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인사권에 도전한 미하일 페도로프(페도로우) 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의 항명 사건(현지 언론에선 '페도로프의 난' бунт Федорова/편집자)이 한달 여만에 종착점에 다달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달(7월) 17일 국방장관 대행으로 발탁했던 예브게니(예우헨) 흐마라 국가보안국(SBU) 국장 대행을 정식으로 국방장관으로 임명했고, 이를 최고라다(의회)가 19일 인준했다. 페도로프 전 장관의 복귀는 완전히 물건너 간 것이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의회는 19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날 송부한 흐마라 국방장관에 대한 임명 동의안을 312명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국방장관 임명에는 최소 226표가 필요한데,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동시에 송부된 안드레이(안드리) 시비가 외무장관의 임명 동의안이 266명의 찬성으로 가결된 것과 비교하면 의회의 표결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2024년 9월부터 외무장관을 맡아온 시비가 장관은 지난 7월 정부 개편(총리 경질로 정부 총사퇴/편집자) 과정에서 물러난 뒤 장관 대행 자격으로 직무를 수행해 왔다.
그러나 페로도프 전 장관의 복귀를 요구해온 소위 '골판지 시위대'와 당사자는 흐마라 장관 임명에 크게 반발했다. 전날(18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흐마라 국방장관 임명 동의를 의회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 뒤 페도로프 측 골판지 시위대는 19일 의회 앞에서 흐마라 임명 반대 시위를 벌이는 등 의원들을 압박했고, 친(親) 페도로프 성향의 국가반부패국(나부, NABU)도 대통령실과 전 현직 의원이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부패 사건을 수사 중이라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마라 장관이 거의 만장일치로 임명되자, 현지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짚었다. 집권 '인민의 종' 대표인 다비드 아르하미야를 통한 대통령의 의회 장악력이 여전하고, 포로셴코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야당도 페도로프 전 장관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것.
흐마라 장관 후보자는 의회 표결에 앞선 연설에서 △군사력을 동원해 러시아가 전쟁을 끝내고 정당한 평화를 받아들이도록 압박하고 △드론을 비롯한 군사 기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주요 과제로 제시하면서 "우크라이나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무기는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며, 타격은 더욱 정밀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외에서 투쟁해온 페도로프 전 장관 측 세력이 의회 표 대결에서 참패함으로써 소위 '페도로프의 난'은 대통령 세력에 의해 진압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를 대비해 페도로프 전 장관이 마련한 '플랜 B'는 '전쟁 중 선거 실시'였는데, '페도로프 난'의 뒤끝이 어디까지 갈지 궁금하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페로도르 전 장관은 의회 표결 전날인 18일 유튜브를 통해 "민주주의가 러시아의 인질이 돼서는 안 된다.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바로 자유로운 유럽 국가로 남기를 원하기 때문"이라며 "전쟁 상황에서도 우크라이나가 완전한 민주적 절차를 재개할 수 있도록 합법적이고 안전하며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부패 등으로 국가가 구조적인 통치 위기에 직면했다며 선거(대선) 실시를 요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024년 5월로 임기가 만료됐지만, 계엄령을 이유로 선거를 치르지 않고 계속 재임 중인데, 페도로프 전 장관의 선거 실시 주장은 현 대통령 체제에 사실상 반기를 든 것으로 해석된다. 또 선거가 실시될 경우, 젤렌스키 대통령의 승리 가능성은 극히 낮다.
반면, 페도로프 장관은 우크라이나의 드론 전력을 키워 러시아와의 전쟁 양상을 바꾼 핵심 인물로 대중의 인기가 높다. 젊은 개혁파 이미지로도 각인돼 있다. 우크라이나 사회연구센터(Socis)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대선 1차 투표에서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22.3%),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21.4%)에 이어 3위(13.1%)에 오를 것으로 조사됐다. 결선투표를 가정한 양자대결에서는 63.8%의 지지를 얻어 젤렌스키 대통령(36.2%)을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페로로프 전 장관이 쏘아올린 '전시 선거' 정쟁(政爭)은 정부 여당과 야당 간의 다툼이 아니라 집권 여당내 '집안 싸움'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전쟁 초기 서방의 군사 지원을 얻어낸 쿨레바 전 외무장관(재임 2020∼2024년)도 19일 전투가 계속되더라도 대선과 총선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며 '전시 선거론'에 가세했다.
'전시 선거 실시' 주장을 애써 자제해온 야당측으로서는 '불감청고소원'(不敢請 固所願, 감히 청하지는 못하지만 간절히 바라던 바)이다. 로이터 통신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쟁 발발 이후 내부로부터 가장 큰 정치 도전에 직면한 것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시 선거'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는 지난 3월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선거는 러시아와의 분쟁이 끝난 후에만 실시될 것이며, 휴전 기간에도 실시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휴전 기간에도 선거 실시를 거부한 그가 전쟁 중 대선을 치르는데 동의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대통령의 반대에도 선거를 실시하려면, 계엄령 기간에는 대통령 선거를 실시할 수 없는 법률 조항을 개정해야 하는데, 집권 여당이 이를 수용할 리가 없다. 흐마라 장관 인준 투표에서 보듯이, 페도로프 전 장관 진영이 의회 표 대결에서 대통령을 이길 수 없다는 게 현실이다. 다만, 포로셴코 전대통령 등 야당이 '전시 선거' 요구에 힘을 싣는다면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다.
페도로프 전 장관 측이 믿는 구석이 있다면, 역시 서방의 대(對)우크라이나 개혁 지지 세력이다. 서방의 신뢰를 바탕으로 페도로프 진영은 국가반부패기관(국가반부패국·나부· NABU와 반부패특별검찰청·사포·SAPO)의 지원을 받고 있는데, 흐마라 장관의 의회 표결을 앞두고 대통령실 권력형 부패 사건의 수사 내용을 전격 공개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나부와 사포는 19일 "대통령실 고위 당국자가 연루된 범죄 조직을 적발하기 위한 수사를 진행 중"이라며 "전현직 의원이 이 조직을 이끄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이번 수사는 '포레스트 검프'라는 작전명으로 진행됐는데, 지난해 11월 터진 에너지 공기업 뇌물 사건(수사 작전명 '미다스')에 이은 '권력형 부패 사건 2탄'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다스'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젤렌스키 대통령이 과거에 설립한 엔터 업체 ‘크바르탈 95’의 공동 소유주이자 친구인 티무르 민디치가 등장한다.
'미다스' 사건으로 구속된 게르만 갈루셴코 전 에너지부 장관의 보석금을 마련하는(돈세탁) 과정에서 이리나 무드라야(Ирина Мудрая) 대통령실 부실장 등의 불법 행위가 포착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드라야 부실장은 나부의 수사 발표 직후 해임됐으며, 구속전 심사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무드라야 부실장 등은 (기업으로부터 부당하게 받은) 현금 1억 5천만 흐리브냐(약 335만 달러)를 국영 '센스 은행'을 통해 세탁한 뒤 '미다스 사건'의 피고인 중 한 명(갈루셴코 전 에너지부 장관으로 추정)의 보석금으로 납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갈루셴코 전 장관은 지난 2월 폴란드 바르샤바행 야간 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으려다 체포됐다.

무드라야 부실장 외에 전·현직 의원과 센스 은행 최고위 인사들이 이 사건에 직접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돈을 댄(뇌물 공여) 부동산 개발업자이자 현직 의원인 바딤 스톨라르(Вадим Столар)는 해외에 머물고 있다. 무드라야 부실장과 스톨라르 의원 등 핵심 피의자들은 우크라이나 형법 제209조 3항(범죄로 취득한 재산의 합법화)에 따라 조사를 받고 있다.
나부 수사관들에 따르면, 피의자들은 국영 센스 은행을 사실상 장악하고, 최고 경영진을 포섭했으며, 자신들이 지배하는 회사들의 계좌를 이용해 갈루셴코 전 장관의 보석금을 납부했다. 공개된 녹음 파일에서는 수사관들이 대통령실 부실장(무드라야)으로 지목한 여성이 신원 미상의 남성과 러시아어로 은행(센스 은행) 활용법과 보석금 납부에 관해 논의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녀는 이 대화에서 의회의 '다비드'(다비드 아라하미아 '인민의 종' 대표로 추정)와 티무르라는 '이스라엘 난민'(이스라엘로 도피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사업 파트너 '티무르 민디치')를 직접 언급했다.
또 녹음에는 대통령실의 고위 관리가 반복적으로 언급되는데, 이 인물이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무드라야의 부실장 지위로 볼 때, 부다노프 대통령 실장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으로 추정된다. 예르마크 전 실장은 이미 해임된 뒤다.
나부에 따르면, 전직 의원은 '센스 은행' 이사장과 만난 뒤 대통령실(무드라야 부실장)로 협의 내용을 전달했고, 이후 '게르만'(게르만 갈루셴코 전 에너지부 장관)의 보석금을 만들기 위해 1억 5천만 흐리브냐에 달하는 현금의 자금 세탁이 시작됐다. 피의자들은 네 번에 걸쳐 총 1억 5천만 흐리브냐를 세탁한 뒤, 6월 29일 갈루셴코 전 장관의 보석금으로 입금했다. 시기적으로도 갈루셴코 전 장관의 보석 석방과 일치한다.
또 다른 녹음 파일은, 해당 자금이 금융 감시 시스템을 우회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데, 일시적으로 감시 시스템이 '비활성화'되었다는 표현도 나온다. 검은 돈을 감시하는 금융 시스템 내부에서도 협력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무드라야 부실장은 또 "알렉산드르 클리멘코 사포(SAPO) 청장을 제거해야 한다"며 "그가 연임돼 7년을 더 한다면 '우리 모두 망할 것'"이라고도 했다.
'페도로프의 난'과 권력형 부패가 함께 얽혀 돌아가는 우크라이나 현 정국에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가할 수 있는 세력은 군사및 재정 지원에 앞장서는 유럽 국가들이다. 유럽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국가반부패기관(나부와 사포)을 직접 통제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했는데, '전시 선거 실시'라는 이슈에도 개입할지 두고봐야 한다. 페도로프 전 장관 측과 국가반부패기관들은 우크라이나 부패 척결을 위해 유럽 국가들의 적극 개입을, 젤렌스키 대통령은 개입 자제를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 누구의 설득이 먹히느냐에 따라 판도가 바뀔 게 분명하다. 전체적으로는 국내 정세와 최전선의 전황, 권력형 비리의 추가 적발 여부 등에 '전시 선거' 여부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