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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14-04-28
국가
러시아
문화의 국경을 넘나드는 유무형의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주체는 다양하다. 기업형 엔터테인먼트가 양산하는 대중 콘텐츠는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다. 소비자는 브라운관, 스크린, 인터넷, 프로모션 등을 통해 일군의 '스타 시스템'를 향유한다. 그러나 이러한 각각의 문화콘텐츠는 대규모 자본과 노동력이 결합된 초정밀 반도체에 가깝다. 재미있는 건 한류의 흐름 역시 반도체와 비슷한 성격을 지녔다는 것이다. 반도체는 말 그대로 도체와 부도체의 중간특성을 가진 물질이다. '한류가 세계적인 유행으로서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말에는 동감하지만 '도체'처럼 전세계인의 마음을 흔들 수는 없다.
6대륙 가운데 유럽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한류 바람이 가장 늦게 일기 시작한 곳도 유럽이며, 가장 다양한 한국 문화 장르가 소개되고, 점차적으로 확산되는 곳도 유럽이다. K-pop과 영화, 드라마, 예능프로그램 등 대중적 요소와 스타 시스템을 갖춘 문화콘텐츠를 선호하는 만큼 유럽인들은 한국의 전통문화나 문학, 음악, 연극 미술 등 예술 분야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는 본 재단 통신원들의 전해오는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의 문학이 TV 브라운관을 통해 소개되고, 미술교류가 이어지며,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주빈으로 초청돼 전시 및 공연이 이뤄지는 지역의 대부분은 유럽이다. 물론 대중문화콘텐츠에 비해 파급력은 미비하나 엔터테이먼트 산업처럼 자본과 노동력이 집약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들의 활동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순수예술 지향성이 높고 인문학적 성향이 강한 대륙적 특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 반도체에 대해 거론했었다. 반도체의 전기 흐름을 결정짓는 것은 자유전자다. 모스크바를 비롯한 유럽 지역에는 이런 자유전자의 역할을 하는 여러 그룹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한국 유학생이다. 모스크바의 경우 타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학생들이 적다. 그렇지만 특히, 차이코프스키 음대를 비롯해 쉐프킨, 슈우킨 연극대학,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 등 예술전공 학생들이 대내외적으로 한국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기정 사실이다. 차이코프스키 음대 한국 유학생들의 경우 여러 유망 콩쿨 대회에서 입상하는 저력을 보이고 있으며 유학생회 차원에서 매년 러시아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연주회를 실시하고 있다. 작년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를 졸업한 정석우 씨는 국제인권영화제 등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는 등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다른 어느 때보다도 현재 한국 유학생들의 저력이 현지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쉐프킨 연극대학 4학년 한국학생들은 최근 러시아 현지인들과 일반 교민을 초청해 졸업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러시아 극작가 오스트로프스키의 '지참금 없는 처녀(Бесприданница)'등 공연 작품들은 번역까지 도맡았다. 연극은 무대 예술이면서 시와 가까운 장르다. 연극은 무대의 소품과 대사, 배우의 연기를 통해 은유와 상징을 만들어낸다. 특히 무언극 연기는 배우의 동작과 몸짓으로 내면을 표현했는데 배우들이 몸짓을 통해 그려 보이는 자모의 풍경이 인상 깊었다.


다음은 쉐프킨 연극 대학 4학년 정소영씨와의 일문 일답
1. 러시아현지인을 대상으로 공연을 선뵈고 있다. 공연을 기획하게 된 이유는?
- 쉐프킨 연극대학교에서 수학하는 4학년 학생들의 졸업 공연입니다. 커리큘럼을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1학년때는 동물, 사물 관찰극 등을 2학년때는 장면극, 3학년때부터 졸업작품을 정해 대본 분석 작업을 거치고 졸업 작품을 상연합니다. 총 4가지의 러시아 작품을 선정했고 6월 졸업에 맞춰 4월부터 매주 4작품을 선뵈고 있습니다. 러시아 학교에서 한국어로 공연을 하는데 교수님들께서 한국관객의 반응을 궁금해하셨고 또한 러시아 작품의 한국어 공연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은 차에 모스크바 교민들은 물론 한국어를 배우는 러시아 학생들의 요청에 따라 매주 공연을 하게 됐습니다.
2. 쉐프킨에서 수학하는 한국 학생들의 러시아 작품 시연 어떤 의미가 있나?
- 몇 해전 송현옥 연출가님이 대표로 계시는 극단 '물결'이 에르몰로바 극장에서 막심 고리키의 '밑바닥에서'를 공연했었습니다. 당시 저희 학생들도 관람했는데 공연 배우들이 연기하는 인물들에 대한 이해와 시각이 러시아-한국인들 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런 소소한 부분들을 이야기하면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장시간 동안 토론한 끝에 저희는 이러한 각기 다른 해석이 도출되는 이유를 사고의 근저에 자리잡힌 문화와 사고방식의 차이와 다양성에서 비롯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지요. 예를들면 톨스토이의 작품 <안나 카레리나>의 헐리우드판을 관람한 러시아 교수님은 영화 속 '안나 카레니나'는 원본 텍스트와 다르게 연약한 작중 주인공으로 표현했다며 혹평을 하셨습니다. 저희는 오랫동안 텍스트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과 차이를 주제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입학하기 전 읽었던 러시아 고전들에 대한 인상과 러시아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체감한 러시아 문화 및 정신세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저희들만의 작품을 창작했고 공연을 시연하면서 한국인들로하여금 러시아 작품에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징검다리를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3. 이번 작품은 러시아 극작가 오스토로프스키의 'Бесприданница'다. 한국어 번역작품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어려웠던 점, 원작과의 차이점은?
- '지참금 없는 처녀'는 번역과 각색 작업 중 가장 어려웠던 작업이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 '여관집 여주인', '자유로운 나비', 오스트로프스키의 '지참금 없는 처녀' 등은 한국어 번역본이 없고, 오스트로프스키가 수준높은 러시아어를 구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작품 속 어휘들이 비유적이고 함축적이다 보니 직역보다는 의역한 부분이 많은데 이는 또 원작의 내용을 오도하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많아 굉장히 고생했던 기억이 남니다. 거의 1년 가까이 교수님과 학생들이 대본을 붙들고 씨름을 했지요. 번역 작업의 첫번째 원칙은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와 의미였습니다. 원작과의 차이를 말하자면 인물 중 파라토프는 매너 좋은 신사적 성품을 가진 자로 그려지지만 저희는 거칠고 비열한 인간으로 각색해 라리사의 슬픔을 멜로가 아닌 격정적인 비극의 여주인공으로 표현하고자 했지요.
4. 현지인들의 반응이 상상외다. 기대했던 바인가?
-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교수님은 '연기는 언어로 통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듣고 마음으로 전하는거다'라고 줄곧 강조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러시아인을 관객으로 공연하기 때문에 언어 소통의 문제를 가장 걱정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야기가 전달 되지 않으면 지루해 질테니까요. 그러나 교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러시아인들 대부분이 한번 쯤은 학창 시절에 읽어 본 고전들이기 때문에 언어를 사이에 두고 연극을 펼치는 배우와 관람객들 간 소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저희가 표현하는 부분을 정확히 관객들이 받아들이고 타이밍에 웃음 지을때 연기자로서 쾌감을 얻기도 합니다. 기대이상으로 매 공연마다 공연장을 꽉꽉 채워주시는 관객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학교 내 소극장이다보니 공간이 넓지 않아 예약한 분에 한해 공연 관람이 가능한 여러 현실적인 여건들에 의해 많은 분들을 초대하지 못하는 점은 항상 조송스럽고 아쉬운 점이죠.
5. 학교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 쉐프킨 연극대학교에는 여러 그룹이 있습니다. 2년에 한번씩 신입생을 뽑는데요, 저희 그룹의 경우 러시아 학생과 한국학생을 번갈아 뽑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학생들 간 4년 차이가 나죠. 1학년에 입학하면 바로 위 직속 선배가 3학년 러시아 학생들이 되고 제가 3학년이 되면 바로 아래 직속 후배가 1학년 러시아 학생들이 되는 거지요. 연극대의 특성상 저희는 그룹별로 수업을 듣습니다. 연기술, 화술, 펜싱, 발레, 째즈, 무대동작 등 연기 수업은 물론이 철학, 세계사, 러시아 역사, 미술사, 서양 극장사, 러시아 극장사, 서양 문학사, 러시아 문학사, 미학, 음악이론, 등 배워야 할 분야가 많습니다. 수업을 함께 듣다보니 그룹 학생들은 하루종일, 1년 내내 함께 생활하게 되는데요. 그래서인지 다른 학교 유학생들 보다 단합이 잘되고 친밀한것 같습니다. 1,2학년때는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수업이 있고 일요일도 교수님이 소집하시면 나가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죠. 3,4학년이 되어 수업이 줄어들어 여유 시간이 생기고 나서도 다들 이전처럼 늘 학교에 모여있더라구요. 힘들다고 느꼈을 때도 있지만 다양한 커리큘럼 덕에 정신없이 연기에, 공부에 매진하며 유학 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6 한류 확대에 조언이 있다면
- 글쎄요. 제가 감히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번 여름 저희 졸업 공연 중 <죄와벌>과 <여관집 여주인>을 들고 한국에 갑니다. 교수님도 모시고 함께 갑니다. 대학로 알과핵 극장에서 7월 28일부터 8월 10일까지 공연을 하게 됐습니다. 교수님들과 함께 한국에 가서 공연할 수 있는 저희도 너무 설레고 기쁘구요, 한국에서 러시아 연극에 관심가져 주시는 분들도 교수님들의 연출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에 큰 관심을 보여주고 계신데요, 이렇게 양 방향으로 서로 교류들이 작게 작게 쌓이다 보면 서로를 더 잘 볼수 있게 되고, 서로에게 관심이 생기는 것부터가 한류의 시작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진: 통신원 촬영, 공연 <지참금 없는 처녀> 중
최승현 통신원
출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