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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괴물이다"(21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러시아군의 크리비 리흐 쇼핑몰 타격 이후 보복을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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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22일 푸틴 대통령, 파벨 자루빈 기자의 러시아-1 TV 프로그램 '모스크바. 크렘린. 푸틴'에서)
21일 젤렌스키 대통령의 고향인 우크라이나 크리비 리흐 쇼핑몰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수십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자, 러-우크라 양국 정상 간의 설전이 치열하다. 가뜩이나 한치 양보없는 공방전으로 인적·물적 피해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미사일 공격 한 번으로 수십명이 사망하자 우크라이나에서는 큰 충격을 받은 모양새다. 4년 6개월에 걸친 긴 전쟁에서 거의 처음으로 '전쟁과 평화'라는 묵직한 화제가 공개적으로 던져진 이유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집권 '인민의 종'의 핵심 의원인 다닐로 게트만체프는 크리비 리흐 공습 이튿날(22일) "우크라이나에서 '평화당'과 '전쟁당' 간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과 젤렌스키 대통령을 전자(평화당)에, '보호를 받는 선동가들'(미하일 페도로프 전 국방장관을 지지하는 세력)을 전쟁당으로 분류했다.
그의 이날 발언은 페도로프 전 장관의 난(인사 항명 사건)과 불거진 권력형 부패 스캔들 등 혼탁한 우크라이나 정치권 내 흐름을 감안해 해석해야 할 사안이지만, '전시 중 선거 실시'(페도로프 전 국방장관) 요구와 함께 젤렌스키 대통령 체제를 흔드는 한 흐름으로 받아들일만 하다.
실제로 우크라이나에 '전쟁파'와 '평화파' 간의 대립이 있을까? 스트라나.ua는 "실제로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고 짚었다.
일부 서방 외신에 의하면 러시아에서도 전쟁을 계속하자는 '강경파'와 이제 그만 하자는 '온건파'가 대립하는데, 초강경파나 온건파의 득세는 푸틴 대통령 체제를 위협한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게트만체프 의원이 던진 화두는 "전쟁을 조속히 종식시키고 국민의 고통과 경제적 파탄을 끝내기 위해 (미-러간 합의 사안인 '앵커리지 정신'에 따라) 우크라이나군이 돈바스 지역에서 철수하는 등 러시아에 양보를 해야 하는가?"로 귀결된다. 우크라이나에 위성통신망 '스타링크'를 제공하는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 CEO가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우크라이나의 양보가 필요하다"는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 내용(7월 24일 공개)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현 지도부의 답변은 "아니오"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공식 입장은 "현 전선에서의 휴전 자체가 이미 양보한 것이고, 러시아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 싸울 것"이라는데 꽂혀 있다.
되레 자신감도 내비친다.
"유럽 동맹국들은 우크라이나가 필요한 만큼 재정및 군사 지원을 계속할 것이고, 러시아의 공습으로 경제가 붕괴되더라도 서방의 지원으로 전쟁을 계속할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러시아 체제는 혼란에 빠져 붕괴하고 궁극적으로 우리는 원하는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최전선에서의 휴전마저 달갑지 않게 여긴다고 한다. 현상태에서의 전쟁 종식은 사실상 러시아의 승리(우크라이나 영토의 거의 20% 장악및 통제)로 인식되고, 본인의 정치 생명이 전후에 바로 끝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러시아측에 휴전을 계속 제안하는 이유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또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를 원하는 푸틴 대통령이 현상태에서의 휴전을 거부할 것으로 보고 던지는 선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 중단이 불가피하다는 우크라이나 평화당의 논리는 간단하다.
"전쟁은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으며, 러시아의 임박한 붕괴와 서방의 끊임없는 지원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평화 조건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악화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천 명의 우크라이나인이 더 사망하고, 수십 개의 마을과 도시가 파괴되며, 올 겨울에도 전기와 난방 없이 지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양보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이같은 주장을 펴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반역자'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평화계획이 발표된 뒤 일부 서방 언론에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일부 측근도 평화 계획을 지지했다고 보도가 나왔다. 일각에서는 키릴 부다노프 대통령 실장과 다비드 아라하미아 집권 '인민의 종' 대표도 포함됐다는 소문도 돌았다. 게트만체프 의원은 아라하미아 '인민의 종' 대표와 가까운 사이다.
안타까운 것은 '전쟁과 평화'에 대한 고위층의 판단이 국내외 상황 혹은 전황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인이 난방과 전기 없이 고통받았던 지난 겨울에는 러시아에 양보를 지지하는 (평화당)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에 대한 장거리 공습 작전을 시작하고 젤렌스키대통령과 시르스키 전 총사령관이 "전선에서 주도권을 잡았다"고 선언한 지난 봄 이후로는 평화당 목소리가 훨씬 줄어들었다.
러시아군이 흑해 해상을 봉쇄하고 사회 기반 시설과 군수 공장, 물류망및 창고 등을 파괴하는데 맞설 방공 미사일 부족으로 인한 혹독한 겨울철이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지금, 우크라이나 사회 저변에서는 양보의 필요성이 다시금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의 입장은 확고하다. 러시아의 전략적 패배를 원하는 유럽 지원세력도 같은 입장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늘어나자 "러시아는 괴물"이라고 비난하며 보복을 약속했다. 또 23일에는 전쟁 종식 시한을 1년 더 늦췄다. 오는 12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부터 미국의 대선 캠페인이 시작되는 내년(2027년) 여름까지를 전쟁 종식의 기회라고 말했다.
가능한 협상안으로 러시아가 요구하는 돈바스 지역에서 양쪽 군대가 동시에 철군하고, 그 자리에 제 3자가 통제하는 '경제 특별 지역'을 설치하자는 안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이전과 크게 달라진 협상안은 아니다.

푸틴 대통령은 22일 파벨 자루빈 기자의 프로그램(모스크바 크렘린 푸틴)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평화적 해결을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했다"면서 그러나 "제안들이 이례적이고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어서 거부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측의 동시 돈바스 철군 제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튀르키예(터키)와 우크라이나가 잇달아 제안한 흑해의 민간인 목표물에 대한 공격 중단 제안일 수도 있다.(로이터 통신 13일 보도)
러시아는 오히려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꿨다. 푸틴 대통령은 자루빈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공격이 더욱 파괴적이며 농산물 수출 봉쇄 등 키예프(키이우)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정유시설과 인터넷 쇼핑몰 와일드베리스의 물류 창고를 파괴하는 등 '재앙적인 방향'으로 나간 공격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는 전쟁을 일으켰다는 원죄를 안고 있지만, 늘어나는 민간인 희생에 대한 책임 소재는 분분하다. 21일 우크라이나 크리비 리흐 선 갤러리 쇼핑몰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습이 '전쟁과 평화' 화두의 계기가 된 까닭이다. 이날 러시아군의 두 차례 드론 공격으로 쇼핑몰 전체 면적의 3분의 1이 불탔고, 최소 15명이 사망하고 130명 넘게 다쳤는데,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들은 괴물"이라고 선언했다. 러시아가 민간인 희생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으로 들린다.
공교롭게도 그의 발언에 맞춰 이날 영국 등 서방 외신에는 우크라이나가 모스크바 공항을 겨냥한 AI 드론떼 작전을 계획했다가 젤렌스키 대통령의 결단으로 중단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민간인 피해를 우려했다는데, 러시아군의 크리비 리흐 쇼핑몰 공격과 극단적으로 비교된다. 'M&Ms'라는 코드명이 붙은 이 작전은 매일 최대 1천 대의 AI 드론을 모스크바 공항에 보낸다는 구상으로, 여름 휴가철에 러시아 수도를 오가는 민항기들의 운항을 마비시킨다는 목표로 기획됐다고 한다.
우크라이나는 그동안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기는 했지만, 군사적으로 중요한 목표물만 표적으로 삼았을 뿐, 민간시설을 타격하는 일이 없도록 신중을 기해왔다고 주장한다. 인터넷 쇼핑몰 와일드베리스 물류 창고 공격은 러시아 군수 물자를 이송하는 공급망이기 때문에 파괴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식이라면, 민간인 희생자를 내는 러시아의 폭격 명분도 따져봐야 한다. 푸틴 대통령은 2022년 2월 특수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특수한 관계를 갖고 있는 만큼, 민간인 시설과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할 것"을 주문했다. 일각에서는 국군통수권자의 이같은 명령으로 러시아군이 지상군 투입 전, 우크라이나 주요 기반 시설을 완전히 파괴하기보다는 성급하게 국경을 넘었다가 한달 여만에 패퇴하는 전술적 패배를 당했다는 분석도 있다.
학습효과의 결과이겠지만, 우크라이나는 이후 성과 홍보를 겨냥해 상징적인 깜짝 군사 작전을 벌이곤 했다. 크림대교 폭파, 쿠르스크주 기습 작전, 수출항만및 정유시설 파괴, 인터넷 쇼핑몰 물류 창고를 겨냥한 드론 작전 등이다. 그 과정에서 민간 시설및 민간인 피해가 적지 않았다.
이때마다 러시아도 '이에는 이, 귀에는 귀' 원칙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칭 혹은 비대칭 보복 작전을 폈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가 판도라 상자를 열었다"고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차별 공습및 파괴를 선언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민간인 희생은 '우크라이나의 선제 공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나온 것이라고 주장할 만하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유엔 우크라이나 인권감시단은 전쟁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최소 437명)와 부상자 수(2천610명)는 지난달(7월)에 2022년 3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13일 보고했다. 전달(6월)보다 30%, 작년 같은 달보다 70% 늘어난 것. 사망자 수만 보면 2022년 5월 이후 가장 많다고 했다.
전쟁 발발 이후 총 1만6,874명의 우크라이나 민간인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7개월 동안(2026년 1월~7월) 민간인 1,839명이 사망하고 1만638명이 부상했다. 전년(2025년) 같은 기간(사망자 1,434명, 부상자 7,216명)에 비해 44% 늘어났다.
러시아의 민간인 사망자 수도 늘었다. 러시아 당국에 따르면 7월 한 달 동안 민간인 79명이 사망하고 601명이 부상했다. 사망자 수는 전쟁 발발 이후 최고치다. 올해 7개월 동안 327명이 사망했는데,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45명이 증가했다.
러시아 국영 타스 통신에 따르면 로즈메리 디카를로 유엔 사무차장은 2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올해 7개월 동안 러시아의 민간인 사망자(329명) 및 부상자(2,197명) 수는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19%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그는 "민간인과 민간 기반 시설에 대한 공격은 장소에 상관없이 금지되어 있으며,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앞서 안토니오 구테레스 유엔 사무총장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서로의 민간인 목표물을 공격한 것을 규탄하고 긴장 완화를 촉구했다.
전쟁 중 민간인 희생을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 그러나 최소화할 수는 있다. 민간인 희생을 개전의 원죄(러시아)와 따로 다룬다면, 러시아의 책임을 묻는 우크라이나 측의 주장은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