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되면 우크라 수도 키예프(키이우)는 어김없이 불바다가 된다. 러시아군의 미사일-드론 공격을 받아서다.
러시아 모스크바는 다가올 큰 행사가 두렵다. 러-아세안 정상회의, G7 정상회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 등 언론의 주목을 받는 행사를 전후해 모스크바 등지로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드론이 떼로 날아오기 때문이다. 타깃은 드론 공격으로 파괴 효과가 큰 기름 관련 시설이다. 정유시설과 유류 저장고, 주유소 등이다. 우크라이나 드론이 촘촘한 모스크바 방공망을 뚫고 하나라도 소위 '기름 통'에 떨어지면, 곧바로 큰 화재로 이어지니 홍보 효과로는 그만이다.
러시아가 미사일·드론으로 키예프를 불바다로 만들 듯이, 우크라이나도 모스크바 기반 시설을 공격하고 싶지만, 여의치 않으니 손쉬운 기름 비축 시설을 집중 공략한다. 비대칭 보복 공격이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모스크바는 18일 새벽 190여대의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을 받아 △동남부 카포트냐 정유공장에 화재가 발생했고 △시내 여러 도로의 차량 통행이 차단됐으며 △모스크바 외곽 4개 주요 국제공항이 일시적으로 폐쇄되는 혼란을 겪었다. 세르게이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은 방공 시스템이 모스크바로 접근하는 50대 이상의 드론을 격추했지만, 일부 드론은 카포트냐 정유공장을 타격했다고 인정했다.
모스크바 수도권(모스크바주·州)에서는 우크라이나 드론이 아파트 등 주거용 건물을 타격하고, 격추된 드론 잔해에 주민이 부상했다. 러시아 국영 타스 통신은 우크라이나군의 이번 공격이 지난 3년 동안 모스크바를 대상으로 한 공격 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분석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푸틴 (대통령)이 이 전쟁을 끝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조용히 앉아 있지 않고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면서 "우크라이나가 불탄다면 모스크바도 불탈 것"이라고 경고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아세안 정상회의가 열리는 타타르스탄의 수도 카잔을 방문 중이었다.
이날 우크라이나 공습을 받은 카포트냐 정유공장은 러시아 국영 가스 회사 가스프롬의 자회사인 '가스프롬네프티'가 운영하며, 모스크바 연료 시장 수요량의 약 35%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공장은 프랑스 에비앙에서 G7 정상회의가 열린 이틀 전(16일)에도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으로 큰 불이 났다.
모스크바가 우려하는 것은, 이전과 달리 방공망이 우크라이나 장거리 드론에 잇달아 뚫리고 있다는 점이다. 키예프(키이우)는 과거에도 모스크바 방공망을 뚫기 위해 수없이 시도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가장 두드러진 성공 사례가 크렘린궁 지붕을 손상시킨 사건이다. 이후 모스크바 방공망은 더욱 강화됐고, 우크라이나 드론은 모스크바 외곽 지역에서 차단되거나 외곽의 주택이나 건물에 떨어졌는데, 그마저도 드물었다.
지난 5월에도 우크라이나 드론이 카포트냐 정유공장 근처까지 날아왔지만 입구에 떨어져 시설을 손상시키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제는 우크라이나 드론이 16일과 18일 연속으로 타격 목표물인 정유 공장을 정확하게 때렸다.

이론적으로 아무리 정교한 방공망이라고 해도 한꺼번에 날아오는 드론 떼를 모두 막을 수는 없다.
스트라나.ua는 16일 "전 세계에서 모든 드론을 100% 요격할 수 있는 방공 시스템은 없다"며 "수십, 수백 대의 드론이 매일 하나의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면서 동시에 방공망 배치를 분석하고 경로를 최적화한다면, 언젠가는 드론이 목표물을 타격할 것"이라고 짚었다. 모스크바의 방공망이 촘촘하게 배치돼 있다고는 하지만, 모스크바의 정유공장을 향해 계속 드론을 날리다보면, 방공망을 뚫은 한 대만으로도 상당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드론 한 대로는 군사 시설이나 발전소, 항만 등을 무력화할 수는 없지만, 기름의 생산 및 저장, 환적과 관련된 시설은 가능하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기름 관련 시설을 집중 타격하는 이유다.
우크라이나 미사일·드론의 방공망 돌파율도 사실 그리 높지 않다고 한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지는 16일 "우크라이나의 드론 대부분은 목표물에 도달하지 못한 채 극히 일부만이 러시아 방공망을 뚫고 목표 지역으로 들어간다"며 "성공률은 종류에 따라 2%에서 35%까지 다양하다"고 보도했다. 또 시속 350㎞ 이상으로 날아가는 빠른 무기가 요격을 피할 확률이 높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탄도 미사일로 러시아를 공격할 단계에 매우 근접했다고 주장했지만, 군사 전문가들은 믿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장거리 드론 만으로 러시아의 기름 시설 타격이 가능하다.
그나마 장거리 드론 공격만으로도 우크라이나는 기대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다. 우크라이나 드론이 러시아 본토에서 크림반도로 연결되는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유조차와 화물차 등을 집중 공격하면서 (러시아가 합병한) 크림반도의 연료 부족 현상이 심각해졌다. 러시아 본토 일부 지역에서도 우크라이나군의 정유 시설 공격으로 기름 부족과 가격 상승이 시작되고 있다. 기름 소비가 가장 많은 7월~8월 휴가철과 수확철을 앞둔 우크라이나의 드론 전략은 나름대로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뉴스1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집중 공격으로 러시아 본토 53개 지역과 크림반도 및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에서 개인 차량에 대한 연료 판매 제한 조치가 시행되고 있다. 러시아의 대형 석유회사 '타트네프티'는 16일 전국의 자사 주유소에서 휘발유와 디젤 연료 판매를 일시적으로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에 따라 승용차에 대한 휘발유 1회 최대 판매량은 30리터, 경유 최대 판매량은 60리터로 제한되고, 화물차의 경우 한번에 최대 300리터의 경유만 판매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이같은 기름 부족 사태를 막기 위해 해상으로 연료 수입을 시작할 것이라는 외신(로이터 통신) 보도도 나왔다.
크렘린의 고민도 덩달아 깊어가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현재 전쟁 전략은 한마디로 '장기소모전'이다. 우크라이나군의 전력이 갈수록 바닥을 드러내면서 전선이 무너지고, 유럽도 경제 문제의 대(對)우크라 지원이 약화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8월의 앵커리지 미러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설령 그렇게 되지는 않더라도, 지금과 같은 전략을 유지하면 1년, 2년, 혹은 3년 안에 우크라이나의 항복을 받아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맞서는 젤렌스키 대통령과 유럽 지도자들은 크렘린의 이같은 전략을 무력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러시아 후방에 대한 장거리 드론 공격이다. 러시아의 석유 수출을 막기 위한 수출항 기반 시설 공격은 지금까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기름 공장 공격은 경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점점 더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는 듯하다.
앞으로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면 크렘린은 대안 마련에 나설 것이다.
우선은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으로부터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러시아는 그동안 우크라이나의 다양한 공격 작전을 무력화하는 대안을 만들어온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전장이 점점 드론과 같은 무인 시스템과 AI(인공지능)을 활용한 대결의 장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키예프는 △AI 분야의 선두 주자인 미국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드론 생산 기지를 유럽으로 이전하는 등 러시아의 대안 마련에 이전과는 다른 어려움을 안겨주고 있다.
러시아는 또 유럽이 육상과 해상으로 우크라이나를 직접 지원하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석유 시설을 공격할 때와 같은 수준의 경제적, 심리적 타격을 우크라이나에 입히는 것은 어렵다. 더욱이 이란-미국 전쟁의 휴전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하락할 경우, 러시아의 기존 전시 모델은 한계에 다다를 수 있다. 재정을 더욱 긴축하고 전면적인 전시 경제 체제로 전환해야 할지도 모른다.
장기 소모전을 더 이상 끌고 가기 힘들다는 판단이 서면 현전선에서의 휴전이나 극단적인 선택(총동원령 발령과 핵무기 사용)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현전선에서의 휴전을 주장하고, 푸틴 대통령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돈바스의 완전 장악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현 전선에서 휴전하더라도, 본질적으로 러시아의 승리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우크라이나 영토의 20%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했고,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상당한 대가(제재 해제, 점령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관할권 인정 등)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그의 입지는 크게 좁아들 수밖에 없다. 모스크바로서는 원하는 미국의 지원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또 다른 선택은 총동원령을 발령해 단기간에 돈바스를 점령하거나 전술 핵무기를 사용하는 방안이다. 둘 다 매우 위험한 극단적인 선택이다. 자칫하면 총동원령에 따른 러시아 민심의 동요로 크렘린의 권력 체제가 흔들릴 수 있고, 전술 핵무기 사용은 소위 '서방과의 핵전쟁'으로 빠르게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에서 핵전쟁을 원하는 나라는 없다. 핵전쟁 위협은 취약한 러시아의 처지를 반전시키는 카드가 된다고 믿는 강경세력도 실제로 존재한다. 진영 간 극단 대립 상황에서 사소한 사건 하나가 세계대전으로 비화한 역사를 기억한다면, 핵전쟁과 같은 인류 멸망의 날이 오기 전에 전쟁 당사자들이 협상에서 조금씩 더 양보하는 마음가짐이 화급해 보인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
바이러시아 1일전 18일 모스크바의 카포트냐 정유공장 폭발은 우크라이나 드론이 아니라 드론을 요격하려던 러시아군의 휴대용 대공미사일(MANPAD)의 오폭에 의한 것이라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19일 주장했다. SNS에 올라온 당시 영상을 보면 정유 공장의 폭발 직전 드론을 요격하려는 듯 대공 미사일 2발이 지상에서 발사됐는데, 저고도로 연료 저장고 쪽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고 곧바로 화염에 휩싸였다는 것. 영상 속 미사일은 발사 지점과 낮은 고도의 궤적, 발사 당시 화염이 없었다는 점 등으로 미뤄 MANPAD로 보인다는 게 NYT의 결론이다. 실제로 또 다른 영상에는 카포트냐 정유공장 인근 도로에서 러시아 병사들이 드론을 격추하기 위해 MANPAD를 발사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