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이 지난달(6월) 29일 한국을 찾았다. 무려 11년 만이다. 안드레이(안드리) 시비가(시비하) 장관은 1박 2일간 서울에 머문 뒤 도쿄로 떠났는데, 그가 아시아로 온 주된 목적은 분명하다. 군사·재정적 지원을 받기 위해서다. 이는 4개월여 전인 올 2월 한-일 양국의 언론 보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우리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 2월 20일 "정부는 우크라이나 지원과 관련해 나토(NATO)와 다양한 방안을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검토하는 지원 방안에는 지난해(2025년) 7월 시작된 '우크라이나 우선 지원 목록'(PURL, 나토가 미국산 무기를 구매해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방식/편집자) 프로그램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즈음 일본에서도 살상 능력이 없는 차량이나 레이더 등 장비 조달용으로 범위를 제한한 상태에서 PURL 참여 의사를 표명할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한-일 양국 모두 나토 측의 지원 요청을 받았을 테지만, 그 시점은 아주 공교로왔다.
당연히 러시아는 발끈했다.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한국이 PURL 프로그램에 참여할 경우, 모스크바는 비대칭적 조치를 포함한 보복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한-러시아 관계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히고, 한반도에서 건설적인 대화 복원의 전망을 무산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4개월여가 흐른 뒤 시비가 장관이 서울을 거쳐 일본에 갔다.
한국 방문에서 그의 손에 든 '카드'는 크게 두개다. 하나는 우크라이나가 억류하고 있는 북한군 포로 2명이고, 다른 하나는 드론 전력의 강화를 기본으로 한 한국군의 개혁 방안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드론의 실전 경험이다.
북한군 포로 2명은 지난해 초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한국행 의사를 밝혔고, 우리 정부도 본인들의 자유의사에 따라 한국행을 희망할 경우, 수용한다는 입장을 거듭 천명했다.
반면, 러시아는 쿠르스크주 탈환작전 도중 우크라이나군에게 포로로 잡힌 이들을 안전하게 고향(북한)으로 돌려보내야 할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있다. 한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우크라이나는 '꽃놀이 패'를 쥔 형국이다.

시비가 장관은 방한 중 그 패를 슬쩍 내보인 것으로 짐작된다. 그가 한국을 떠난 뒤 모 언론은 외교안보 소식통을 인용, 러시아 측이 북한군 포로 2명의 송환 대가로 우크라이나인 수천 명의 석방을 제안했다고 1일 보도했다. 시비가 장관이 아산정책연구원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은 사실을 흘렸다는 것이다.
앞서 시비가 장관은 조현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북한군 포로 문제를 협의한 뒤, 양국은 국제법과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이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가 외무장관 회담에서 이 패를 까지 않았다고 볼 이유는 없다.
합의의 최대 걸림돌은 대가성 협상을 통한 북한군 송환 에는 선을 그은 우리 정부의 방침이 아니었을까 싶다. 만약 우크라이나 측이 북한군 포로의 한국행을 확정하는 대신, 뭔가 대가(예를 들면 PURL 참가)를 원했다면, 당초 기대와는 달리 이 문제가 우리 측에 의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측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또다른 당사자인 러시아는 이 문제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을까? 북한군 포로 2명과 우크라이나인 수천명을 교환할 생각이 진짜 있었을까?
rbc 등 러시아 언론도 시비가 장관의 서울 방문에 큰 관심을 보였다. 북한군 포로의 송환 문제에 대해 상세히 다루기도 했다.
rbc에 따르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당초 북한군 포로의 존재를 공개하면서, 우크라이나군 포로와 교환하는 방식으로 이들을 북한에 인도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이에 대해 "그 내용이 사실인지, 누가(혹시 북한이/편집자) 어떤 제안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구체적인 답변을 피해갔다.
러시아가 북한군 포로의 송환에 적극 나섰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지난 5월 쯤이다. 러시아 측과 포로 교환 문제를 논의하는 우크라이나 포로조정본부의 보흐단 오흐리멘코 사무국장이 "모스크바가 그동안 키예프(키이우)에 북한군을 포로 교환 대상 명단에 포함시킬 것을 여러 차례 제안했다"고 처음으로 공개한 것이다.
그렇다고 모스크바가 (사비가 장관이 흘린 대로) 우크라이나 측에 수천명의 석방을 제의했을 가능성은 아주 낮아 보인다. 지금까지 러-우크라 양측은 포로 교환을 위해 돌려보낼 포로들의 명단과 받을 명단을 서로 교환한 뒤 절충을 거쳐 같은 수의 교환자 명단을 최종 확정해 왔다. 따라서 북한군 2명을 돌려받기 위해 수천명의 우크라이나인 석방 명단을 보낼 것으로 보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북한 당국은 아직 포로 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북한군 포로의 공개 이후 한국의 언론과 언론들이 북한군 포로의 한국 송환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괜찮은 카드 하나를 쥔 것으로 생각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시비가 장관의 서울 방문 이전에도 양국 간에는 어떤 수위에서든 논의가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의 방문 일주일 전인 지난달 23일, 우리 외교부는 북한군 포로들이 원할 경우, "두 사람 모두 수용할 준비가 돠어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시비가 장관의 방한 하루 전, 익명의 한국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서울과 키예프가 이 문제에 대해 "기본적인 합의에 도달했으며, 시비가 장관의 방문 기간에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rbc는 전했다.
한국의 국방개혁에 우크라이나가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했을 가능성도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게오르기 티히 우크라이나 외무부 대변인은 시비가 장관의 한국 방문 목적을 설명하면서 "키이우와 서울 간의 안보 협력 발전 방안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전투 및 기술 경험은 한국에게 매력적인 안보 파트너가 될 수 있게 해준다"고 강조했다.
이 대목은 비무장지대(DMZ)를 찾은 시비가 장관이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방문기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그는 "한국의 DMZ에 서 있으니 세계 안보가 직결됐다는 게 매우 분명해졌다"며 "우크라이나는 안보를 수출하고 자국 경험을 공유할 준비가 돼 있으며, 한국에게 호혜적인 안보 파트너십을 제안한다"고 썼다.

그가 노린 것은 안규백 국방장관이 지난달 26일 제시한 한국의 국방개혁이라는 게 rbc의 분석이다. 국방개혁의 핵심 비전은 'AI·첨단과학기술 기반 스마트 정예강군'인데, 한마디로 쉽게 말하면 '드론 강군'이다. rbc는 안 장관의 드론 확보 및 운영자 양성 계획을 자세히 전했다. 그 과정에서 우크라이나는 실전으로 확보한 드론 기술및 경험을 우리에게 넘길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이란 전쟁 당시 걸프연안 국가들에게 자국의 방어용 드론과 방어 기술을 미국산 패트리어트 방공 미사일과 바꾸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우리가 원하는 우크라이나의 드론 전력및 경험과 북한군 포로의 송환을 대가로, 우크라이나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세계 10대 무기 생산국이 된 한국의 각종 무기 지원(혹은 교환, 판매)일 것이다.
rbc는 한국과 미국 언론을 인용해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각종 무기를 지원할 만큼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또 실제로 155㎜ 포탄을 지원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운영하는 웹포털 '코리아넷'에 따르면 한국은 2025년 유럽의 나토 회원국에 두 번째로 많은(1위는 미국) 무기를 공급한 국가다. 또 코리아중앙데일리(중앙일보 영자지)에 따르면 한국은 연간 최대 20만 발의 155㎜ 포탄을 생산할 수 있으며, 이는 미국의 연간 생산량(약 9만 발)의 두 배가 넘는다.
한국은 이미 우크라이나에 간접적으로 군사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누구도 공식적으로 확인해 주지 않지만, 2023년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한국과 155㎜ 포탄 약 50만 발을 구매하기로 했다고 한다. 미국이 자국의 155㎜ 포탄 비축량을 우크라이나에 보내고, 한국에서 산 포탄으로 채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 워싱턴 포스트(WP)에 따르면 한국의 포탄이 미국으로 가지 않고, 우크라이나에 직접 보내졌다고 한다. 2023년 말에는 한국이 유럽 국가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탄약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하는 최대 공급국이 되었다고 했다.

WP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우크라이나군 당국은 한국산 포탄의 품질을 실전에서 이미 확인했고, 트럼프 미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발을 뺀 상태에서 한국과 직접 협상을 통해 모자라는 포탄이나 (방공용) 미사일을 확보할 계획을 세우는 게 자연스럽다.
결론적으로 시비가 장관은 한국 방문에서 PURL 프로그램의 참가와 포탄및 미사일의 직접 거래라는 두 가지 목적의 달성을 위해 북한군 포로 송환과 안보 파트너쉽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군 포로의 송환 대가로 수천 명의 우크라이나인을 석방하겠다는 러시아측 제안설은, 그래서 목적 달성을 위한 우크라이나 측의 '뻥 카드'가 아닐까 싶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