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Aug 2026

연재)한반도 테마의 '잭팟' 추리 소설 '데칼코마니-신들의 화폐' 제4편

한반도 위기를 촉매재로 삼아 한-미 양국의 최고위층에서 벌어지는 카지노 자본주의, 권력이 금융시장의 핵무기 격인 파생상품으로 '잭팟'을 노리는 거대한 음모를 담은 본격 추리 소설 '데칼코마니-신들의 화폐'를 작가의 양해를 얻어 연재한다. 

☜이 소설은 한반도 위기를 모티브로 한 가상의 추리 소설이며, 등장 인명·지명·기관·사건 등은 사실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데칼코마니 신들의 화폐 - 3]에서 계속

[데칼코마니 신들의 화폐 - 4] 

4화. 백악관의 손가락 

오래 전 어느 날. 온종일 세상에 작열하던 태양은 어느덧 힘이 다한 듯, 지리산 깊은 산골의 서쪽 하늘을 처연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꽃보다 찬란한 저녁노을은 인간 세상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품은 채, 또 다른 세상을 찾아 떠나려는 듯했다. 고요한 산자락에도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았다. 
적막과 고독이 다가와 풀잎의 향과 더불어 은은한 평온 속에 스며들 때, 하루 내내 울던 새들도 숨을 고르며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산골짜기 깊은 곳에서 터져 나왔다. 한 남자가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절규하고 있었다. 그 절규는 바위와 나무와 계곡물에 부딪혀 메아리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곧 캄캄한 적막에 묻혔고, 산에는 다시 차가운 고요가 찾아왔다. 

다음 날, 태양이 다시 서쪽 하늘로 넘어갈 무렵. 
등산복 차림의 삼십 대 중반 남자가 지리산의 작은 계곡을 따라 천천히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는 활짝 핀 아카시아꽃을 한 움큼 따서 눈을 감고 향기를 맡았다. 그리고 그 꽃잎들을 계곡물에 조용히 흘려보냈다. 

그는 그 행동을 한동안 반복했다. 
마치 그만의 오래된 의식처럼. 

잠시 후, 그가 아카시아가 만발한 계곡을 따라 더 깊이 올라가자, 산 정상 가까운 곳에 탁 트인 시야와 평평한 바위가 나타났다. 어느새 사방에는 고요한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그는 배낭을 베개 삼아 바위 위에 누웠다. 한 주먹 움켜쥔 달콤한 아카시아 꽃향기를 맡으며, 언제나 그를 반겨 주던 영롱한 별들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별들이 지상으로 내려온 듯, 환상적이고 매혹적인 빛들이 어둠 속에서 하나둘 피어났다. 반딧불이였다. 마치 그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것처럼, 한 무리의 반딧불이가 그의 주변을 맴돌며 반갑게 인사하고 있었다. 

남자는 가만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아카시아의 달콤한 꽃향기가 가득한 손바닥을 천천히 허공에 내밀었다. 반딧불이들은 너도나도 살포시 그의 손바닥에 내려앉았다. 작고 여린 빛들이 그의 손 위에서 반짝였다. 마치 세상 어딘가에서 들려온 오래된 소식을 전해 주는 것 같았다. 그는 따뜻한 눈빛으로 그 작은 생명들을 바라보았다. 

‘나도 찬란한 빛을 내며 온 세상을 훨훨 날아다니고 싶다.’ 
그는 알고 있었다. 
반딧불이의 고귀한 삶과 죽음의 여정을. 

이들은 십여 일 동안 이슬만 먹고 영롱한 빛을 내며 사랑을 나누다가, 곧 별이 되어 떠날 것이다. 짧은 생의 빛일수록, 어두운 밤은 더 오래 기억할 것이었다. 
그의 손바닥 위에 내려앉아 있던 반딧불이들이 작별을 고하듯 급히 날아올랐다. 그는 떠나가는 반딧불이들을 황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반딧불이/사진출처:나무 위키

잠시 후, 그는 다시 배낭을 베고 누웠다. 아카시아 향내 속에 몸을 맡긴 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그의 손에 쥔 작은 레이저 포인터에서 강렬한 초록빛이 밤하늘로 치솟았다. 

반딧불이가 그의 마음을 전한 것일까. 
아니면 그 초록빛에 실린 그의 소망이 별들에 닿은 것일까. 때마침 유성우가 밤하늘을 가로질러 쏟아져 내렸다. 별빛이 검은 하늘을 가르며 떨어졌다. 

그러자 계곡 어딘가에서 개구리들이 울기 시작했다. 마치 밤하늘을 향해 너도나도 구원을 요청하는 것처럼, 작은 울음들이 깊은 산속에 퍼져 갔다. 

깊은 밤하늘 아래.
별과 반딧불이가 늘 그를 위로하던 그곳은 그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그만의 왕국이었다. 

그 남자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오래된 기억을 떠올렸다. 지리산 산골 마을에 살던 한 소년이 자주 찾았던 산마루. 그 평평한 바위 아래 깊은 골짜기는, 불행한 역사의 소용돌이가 일어났던 장소였다. 

그리고 그 소년과 가족들에게는 비극의 원천인 곳이었다. 바로 그곳에서 빨치산에게 납치되었던 할아버지가 부역자라는 낙인을 찍힌 채 사살되었다.  또 다른 비극들이 연쇄적으로 이어졌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유해를 찾으려다 절벽에서 추락했다. 하나뿐인 여동생과 어머니는 강물에 몸을 던졌다. 그 모든 것이 시작된 곳. 그의 삶을 짓누르는 무거운 운명의 굴레가 바로 이곳이었다. 

그는 세상에 감당할 수 없는 울분과 절망을 느낄 때마다 이곳을 찾아왔다. 목 놓아 울부짖거나,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며, 겨우 마음의 평화를 찾곤 했다. 

그는 이름은 전동혁. 
그는 시국사범으로 20년을 구형받고 12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7년을 복역한 뒤 세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가 정의와 자유를 외친 대가는 참혹했다. 험한 세상에 홀로 남은 그에게는 집도, 돈도, 명예도 없었다. 가진 것은 오직 분노로 요동치는 목숨 하나와 절망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신념뿐이었다. 
남은 것은 잔인한 현실과 참담한 미래였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남자였다. 그러나 그도 모르는 사이, 세상은 이미 그의 이름을 조용히 속삭이고 있었다. 

오래전, 그는 가슴에 묻어 둔 한 여자가 있었다. 
안혜경이었다. 
지금 그녀는 아직 자신이 총구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아카시아 향기 속에서 그를 떠올리고 있었다. 

어둠은 서울의 창가에도, 지리산의 계곡에도, 백악관의 깊은 방에도 똑같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어둠 속에서 사랑을 기억했고, 누군가는 그 어둠 속에서 돈을 세고 있었다. 

한편, 백악관. 
제인 칼로스는 대통령의 자금 1억 달러를 세탁한 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과 금융 변동성이 심한 한국 등에 수십 개의 차명 계좌로 분산해 두었다. 

첫 달 결산 보고의 날. 
대통령 프롬펠은 그녀가 건넨 서류를 읽고 또 읽었다. 일일이 숫자의 단위를 확인하며 한참을 검증하던 그는 헛웃음을 흘렸다. 

“불과 한 달 만에 이런 실적이라. 허허.” 
겉으로는 담담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칼로스는 짧게 대답했다. 
“파생상품 위주로 투자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프롬펠은 서류를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도 해 봐서 잘 알고 있소. 파생이란 결국 주식이나 채권, 환율, 금, 석유 같은 것들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지. 하지만 보통의 금융상품과는 다르오.” 
그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걸렸다. 
“변동성과 리스크가 극단까지 증폭되는 괴물 같은 상품이지 않소.” 
“그렇습니다.” 
“순식간에 바닥과 천장을 오가는 것. 아니, 천국과 지옥의 문이 한순간에 열리는 것. 그것이 바로 파생이지.”
프롬펠은 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워런 버핏도 말하지 않았소. 파생상품은 대량살상무기라고.” 
그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하지만 내가 파생을 잡으면, 그것은 곧바로 핵무기가 되는 거요. 그렇지 않소?” 

그는 자신의 투자 경험과 금융 지식을 장황하게 과시하며 그녀의 기를 꺾으려 했다. 그러나 칼로스는 이미 그의 속셈을 읽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맞습니다. 저는 그저 손가락만 까딱했을 뿐입니다.”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큰 성과였다. 생색을 낼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가 겸손한 자세를 보이자, 프롬펠은 오히려 속내를 드러내며 그녀를 거듭 칭찬했다. 
“그래도 이건 말이 안 되는군. 한 달 만에 500% 수익이라니. 칼로스, 당신은 정말 금융의 마술사야. 와하하하!” 
그는 기대 이상이라는 듯 독수리 같은 눈을 번뜩이며 엄지를 높이 치켜세웠다. 

프롬펠이 보는 칼로스는 치밀하고 정확했다. 
과장도 없고, 조급함도 없었다. 묵묵히 완벽을 추구하는 여자였다. 무엇보다 성공 보수가 고작 1%라는 점에서, 그는 그녀와 평생 계약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칼로스에게 이 수익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프롬펠이 미리 알려 준 정책과 발표 내용을 토대로 주식과 파생상품을 선취매했을 뿐이었다. 

정보의 창조. 발표 지연. 
선취매. 이익 극대화. 
그리고 매도. 
과정은 지극히 단순했다. 그녀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수법이었다. 손실은 존재하지 않았고, 이익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들에게 돈을 버는 일은 너무나 쉬웠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 돈을 감쪽같이 숨기는 것. 그것이 그녀에게 주어진 또 다른 과제였다. 

칼로스는 이미 BR사 수석 펀드 매니저로서 수천조 원을 움직여 본 여자였다. 별도의 차명 계좌 수십 개를 이용해 거액의 수익을 따로 챙기는 방법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그녀에게 성공 보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돈보다 정보였다. 그 정보를 가장 먼저 취득하는 권리였다. 그래야 큰돈이 들어왔다. 

그들은 백악관 직원들이 일찍 퇴근하는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밤에 정기적으로 만났다. 
백악관의 불빛이 하나둘 꺼질 때, 대통령과 그녀는 서로의 거래서를 교환했다. 월별 수익에 대한 복잡한 결산 보고를 하고, 전화로는 말할 수 없는 기밀 정보를 주고받으며 투자 전략을 논의했다. 

그날만큼은 간혹 직원들이 늦게까지 남아 있으면 대통령인 프롬펠이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내보냈다. 그날 밤도 마찬가지였다. 프롬펠은 만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칼로스, 우리가 만난 것은 큰 축복이오. 난 그대를 가족이라 생각하오.” 
그는 그녀의 응답을 기다렸다. 칼로스는 속으로 짧게 한숨을 삼켰다. 
‘아니, 이자가 또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나 그녀는 미소를 얹어 화답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대답을 확인한 프롬펠은 다시 입을 열었다. 
“칼로스, 난 그대를 소울메이트라고 생각하오.” 
그는 그녀를 쳐다보며 곧바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지금은 정책으로 작은 전투를 벌이고, 때로는 중동에서 실제 전쟁까지 치르고 있지 않소. 그런데 진짜 큰 전쟁… 남북한의 전쟁, 그리고 중국의 대만 침공. 그때 금융시장은 어떻게 움직일 것 같소?” 

그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칼로스는 재빨리 그의 표정을 읽었다. 그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에는 긴장과 흥분이 동시에 감돌고 있었다. 
‘뭐야. 또 시작이군, 이건 농담이 아니잖아.’ 
그녀는 미소를 거두어야 했다.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주식은 폭락할 겁니다. 하지만 하방의 파생상품은 수천 배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결제일이 임박했다면, 수만 배 또는 그 이상도 가능하겠지요.” 
말을 마친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의 표정을 살폈다. 

프롬펠은 곧바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야. 하하하.” 
그러나 그의 웃음은 가면이었다. 이글거리는 그의 독수리눈이 진짜 속내를 말해 주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자는 할 수만 있다면 무슨 짓도 할 인간이야.’ 

그때 프롬펠은 눈썹을 치켜 올리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번엔 아주 중요한 이야기요.” 
그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대는 내가 러시아 대통령 페트로프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는 잘 알잖소.” 
그녀의 시선이 그에게 고정되었다. 그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와 그저… 장난삼아 말이오.” 
그의 목젖이 꿈틀거렸다. 침을 삼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잠깐의 정적. 그 침묵이 오히려 더 위협적이었다. 그는 천천히 목을 내밀어 그녀의 눈동자를 똑바로 붙잡았다. 
“그와 내가… 우리가 서로.”
그는 또 말을 끊었다. 그리고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마침내 내뱉었다. 
“시베리아와 알래스카에 핵미사일을 한두 발씩 교차로 발사하는 거요. 진짜 전쟁이 터진 것처럼. 전 세계가 숨을 멈출 만큼 거대한 공포로 정교하게 포장해서 말이오.”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속삭이듯 물었다. 
“그러면 세상이 어떻게 될 것 같소?” 
낮고 탁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흐흐흐.” 

그녀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이 번뜩였다. 그는 흥분과 긴장이 뒤엉킨 얼굴로 그녀의 대답을 강요하고 있었다. 방 안의 공기마저 숨이 막힐 듯 팽팽히 조여들었다. 

‘이자가 정말 미친 거 아냐?’ 
칼로스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웃어야 했다. 이곳은 백악관이었다. 그리고 눈앞의 남자는 미국 대통령이었다. 
“호호호. 참 재미있는 상상이군요.” 
그녀는 가까스로 웃음을 만들었다. 
“그때는 금융 시장이 발작하겠지요. 하방의 파생상품은, 만약 소위 네 마녀의 날이라 가정한다면… 5만 배. 아니, 그 이상도 가능하겠지요.” 

그의 눈동자가 번쩍이며. 입술이 실룩거렸다.  
“5만 배?” 
그의 입가에 비릿한 웃음이 번졌다. 
“맞아. 그 정도는 되어야지.” 
그녀는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하지만 인류가 종말을 맞는 순간이라면, 사람들에게 화폐나 주식은 휴지처럼 취급되겠지요.” 
“그렇지.” 
그의 미간이 좁혀졌다. 
“세상이 그것을 휴지라고 믿는 순간, 바로 그때가 절호의 기회요.” 

그녀의 입가에도 억지 미소가 걸쳐졌다. 
“그리고 다시 평화로 반전되는 순간, 또 한 번 5만 배가 가능하겠지요. 호호호.” 

프롬펠, 그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렸다. 마치 이미 눈앞에 쌓인 돈을 세고 있는 사람 같았다. 
“그럼 우리는 그 휴지들을 쓸어 담기만 하면 되는 거잖소. 와하하하!”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간단한 일이군. 세상이 버릴 때, 우리는 사들인다. 그리고 세상이 원할 때, 우리가 다시 팔아 치운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역시 파생상품은 진짜 핵무기요. 그렇지 않소? 하하하.” 
그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의 눈빛은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네. 하지만 정책 전쟁만 하시지요. 호호.” 
“그래야겠지.” 

이제 그는 느긋하게 의자에 몸을 기댔다. 
“하지만 말이오, 인간의 상상력은 한번 제멋대로 풀려나가면 하늘 끝까지 날아가 버리는 법이오. 하하하.”
그는 다시 눈을 번쩍였다. 
“하여간 미국 대통령 자리에 딱 맞는 투자는 주식보다 파생상품이오. 주식은 너무 약해. 하하하.”
그리고 의자를 바짝 앞으로 끌어당기며 몸을 낮췄다. 

“칼로스. 만약 그 핵 장난이 진짜 벌어진다면 말이오.” 
그는 손가락 두 개를 들어 올렸다. 
“아까 5만 배가 두 번이라고 말했잖소. 그땐 100달러 지폐 한 장이 도대체 얼마가 되는 거요?” 

그녀는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숫자가 머릿속에서 빠르게 굴러갔다. 
“이론상으로는 100달러가 5만 배면 5백만 달러입니다. 거기서 또 5만 배면…” 

그녀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무려 2천 5백억 달러가 되겠네요.” 
그녀조차 너무 놀라 웃음이 흘러나왔다. 

“와우. 이건 진짜 대박이네요. 호호호.” 
그녀는 크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만약 두 분이 정말 핵 장난을 하시거나, 또 누군가 미래를 내다본다면, 그리고 파생상품의 결제 당일에 거래 유동성만 따라준다면… 고작 100달러짜리 지폐 한 장이 천지가 개벽하는 엄청난 돈이 되는군요. 저도 도무지 실감이 가지 않네요.” 

그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그의 목소리가 단단하게 울렸다. 
“내가 그 미래를 내다보고 있소.” 
그녀의 웃음이 멈췄다. 
그는 자신의 손가락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뉴욕이나 모스크바에 핵 한 발씩…” 

그의 눈이 번뜩였다. 
“그건 단 한 번에 무려 10만 배야. 와하하하! 이건 신도 할 수 없는 거요. 그런데 난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잖소?” 
그는 자신에게 도취된 얼굴로 웃었다. 
“그러니 내가 신이야. 와하하하!” 

이제 그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칼로스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완전히 미친 자가 대통령 자리에 앉았어.’ 

이미 그녀의 눈빛은 공포와 혐오로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프롬펠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정말로, 지금 금융 시장에서 그 파생이라는 핵만 장착하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이오. 농담이지만, 정말 놀랍고 재미있지 않소? 하하하.” 
그는 웃으며 농담처럼 던졌지만, 이마에는 핏발이 붉게 올라와 있었다. 

그의 독수리눈에서 또다시 광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거 참, 큰일이야. 지구를 떠날 수도 없고.’ 
하지만 그녀는 얼른 표정을 바꾸었다. 
“정말 안목이 대단하세요. 이게 소설이 아니라 실제 금융 시장의 냉혹한 구조라는 점, 이런 엄청난 일이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다니… 저 역시 참으로 놀랍군요.” 

그는 자신의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칼로스, 나는 이 손가락 하나로 세상을 움직이고 있소.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것을 나는 알고 있지. 그러니 내가 신이란 말이오. 하하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놀람도, 반박도 없었다. 

그 침묵이 오히려 그를 더 흥분시켰다. 
“보이지도 않는 신은 늘 말만 흘리지만, 나는 숫자로 증명하오. 나는 보이는 신이오. 살아 움직이는 신 말이오. 와하하하!”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휴. 이런 미친 자와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그때 그의 시선이 그녀를 훑었다.  
그녀는 곧바로 입을 열어야 했다. 망설일 틈은 없었다. 
“정말 천재적인 발상이세요. 미국 대통령이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전 세계 부의 판도가 확 바뀔 수 있다니… 저도 몰랐어요. 정말 놀랐어요. 호호.” 

그녀는 그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현실의 금융 시스템에 숨어 있는 빈틈과 허점을 검증해 주었다. 그러나 그 검증은 뜻밖에도, 그가 내뱉은 광기 어린 망상이 현실이 될 수도 있음을 확인해 주는 셈이 되고 말았다. 

그 순간 프롬펠은 이미 피 냄새를 맡은 포식자였다. 
광기와 살기가 그의 눈빛에서 번뜩였다. 
“칼로스, 인류의 미래가 내 손가락에 달린 거요. 내가 원하면 세계의 모든 돈이 모두 내 손안에 들어오는 거요.”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말을 쏟아냈다. 
“지금까지 그대는 잘하고 있소. 하지만 만약, 만약에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말이오… 그때는 이 최후의 카드를 쓰는 거요. 단 한 번에 판을 뒤집어엎는 거야. 와하하하!” 

그는 숨을 삼키듯 몰아쉬었다. 칼로스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자는 악마야. 이제 난 어쩌나.’ 
하지만 그녀는 얼어붙은 얼굴로 되물었다.  
“네? 농담이라 하셨잖아요.” 
“그렇소. 농담이요. 앞으로 비상수단까지 꺼낼 일은 없지 않겠소. 그러니 농담이지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하하하.” 
그는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결코 농담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가 가볍게 던진 말들은 곧 정책으로 포장되었고, 그 정책은 시장을 뒤흔드는 거대한 신호가 되었다. 

결국 미국 대통령 프롬펠의 입에서 시작된 혼돈은 세계 질서를 뒤흔들고, 자본의 흐름마저 뒤틀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주가는 춤을 췄고, 환율은 요동쳤다. 

그리고 그 혼돈은 곧 거대한 숫자가 되어 그의 통장으로 밀려들었다. 그의 자금은 6개월 만에 60배 이상 불어났다. 계좌 잔고는 60억 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와우! 당신은 정말로 금융의 지존이야! 와하하하!” 
흥분한 프롬펠은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녀는 그저 옅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이제 둘의 관계는 고용이 아니었다. 서로의 욕망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탐욕은 신을 닮았다. 보이진 않지만, 누구나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칼로스가 차분히 말했다. 
“곧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실 것입니다.” 
그녀는 이미 고용 관계를 넘어선 대등한 파트너였다.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겠다는 프롬펠의 꿈을 실현해 주는 완벽한 해결사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 서서히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그녀가 성공 보수를 대폭 올려 달라고 하지 않을까. 혹시라도 그녀가 다른 마음을 먹고 그들의 은밀한 야합을 폭로하지 않을까. 그녀가 입을 열면, 부와 명성, 그리고 세계 최고의 권력까지 가진 축복받은 그의 인생은 즉시 추락하고 말 것이다. 

모두 가졌음에도,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겠다는 또 다른 탐욕은 새로운 불안과 두려움을 몰고 왔다. 언제부터인가 매번 칼로스가 백악관을 찾을 때마다, 프롬펠은 어김없이 직접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가 밝은 미소로 그녀를 맞이했다. 온갖 정성을 다하면서도, 그녀의 표정을 살피고 눈치를 보는 습관까지 생겼다. 

그에겐 자존심이 매우 상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미 칼로스는 거침없던 그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절대자가 되어 있었다. 

그때 칼로스가 차가운 눈빛으로 정색했다. 
“내부 보안을 좀 강화해야 하겠습니다.” 
“무슨 뜻이오?” 
“일부 각료들과 실무자들이 선취매를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매매하기도 전에 시세를 흔드는 일이 벌써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뭐라고? 난 전혀 모르고 있었네.” 
그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이건 재주는 내가 부리고 돈은 왕 서방이 챙기고 있다는 말이잖소. 그건 절대로 안 되지.” 
그녀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누군가 선취매를 하고 나서 자산 운용사에 정보를 팔아넘기는 것이지요. 아시다시피 이제 자금이 60억 달러까지 불어났습니다. 이 정도 규모로 매매를 시작하려면 지금과는 달리, 좀 더 넉넉한 준비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이상했다. 마치 그녀가 직속상관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는 그녀의 다음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그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중요한 정책은 매번 모호하게 흘리셔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준비를 끝내면, 그때 전격적으로 결정하셔야 합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건 아주 중요합니다.” 
그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아주 쉬운 방법이오. 앞으론 내가 차린 밥상에 초대받지 않은 자들이 마구 숟가락을 올리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할 거요. 하하하!” 

그는 자신이 던진 농담이 완벽했다고 생각한 듯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칼로스의 미소에는 묘한 냉소가 스쳤다. 

잠시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엇갈렸다. 그들의 머릿속 계산은 더 빨라지고 있었다. 

칼로스는 핸드백에서 두 대의 휴대전화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프롬펠도 갑자기 생각난 듯 황급히 일어나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두 대의 휴대전화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그들은 통화 감청을 우려해 두 대의 휴대전화를 보름마다 바꿔 가며 사용했다. 전원을 켜면 매일 다른 암호가 액정에 떠오르게 설정되어 있었다. 
‘황소 다섯 마리.’ 
대화 중 그 말이 등장하면 최고 등급의 매수 신호였다. 
‘다섯 마리의 곰.’ 
그 말은 최고 등급의 매도 신호였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았다. 남은 것은 오직 숫자뿐이었다. 그들은 숫자로 세상을 지배한다고 믿었다. 

오늘도 완벽한 불법 재테크. 그들의 탐욕은 은밀하게 거래되고 있었다. 
하지만 시장은 이미 감지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손이 판을 흔들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손끝에서, 더 거대한 공포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세상이라는 거대한 도박판 위에는, 아직 던져지지 않은 황금 주사위 하나가 남아 있었다. 

☞[데칼코마니 신들의 화폐 - 5편]으로 이어집니다.

출처 : 바이러시아(https://www.buyrussia21.com)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