)을 당국의 공식 발표가 있기 전까지 공개하는 행위에 대해 벌(칙)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위반시 일반 시민의 경우, 3천~5천 루블(약 35~60 달러), 공무원의 경우 3만~5만 루블(약 350~600 달러), 법인의 경우 5만~20만 루블(약 600~2400 달러)의 벌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와 같은 형사처벌 조항은 아직 제정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2022년 3월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군부대의 이동과 방어 진지, 러시아 미사일의 출현 및 방공 작전, 피해 상황 등에 대한 촬영및 공개 금지 조치를 도입했다. 이를 어겼다가는 형사 처벌을 받는다. 2023년 5월 러시아의 미사일·드론 공격에 맞서는 키예프의 방공망 영상을 실시간으로 올렸다가 큰 곤욕을 치른 가수 출신 인기 블로거 인나 보로노바의 형사사건이 대표적이다.


우크라이나의 잇단 드론 공격은 발트해 연안 라트비아의 연정이 무너지는 등 국내외적으로 불러온 파장도 적지 않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의 발트해 석유 수출 항구를 향해 발사한 드론이 경로를 벗어나 라트비아 영공을 침범하는 바람에 벌어진 정치적 충격파다.
라트비아의 연정을 이끌던 에비카 살리냐 총리(신통합당)는 러시아 석유 수출항을 겨냥한 우크라이나 드론 2대가 라트비아로 넘어온 뒤, 자국 석유 저장 시설에 떨어지자 그 책임을 물어 연정 파트너인 진보당 소속 안드리스 스프루츠 국방장관을 해임했다. 이에 반발한 진보당은 연정 탈퇴를 선언했고, 불신임 위기에 몰린 실리냐 총리는 지난 14일 전격 사퇴를 선언했다. 이틀 뒤(16일) 에드가르스 린케비치스 대통령은 야권의 안드리스 쿨베르그스 의원에게 정부 구성권(총리 자격)을 부여하면서 총선을 앞둔 정국의 혼란 수습에 나서야 했다.
이번 우크라이나 공습에서 지켜봐야 할 사안은 우크라이나 드론의 모스크바 직접 타격 능력이다.
스트라나.ua는 17일 "키예프는 모스크바와 수도권에 역대 최대 규모의 드론 공격을 감행했다"며 "러시아 당국에 따르면 3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드론이 여전히 모스크바의 방공망을 대규모로 뚫을 수 없다는 게 드러났다"며 "모스크바 외곽의 정유 시설 인근에 드론 몇 개가 떨어졌지만, 큰 피해는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나오는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의 효과는 심리적인 측면이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제는 모스크바까지 공격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줬다"고 말했고, 드론 전문가인 세르게이 베스크레스트노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 고문은 "모스크바 시민들도 우크라이나 도시들이 지난 수년 간의 전쟁으로 평화로운 가정이 어떻게 전쟁의 공포를 견뎌왔는지 느꼈을 것"이라고 텔레그램에 썼다.
러시아 전문가들도 우크라이나 드론의 모스크바 직접 타격 능력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군사및 방공 전문가인 유리 크누토프는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군은 공격력을 강화하기 위해 드론 성능의 향상 작업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이번 모스크바를 공격한 드론들은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발사된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드론이 보다 가벼운 복합 소재로 교체되고, 더욱 강력한 엔진이 탑재되면서 모스크바 직접 공격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또 "우크라이나 드론은 1단계 엔진의 작동으로 날아 오른 뒤 2단계 엔진으로 가속화하는 등 불규칙적인 비행 궤적을 그린다"며 "가볍지만 폭발력이 큰 최신 폭발물을 드론에 탑재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무엇보다도 언론의 관심은 이제 러시아의 향후 대응으로 쏠린다. 대통령 벙커를 비롯해 키예프의 도심에 있는 주요 정치·군사 지휘부를 겨냥한 대규모 보복에 나설 것인지, 아니면 신형 단거리 탄도 미사일 '오레슈니크'나 전술 핵무기를 사용을 적극 검토할 것인지 여부다.
스트라나.ua는 러시아는 이번 모스크바 공격에 개의치 않고 현재의 '장기 소모전' 전략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서 '장기 소모전'은 모스크바 시민들 기준으로 "전쟁터는 멀리 떨어져 있고, 나라(일상 생활)는 평소처럼 돌아가고 있다"는 여론을 유지하는 크렘린의 정책이다.
이같은 전략은 푸틴 대통령이 권좌에 올랐던 2000년대 초반, 모스크바를 공포로 몰아넣은 체첸자치공화국 분리주의 세력(당시 체첸반군으로 불렸다/편집자)들의 잦은 테러 공격에 대응했던 것과 유사하다는 분석도 있다. 당시 체첸 반군의 테러는 모스크바를 여러 차례 뒤흔들었으나, 러시아군은 장기전 전략으로 체첸 반군의 숨통을 조인 끝에 체첸자치공화국을 친(親)크렘린 세력으로 세대 교체하는데 성공했다. 현재 체첸자치공화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적극 지지하는 람잔 카디로프다.
크렘린은 체첸 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아무리 힘들더라도 이 모든 것을 견뎌내고 특수군사작전(전쟁)을 완수(승리)해야 한다'는 구호 아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고 스트라나.ua는 짚었다.
크렘린이 이같은 노선을 계속 걸을 수밖에 없는 이유로는 뾰족한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지금까지의 전쟁 경험으로 볼 때 키예프 지휘부를 겨냥한 러시아의 대규모 공습이 큰 성과를 거두기 힘들고, 총동원령 발령이나 전술 핵무기 사용과 같은 과격한 조치는 국내외적으로 크렘린에게 안겨주는 위험이 너무 크다.

무자비한 에너지 시설 파괴로 우크라이나에 장기간의 정전 사태를 일으키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지난날 수많은 공습으로도 이를 달성하지 못했다. 어쩌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더욱이 러시아는 매일 수백 대, 때로는 1천여 대의 드론으로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고, 멀리 헝가리 접경 트란스카르파티아 지역까지 타격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방공망을 유린하고 있지만, 이것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방안은 분명히 아니다. 지상 전투를 통해 도네츠크주(州) 우크라이나 점령지를 완전히 장악해야만 특수군사작전(전쟁)이 끝난다.
반면, 우크라이나 영토를 조금씩 점령하면서 '장기 소모전'으로 가면, 러시아가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러 정상 간의 '앵커리지 정신'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돈바스 철군 등 압박하는 어느 정도의 시간을 우선 벌 수 있다. 설사 이 전략이 실패하더라도, 이란 전쟁과 호르무스 해협의 봉쇄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 등 복합적인 경제적 요인으로 유럽의 대(對)우크라 지원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기대감도 상당하다. 여기에 최악 상태로 접어든 우크라이나의 인적·경제적 잠재력 고갈이 더해지면, 전쟁의 전략적 균형은 러시아에 급격히 유리하게 바뀔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서방 진영도 이같은 시나리오의 현실화를 막기 위해 절치부심 중이다. 우크라이나가 휴전 혹은 공습 중단을 요구하며 모스크바 공격에 적극 나서는 이유다.
장기소모전의 결과는 '시간은 누구의 편인가'에 의해 판가름날 것이다. 여기에는 사회적인 민심, 즉 반전(反戰) 여론도 중대한 척도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