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Jun 2026

젤렌스키 대통령의 대러 평화 공세, 허와 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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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러시아는 중국에 의존하는 쇠퇴하는 강대국으로, 북한의 도움 없이는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다."(4일, 푸틴 대통령에게 보낸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서한)

#2
"내가 제공한 (군사) 장비가 없었다면 우크라이나는 하루 이틀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4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

상식적으로, 또 객관적으로 누구의 말에 더 신뢰를 보낼 수 있을까?
'북한의 도움' 운운하는 대목은 2024년 가을 러시아의 쿠르스크주(州) 탈환작전 당시 북한균의 파병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군의 파병이 없었다면, 우크라이나군이 쿠르스크주를 넘어 러시아 본토 깊숙히 더 들어갔을 것이라는 주장으로 들린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북한군의 파병은 탈환작전이 시작될 즈음에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러시아군은 당시 도네츠크주(州)의 소위 '요새 벨트'를 공격하는 부대의 쿠르스크 전선 재배치 대신, 북한군의 파병을 받아 쿠르스크 탈환 작전을 성공시킨 것이라는 평가가 객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준 장비가 없었다면' 이라는 대목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군사 정보나 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우크라이나는 패배의 길로 갈 것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전체 맥락에서 진실을, 젤렌스키 대통령의 서한 속 문구는 상대를 폄하하거나 약올리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봐야 한다. 아니, 거꾸로 뭔가 찔리는 게 있는 걸까? 젤렌스키 대통령이 갑자기 왜 푸틴 대통령에 공개 서한을 보내고, 그 내용을 공개하면서까지 흠집을 내려고 할까? 

그가 푸틴 대통령에게 단독으로 만나자고 요구한 것은 올 1월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에서 첫 미-러-우크라 3자 회의가 열리기 전부터다. 그때마다 푸틴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임기가 지난 젤렌스키 대통령의 대표성(합법성)을 문제 삼았고, 평화협상 타결 직전의 마지막 순간에야 만날 수 있다고 여지를 뒀다. 실제로 전쟁 첫해(2022년) 3월 말 러-우크라 간 이스탄불 평화협상 타결(우크라이나가 영국 등 서방의 군사 지원 약속을 믿고 합의안을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푸틴 대통령은 주장한다/편집자) 당시, 두 정상이 만나는 일정도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측의 일방적인 합의안 파기로 푸틴-젤렌스키 대통령이 만나는 일은 물건너 갔다. 재집권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중재로 러-우크라 간 평화협상이 다시 시작되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영토 문제와 같은 핵심적인 사안은 최고위급(정상)의 담판으로만 가능하다"며 대면 만남(정상회담)을 요구했으나 러시아는 단 칼에 잘랐다. 

2022년 3월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러-우크라 평화협상 모습/러시아 TV 채널 영상 캡처
2022년 3월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러-우크라 평화협상 모습/러시아 TV 채널 영상 캡처

이같은 국면에 변화가 온 것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달(5월) 친(親)크렘린 러시아 올리가르히를 은밀히 키예프(키이우)로 불러 정상회담 주선을 요청하면서부터다. 올리가르히는 같은 핏줄(유대인)을 지닌 로만 아브라모비치 전 영국 프로축구 구단 첼시의 구단주다. 

아브라모비치는 키예프 측에 철저한 비밀 준수를 요구하면서 요청을 수락했고, 그 뜻을 크렘린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크렘린은 이에 대한 답변을 하지 않았고(파이낸설 타임스·FT 7일 보도), 그 사이에 우크라이나군 드론이 루간스크주(州) 스타로빌리지 대학 기숙사를 폭격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10대 젊은 학생들의 개죽음에 분노한 푸틴 대통령은 아브라모비치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만나자고 하면서 아이들을 죽음으로 모는 것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아브라모비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푸틴 대통령의 상트페테르부르크국제경제포럼 발언중). 

상트 포럼에 참석한 푸틴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ru
상트 포럼에 참석한 푸틴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ru

짐작컨대, 아브라모비치는 키예프 측에 푸틴 대통령의 질문을 전달했고, 은밀한 정상회담 추진도 불가능하다고 여긴 젤렌스키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이라는 이름으로 대놓고 그 내용도 인터넷에 공개해버렸다. 

외교 관례상, 정상 간의 단독 대화나 친서 등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법이다. 자기가 보낸 서한이라고 상대국 정상에게 보낸 서한의 내용을 공개하는 것도 외교적 결례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서한이 비서방 진영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다. 한마디로 질 낮은 '꼼수'다. 공정한 언론이라면 서한의 내용을 보도, 분석하기 전에 이 점을 먼저 지적하는 게 옳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6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공개서한을 푸틴 대통령에게 보내 종전 담판을 제안한 것은 전쟁 장기화에 피로감을 느끼는 러시아 엘리트층(집권층)을 겨냥한 내부 분열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서한이 푸틴 대통령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불편하게 만들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4년째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러시아의 약점을 정면으로 겨냥했다는 것이다. 반(反)러-친(親)우크라 진영에서 본 긍정적인 해석이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관계자는 르몽드에 "이 편지는 푸틴 대통령을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러시아 엘리트층과 국제 파트너들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며 "그들이 현 상황을 직시하고 전쟁 종식을 위해 압박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전달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독립(반정부) 매체 '노바야 가제타 유럽'의 키릴 마르티노프 편집장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편지가 러시아에서 즉각적인 반란을 촉발하지는 않겠지만 엘리트층과 군 수뇌부 내부에 적지 않은 동요를 일으킬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반정부 성향의 언론인(러시아를 떠나기 전까지 반정부 메두자와 도즈드(Dozhd) TV 채널 기자로 활동/편집자)으로 자신의 미디어 매체인 FariDaily(2026년 Vlast로 개명/편집자)를 운영하는 파리다 루스타모바는 "러시아 내에서 사회적·정치적 피로감이 커지는 시점에 나온 적절한 메시지"라며 "협상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서한은 푸틴 대통령이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 연설에 나서기 직전인 지난 4일 발송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일방적인 정상회담 추진은 공개 요구→비밀리에 중재자 투입→ 공개 서한 발송으로 이어지면서 완전히 물건너 간 것으로 봐야 한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은 SPIEF 석상에서 "서한을 읽었다"면서 "편지에 무례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불쾌해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의 목표를 충족하는 최종 합의가 나오기 전까지 두 정상 간 회담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일축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사진출처:president.gov.ua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사진출처:president.gov.ua

우크라이나에서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왜 끈질기게 정상회담을 추진할까?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모양이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7일 '은밀한 질문들-젤렌스키는 왜 푸틴과의 회담을 추진하는 걸까?' ("Интимные вопросы". Зачем Зеленский добивается встречи с Путиным?)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전쟁 중인 상황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 중 하나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의 직접 만남을 간절히 원한다는 점"이라며 "최근 그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도 '핵심 사안을 결정하는 것은 지도자들이며, 이는 항상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전제한 뒤 '당신과의 협상을 통해 전쟁을 끝내고 싶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그러나 푸틴 대통령과의 협상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핵심 사안'의 타결 가능성에는 근본적으로 의문을 표시했다. 키예프와 모스크바의 공식적인 입장은 이미 잘 알려져 있으며, 완전히 상반되기 때문이다.

양측의 기본 입장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현 전선에서 휴전한 뒤 평화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협상에서 (미국과 러시아가 3자 회담에서 요구하는) 추가적인 영토 양보나 국내 정책의 변화에 대한 논의 자체는 아예 거부하고 있다. 
모스크바는 우크라이나군이 도네츠크주(州)에서 철수하는 것을 휴전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국내 정책(언어, 종교)과 외교 정책(나토 가입 여부 및 중립 국가) 모두에서 우크라이나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록을 제시했다. 

양측이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내세우는 주장 또한 널리 알려져 있다. 
러시아는 "전선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으며, 상황은 앞으로 더욱 악화될 것이므로 현재의 협상 조건을 수용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공격 강화로 러시아는 곧 완전히 자빠질 것"이라고 반박한다. 

이처럼 입장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상황에서는 대체로 최고위급 회담이 열릴 수 없다는 게 스트라나.ua의 결론이다. 만나봐야 그 결과가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서 정상회담이 이뤄져야 생산적인 만남이 될까? 이론적으로는 △만남을 제안한 측(젤렌스키)이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밝힌 입장을 바꿀 의향이 있거나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카드를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예컨대 돈바스에서 군대를 철수하는 대가로 러시아에 어떤 것을 요구하든지, 거꾸로 러시아가 전선에서의 전쟁을 중단하는 데 동의한다면, 그 대가로 무언가를 주겠다는 협상 카드를 갖고 만나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카드로는 전후 안보보장과 경제적 지원(전쟁 보상), 혹은 민족주의세력 제어나 나토 가입 포기 등을 각각 들 수 있다. 

스트라나.ua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협상 카드를 내밀고 약속을 하더라도, 푸틴 대통령이 그것을 신뢰할 가능성이 낮다"면서 "두 정상이 설령 서로 믿고 거래한다고 해도 강력한 외부(유럽) 압력과 어려운 국내 정치 상황(부패 스캔들 등)을 고려할 때, 젤렌스키 대통령이 자신의 약속을 이행하거나 우크라이나 내부 흐름을 통제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짚었다. 

따라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상회담 요구와 서한은 그가 진정으로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합의에 도달하기를 바란다는 의미가 아니라, 순전히 프로파간다(선전전) 차원으로 볼 수밖에 없다. 르몽드의 분석대로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평화 공세'인 셈이다. 한 마디로 전쟁 종식을 막고 있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크렘린이라는 주장을 펴고 싶은 것이다. "전쟁 종식을 막고 있는 걸림돌은 젤렌스키 대통령"이라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올 1월 발언을 뒤엎고 싶은 욕구에서 나온 게 분명하다. 

또 조속한 전쟁 종식을 갈망하는 우크라이나 사회와 전쟁에 대한 피로감이 커지고 있는 러시아 등 양측을 겨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의 서한에는 실제로 러시아의 정서에 호소하는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또 다른 분석에 따르면, 이 서한은 러시아와 대화가 필요하다는 유럽연합(EU) 내 협상론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한다. EU도 푸틴 대통령과 만나 이야기해봐야 나올 게 없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치권에서는 EU가 모스크바와의 협상에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양보를 할 수 있다는 우려(드미트리 쿨레바 전 외무장관 주장)가 제기된 상태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공개 서한은 그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를 지녔고, 결과적으로는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영국-프랑스-독일 정상들 간의 런던 회동/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president.gov.ua
젤렌스키 대통령과 영국-프랑스-독일 정상들 간의 런던 회동/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president.gov.ua

공개서한이 발송된 지 나흘만에(8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런던에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만나 '전선에서의 전쟁 종식을 위한 조건'에 합의했다. △적대행위를 중단(휴전)하고 △현 전선을 평화 협상의 출발점으로 삼으며 △휴전 이후 우크라이나는 자국 영토에 다국적군 배치를 포함한 법적 구속력이 있는 안보 보장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또 전쟁이 끝나더라도 우크라이나에 배상금이 지급될 때까지 러시아 자산을 동결하고, 앞으로 체결될 모든 (평화) 협정의 틀 안에서 유럽의 안보 이익을 보호하기로 했다. 

합의 내용으로만 보면, 젤렌스키 대통령과 유럽 국가들이 트럼프 미 대통령의 압력에 밀려 2025년 봄 휴전에 동의한 이후, 푸틴 대통령이 미국의 휴전 제안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도록 제시한 전제 조건과 유사하다. 4개국 정상들이 1년여 전 러시아에 (2025년) 5월 12일까지 휴전을 받아들이도록 압박한 '최후통첩'의 내용과도 달라진 게 없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공개 서한 역시, 러시아에게 휴전을 거부하도록, 선택의 폭을 억지로 줄이려는 듯한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스트라나.ua는 8일 "키예프와 유럽은 모스크바가 갑자기 입장을 바꿔 전선에서의 전쟁 종식에 동의할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고, 이에 동의하지 못하도록 까다로운 전제 조건들을 달고 있다"면서 "사실상 러시아가 동의하지 못하도록 만든 조건들"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 내부에서는 전선에서의 휴전이 러시아의 '항복'을 뜻한다는 강경파들의 주장이 적극적으로 개진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서한이나 4개국 정상의 합의 내용은 이들의 주장을 더욱 부추길 게 분명하다. 

다른 일각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1940년 핀란드와의 겨울 전쟁을 모델로 삼아 현전선에서 전투를 중단하더라도 충분히 국가 이익을 챙겼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같은 의제를 러시아 안팎에서 누구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있다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전선에서의 전쟁 종식은 푸틴 대통령에게 굴욕이자 항복이 될 것"이라는 강경 주장이 훨씬 더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다. 

스트라나.ua의 결론은 이렇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유럽 국가들이 현전선에서의 전쟁 종식을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러시아가 그러한 제안을 거부하기를 바라고 같은 말을 계속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주기적으로 제기된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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