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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14-06-09
국가
러시아
한류 사이트에 사진 한 장이 링크됐다. 재잘거리듯 달린 단문 댓글이 무성하다. 28세 남성 비교 사진이다. 왼쪽은 러시아, 오른쪽은 한국 남자다. 말 많은 러시아인들에게 딱 걸렸다. “열 살 차이는 나보이는군.”, “한국 남자가 어려 보이긴 하지.”, “한국인들은 결혼을 늦게 한다네요.”, “옷을 바꿔 입히면 비슷해 보이겠는데.”, “직업의 차이죠.”, “아빠와 아들 같아.” 댓글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오른쪽, 저래서 아빠 되겠어요. 난 왼쪽, 든든한 가장을 선택.”, “붙어보자는 눈빛인데 싸우면 누가 이길까? 당연 러시아!!”
외모는 이미지다. 세계적 문화산업 추세는 ‘이미지’와 ‘유목’으로 압축된다. 인류 최초의 미디어는 이미지였다. 대중매체의 발달이 이미지의 유목을 도왔다. 한류는 시절 인연을 아주 잘 탔다. 한국 꽃미남이 전 세계 SNS와 유튜브에서 얼굴을 들이민다. <꽃미남>, <훈남>, <완소남>, <청초남> 등 여성의 ‘예쁨’에 버금가는 남자들을 일컫는 신조어가 각국 한류 팬들 사이에서 자국어로 통용된다(이는 한류 팬들 가운데 여성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한다). 물론 모든 한국 남자들이 ‘어여쁜’ 행운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미의 기준도 시대에 따라 바뀐다.
그러나 장동건을 위시한 내로라하는 한국의 표본 미남들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느끼는 한국 남성들의 ‘외모콤플렉스’는 장기간 지속될 것이다. 생각해보자. 쿠바 혁명을 이끈 체 게바라가 잘생기지 않았다면, ‘20세기 가장 완벽한 인간’으로 추앙받을 수 있었을까? 그의 얼굴이 인쇄된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릴 수 있었을까? 그의 외모가 <사탄의 인형>에 나오는 척키를 닮았다면(모스크바도 여름이다. 30도를 웃돈다. 지나치게 공포 영화를 많이 봤다.) 그와 관련된 콘텐츠는 책이 전부였을 지도 모른다.
외적 미의 절대적 기준은 없다. 공통적 요소가 있을 뿐이다. 자신이 ‘꽃미남’ 혹은 ‘꽃미녀’가 아니라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세계는 넓고 미의 기준은 분명, 다르다. 러시아 중에서도, 모스크바 사람들(모스크바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모스크바는 미국 다음으로 두 번째로 이주민이 많은 곳이다)은 동양적인 외모에 눈길을 준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구체적인 자료나 데이터를 토대로 검증된 바를 서술하는 것이 아님을 사전에 밝힌다).
보통 우리는 큰 눈, 짙은 쌍꺼풀, 갸름한 얼굴, 또렷한 이목구비, 아마 빛 머리카락, 하얀 피부, 오뚝한 콧날, 큰 키를 외적 미의 절대적 기준처럼 여기곤 한다. 파란 눈을 가졌다면 더욱 이국적이다. 그러나 모스크바, 유럽 권역의 사람들에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들은 동양 사람의 다소곳함, 쌍꺼풀 없는 작은 눈, 동그란 또는 각진 얼굴형, 구릿빛 피부, 오목조목한 이목구비에서 묘한 매력을 찾는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 빌 1>에서 코튼마우스 역을 맡은 루시 리우와 비교하면 적당할 듯하다.
이쯤에서 러시아 남성에 대해 궁금해진다. 러시아는 미인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렇다면 러시아에 미남은 많을까? 두 마디로 요약하자면 많다. 그러면서 적다. 많다는 것은 우리가 절대적인 기준으로 상정하는 서구적인 외모의 기준에서 내린 평가며, 적다는 평가는 ‘쩌는 간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말이다. 러시아는 성비가 100 이하다. 여성의 숫자가 많다는 얘기다. 러시아 남성의 간지를 떨어트리는 가장 이유는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 가치관과 성비 불균형 때문이 아닌가 싶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에서 2,0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 80% 이상이 남성이었다.
이런 러시아의 성비 불균형 현상은 남성들에게 있어 축복이면서 재앙이 됐다. 그들은 여성에게 멋지게 보이기 위해 꾸미지 않는다.(물론 전부는 아니다. 대체로, 다분히 개인적인 관찰 결과다) 결혼 적령기가 되면 여성이 남성의 구애 대상이 아니다. 남성이 여성의 구애 대상이 된다. 러시아 여성들은 25세(한국 나이 27세)가 넘으면 자신이 노처녀가 됐다고 스스로 인정한다. 만약 남자친구가 없다면 남은 생애를 독신으로 살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고 한다. 그런 위태로움이 신중한 배우자 선택을 막는다. 이런 일면들이 편모 가정을 양산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됐다. 억지가 아니다.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러시아의 경우는 그렇다.
한국과 러시아 남성비교 사진이 억지스럽지 않다. 대체로 러시아 남성들은 나이가 들어 보인다. 통신원을 예로 들자면 30대에 유학을 시작했다. 정규 5년제 과정에 입학한 러시아 친구들과 10살 이상 차이가 난다. 그러나 그들과 교제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외모에 따른 세대 (세대혁명의 시대는 10살 단위로 세대를 나눈다.) 차이에서 오는 거리감은 없다. 거기다가 형, 동생이라는 호칭도 없다. 높임말도 쓰지 않는다. 나이를 물어보지 않는 한 그냥 또래가 된다. 십 대 후반부터 무성하게 자라는 수염, 패션에 대한 무감각, 피부 노화를 촉진하는 러시아의 대륙성 기후는 그들을 나이 들어 보이게 하는 원인 중 하나다. 러시아는 한국보다 고도가 1,000m 높다. 여름이면 작열하는 햇빛과 자외선에 그대로 노출되지만, 남자들은 피부 보호를 위해 애써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독한 술과 일찍 시작하는 사회생활 및 결혼 생활과 무관치 않다. 남자다움의 기준도 한몫한다.
이런 일이 있었다. 수영하고 난 후 탈의실에서 러시아 친구에게 스킨로션 사용을 권한 적이 있었다. 그가 하는 말은 이랬다. “남자가 무슨, 필요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돌이켜보면 ‘그루밍족(grooming)’, ‘아도니스 증후군(Adonis Complex)’ 등 남성의 외모 집착과 관련한 신조어들의 생겨나고 남자가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 풍조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시기는 길지 않다. 생각해보자. 한국 남자들은 언제부터 마스크 팩을 했으며 불편한 이 광경이 언제부터 낯설지 않게 됐을까.
개인 여담이다. 작년 한국에서 여름을 보낼 때의 일이다. 유독 더웠고 자외선 지수가 무척 높은 날이었다. 거리에서 양산을 쫙 폈을 때 함께 있던 친구들은 자지러졌다. “너 미쳤냐?, 헉 이다. ****시리…, 빨리 접어라.” 남자가 양산을 펴고 걷는 모습은 아직 낯설다. (18세기 까지만 해도 남자들은 여성을 보호하는 목적 외에 우산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냥 비를 맞고 다녔다. 체면 때문이다. 남자의 우산 사용은 이후 대중화됐다.) 친구에게 답했다. “두고 봐라. 남자도 양산을 쓰고 다니는 시기가 곧 도래하실 것이다.”

러시아 남성들 역시 멀지 않아 외모에 신경을 쓰는 날이 올 것이다. 트렌드 유입 시기가 다를 뿐이다. 사진 속 주인공들의 자리가 바뀔지도 모른다. 언젠가 처음 만난 러시아 남성이 내게 나이를 물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22살이었는데 30대 중반은 돼 보였다. 내 나이를 밝히자 아주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젊어 보인다고 칭찬했고, 난 손석희 아나운서 조로 대답하며 노회찬 정의당 위원장처럼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렸다. (어느 토론 프로그램에서 박원순 서울 시장이 손석희 아나운서에게 인사조로 이런 말을 건넨 적이 있다. “손석희 아나운서님은 저와 동갑인데 참 젊어 보이십니다.” 그때 손석희 아나운서는 이렇게 답했다. “여기 옆에 계신 노회찬 위원님도 저와 동갑이십니다.”) “제가 동안(童顔)이 아니라 빅토르 유리예비치씨가 노안(老視)이십니다”
※ 사진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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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현 통신원
출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