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이제 4년차로 접어들었다. 당초 예상보다는 길게 늘어난 장기전 추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는 '24시간 내에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장담했는데, 그가 취임하는 1월 20일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은 평화협상 쪽으로 돌아설 수 있을까?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와 함께 러-우크라 평화협상에 대한 기대감도 부쩍 높아졌다. 덩달아 낙관적인 새해 전망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다. 그중 러-우크라-서방 측 3자의 대표적인 새해 전망을 비교 분석해본다/편집자
해가 바뀔 때마다 주요 현안에 대해 새해 전망을 내놓는 영국의 유력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FT)는 2025년 새해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될 것으로 내다봤다.

rbc등 러시아 언론과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FT는 2025년 새해 전망 기사에서 "우크라이나가 미국 등 서방의 안보 보장을 대가로 동남부 지역 점령지에 대한 러시아의 법적 통제권을 인정(영토 통합 포기)할 것으로 예측했다. 또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가입은 궁극적으로 보류될 것으로 전망했다.
FT는 그동안 언론에서 수없이 거론된 소위 '평화와 영토의 교환'을 골자로 하는 러-우크라 평화협정이 2025년에는 체결될 것이라며 이같은 낙관론을 폈다. 러-우크라-유럽 3자의 새해 예측 중에서 가장 낙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망은 역시 전망에 불과할 뿐이다. 중간에 어떤 돌발 변수가 튀어나와 예상을 어그러뜨릴 지 모른다. FT는 이를 인정하면서 지난해의 새해(2024년) 전망 20개 중 5개가 틀렸다고 고백했다. 5개 중에는 트럼프의 대선 승리도 포함됐다.
FT는 러-우크라 평화협정의 체결을 예상하면서도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특히 러시아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고 타결로 이끌기 위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를 향해 더 가혹한 제재를 가하겠다고 협박하고, 키예프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이 '협상에 응하지 않을 경우 군사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으름장만으로도 (종전안에 대한) 동의를 얻어낼 수 있지만, 러시아는 그렇지 않다는 전제에서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러시아는 (2022년 3월 가조인한) 이스탄불 평화협정을 기반으로 현재의 상황(전황)을 고려한 평화협상을 우크라이나와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협상의 최종 문서는 합법적인 우크라이나 최고위 당국자와 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합법적인이라는 문구다. 지난해 5월로 대통령 임기가 끝난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합법적인 최고 지도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는 그동안 우크라이나 헌법에 따라 대통령 유고시 권한 대행을 맡아야 하는 루슬란 스테판추크 베르호브니 라다(최고라다, 의회) 의장이나, 대선을 통해 정통성을 확보한 새 대통령과 대화하고, 협정에 조인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젤렌스키 대통령을 대화 혹은 협정 조인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푸틴 대통령의 이같은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미국 측의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소위 '평화협정 4대 원칙'(우크라이나 동부 4개 주에서 우크라이나군의 철군과 비무장, 나토 가입 금지, 대러시아 제재 해제)을 발표했다. 협상 테이블이 차려지더라도, 세부적인 합의를 위한 지루한 '밀당'이 불가피하다. 협상 초기 단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카드를 배제하지 않도록 (유럽이) 설득해야 한다고 FT가 강조한 이유다.
협상을 바라보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의지도 만만치 않다. 그는 1일 신년사와 2일 새해 첫 언론 인터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표명하고 지원을 요청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우월적인 협상 지위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앞으로 협상은 하겠지만, 우크라이나의 입지가 지금보다 강력해진 상태에서나 가능하다고 전제를 깔았다. 미국 등 동맹국들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군사 지원을 통해 전황을 우크라이나 우위로 되돌려달라는 요구나 다름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요구가 충족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간의 트럼프 대통령 발언을 보면 더욱 그렇다. 따라서 젤렌스키 대통령으로서는 '샅바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낸 것으로 보면 된다. 최소한 러시아와 대등한 관계에서 협상을 시작하겠다는 것인데, 그래야만 향후 외교적 협상을 통해 1991년 국경(구소련 붕괴 당시의 영토)를 회복할 수 있는 '한가닥'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
'새해 평화협정이 체결될 것'이라는 FT의 전망이 너무 낙관적이라는 의구심을 버리기 힘들다.
◇러시아측 군사 전문가의 전망
유명한 러시아 군사 전문가 세르게이 폴레타예프(Сергей Полетаев)도 FT의 새해 전망에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폴레타예프는 2일 '글로벌 정치속 러시아(Россия в глобальной политике)' 기고에서 러시아가 원하는 전쟁 종식 방안을 설명하면서 '2025년 평화협정이 체결될 것'이라는 FT의 전망에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했다.
스트라나.ua는 "러시아 크렘린과 가까운 러시아 전문가 집단을 아우르는 전쟁 종식 방안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기고는 흥미롭다"고 평가했다.

폴레타예프는 러시아가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전인 2021년 말 미국 등과 가진 마지막 담판에서 유럽의 안보 지도를 새롭게 그리는 러-서방 간 안보 협정 체결을 요구했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지속 가능한 평화협정 체결은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측근들이 그동안 제시한 전쟁 종식 방안은 최전선에서의 휴전이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에도 상황은 거의 변하지 않을 것으로 그는 내다봤다.
큰 틀에서 러-서방 간에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상태에서 가능한 향후 시나리오로 그는 4가지 경우를 상정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일방적인 협상 조건을 받아들이는 평화협정 체결과 '한국식 휴전' 시나리오, 이스라엘-팔레스타인과 같은 장기전, 핵전쟁 비화다. 주목할 것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요구 조건을 수락하는 방안은 아예 배제됐다는 사실이다.
그는 가장 유력한(제 1의) 시나리오로 러시아군이 새해에도 군사적으로 우크라이나군을 몰아세울 것으로 본다. 서방의 군사 지원과 나토 가입 등을 기대하는 우크라이나가 트럼프 새 정부 하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러시아의 종전 요구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경우, 러시아의 핵심적인 요구 조건은 우크라이나가 더이상 러시아에 군사적, 정치적 위협이 되지 않도록(비무장과 중립)하는 것이다. 폴레타예프는 러시아가 (군사작전 개시 당시 천명한)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앞으로 1년, 2년 간 전쟁을 더 계속하는 노선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서방의 대러 제재 강화 등 여러가지 변수로 러시아가 전쟁을 계속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할 경우, 최전선에서 휴전하는 ‘한국형 시나리오’로 돌아설 것으로 그는 내다봤다. 러시아로서는 차선책인 셈이다.
힘을 비축한 우크라이나가 거꾸로 '휴전'을 거부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러-우크라 사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처럼 수년, 혹은 수십년 지속될 수도 있다는 게 3번째 시나리오다. 이같은 상황 전개는 2014년 유로마이단 사건(우크라이나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으로 촉발된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의 초기 내전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은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마지막 시나리오로 폴레타예프는 핵 전쟁으로의 비화를 들었다. 미국 등 서방이 러시아에 평화협정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늘리거나, 나토 가입을 끝까지 밀어붙일 경우, 확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서방 측은 푸틴 대통령도 어느 정도 겁을 먹고 자신들의 종전 방식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신형 중거리 마사일 '오레슈니크'의 시험 발사에서 보듯, 러시아는 매파(군사 대응 강경파, 전쟁 지지파)를 중심으로 '파괴적인'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다만, 트럼프 미 대통령이 러시아를 그 정도까지 몰아세울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은 당연히 있다.
◇우크라이나 언론 매체의 전망
FT와 폴레타예프의 새해 전망과는 또다른 시각과 분석을 보여준 것은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의 자체 예측이다. 이 매체는 지난해 12월 31일 게재한 긴 새해 전망 기사 를 통해 "2025년 새해를 맞이한 우크라이나의 분위기는 2022년 12월, 2023년 12월과는 확연히 다르다"며 "비록 1991년 국경에 도달해 승리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전쟁이 조기에 종식될 희망은 커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쟁 종식으로 가는 여러 가능성과 변수, 시나리오 등을 두루 조명했다.

스트라나.ua가 이 분석에서 최우선적으로 주목한 것은 러시아 주도로 바뀐 전황이다.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의 주요 전선에서 러시아군이 이미 주도권을 잡았고, (지난해 8월 우크라이나군이 기습적으로 점령한) 러시아 쿠르스크 전선에서도 우열이 역전됐다고 인정했다. 경험으로 축적된 전투력의 향상과 카브(KAB, 에어폭탄, 혹은 활공폭탄)와 드론 등 무기 체제의 우위, 참전 부대의 규모및 사기 등에서 러시아군이 승기를 잡았다고 본다. 특히 장기전에서는 군대의 사기가 대단히 중요한데, 우크라이나군은 잇단 패배와 대규모 탈영, 예비군 강제 동원 문제 등으로 군 기강과 사기가 이미 뚝 떨어진 상태라고 이 매체는 평가했다.
이같은 상태로는 우크라이나군이 조만간 급격히 와해되고 방어선이 무너질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룬다. 우크라이나군이 어렵지만 방어에 집중하면서 예비 전력을 비축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러시아 쿠르스크 전선이나, 돈바스의 주요 전선, 새로 확대되고 있는 하르코프(하르키우) 전선의 상황을 두루 살펴보면 신뢰하기 어렵다고 스트라나.ua는 선을 그었다.
그렇다고, 우크라이나군이 완전히 꺾인 것은 아니다. 돈바스, 특히 도네츠크주 전선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고 우크라이나군의 통제와 보급선도 살아 있어, 서방의 군사 지원이 늘어나고, 드론 등 무인 전투 시스템과 장거리 미사일 등 군수 물자들을 자체적으로 생산하면, 새해에 새롭게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다고 했다. 또 (미국의 요구에 맞춰) 동원 연령을 25세에서 18세로 대폭 낮출 경우, 군 병력의 부족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스트라나.ua는 내다봤다.
특히 키예프(키이우) 지도부가 믿는 구석은, 우크라이나군이 지금처럼 버텨줄 경우, 러시아가 내분으로 스스로 무너질 것이라는 기대다. 오랜 세월에 걸친 서방의 가혹한 제재로 러시아 내부에서 사회 경제적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고,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전쟁 후유증과 병력 동원 문제 등으로 (푸틴) 체제가 흔들리면서 스스로 주저앉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우크라이나 일각(주로 정치지도부와 정보 당국)에서는 이같은 예측을 근거로 '승리를 위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한다.
승리의 기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과 유럽 평화유지군의 전선 배치 등에 동의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같은 징후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스트라나.ua는 냉정하게 지적했다. 오히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보다 훨씬 더 빨리 경제적 군사적으로 무너지면서 손을 들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군사 지원 중단 으름장이 현실화하면, 키예프는 더 이상 저항할 수 없고 미국의 종전 요구에 따를 것으로 본다.
문제는 평화협상을 통한 러시아의 전쟁 종식 의지인데, (군사전문가 폴레타예프의 전망 처럼) 러시아가 특수 군사작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순순히 물러서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스트라나.ua는 "푸틴 대통령이 주도한 제2차 체첸전쟁은 6, 7년을 끌었다"며 "'시간이 자기 편'이라고 믿고 있는 크렘린이 협상을 거부하고 전쟁을 계속할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또 (폴레타예프의 전망에서 나온) 단순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니라 유럽의 새로운 안보 시스템 구축이나 세계 질서의 개편 이슈가 평화협상에서 주요 쟁점이 될 수도 있음을 간과하지 않았다.
미국의 압력 등으로 러-우크라가 전쟁을 끝내더라도, 최소한 우크라이나의 비무장 중립화는 실현될 것으로 스트라나.ua는 예상했다. FT의 전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이후 러-우크라 관계는 한국전쟁 이후 남북한처럼 수십년간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든지, 2008년 러-그루지야(조지아) 전쟁 이후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한 그루지야의 길을 가든지,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될 것으로 짚었다.
스트라나.ua의 결론은 이렇다. "전쟁은 길어질수록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물론, 세계를 새로운 암흑기로 떨어뜨리고, 인류 전체에게 엄청난 위협을 가한다. 이같은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가능한 한 빨리 끝내야 한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