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Sep 2026

키예프 도심서 우크라 무력 기관 간에 총격전, 대체 무슨 일이?

러시아에 대한 '사보타주'(비밀 폭파 음모)와 요인 암살 작전 등을 펴는 특수부대를 지닌 우크라이나 국가보안국(SBU)와 국방부 산하 군정보총국(GUR) 간의 갈등이 도심 총격전으로 이어져 우크라이나 안팎에 충격을 안겨줬다. 전시에 후방에서 터진 이번 총격전은 권력형 비리와 내각 개편(페도로프 전 국방장관의 해임에 따른 후폭풍) 등으로 정치적 곤경에 빠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리더십을 흔드는 또 다른 악재가 될 전망이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과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 KGB가 분리되면서 해외정보국(SVR)과 함께 탄생한 SBU는 우크라이나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중추 기관이다. 산하에 'A'특수부대(알파부대)를 두고 테러 등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각종 요인에 대처하는 게 가장 중요한 임무다.

GUR은 옛소련 시절부터 전통적인 군사정보를 다루는 정보기관으로, 우크라이나에서는 해외정보국(러시아어로는 Службa внешней разведки 영어 약자로는 SVR, 러시아 SVR과 같다), 국경경비대 정보국(разведорган пограничной службы, RPS)과 함께 3대 정보기관으로 꼽힌다. 단순한 군 정보기관에 불과한 GUR가 '티무르'라는 특수 부대를 보유하게 된 것은, 친(親)서방의 '유로마이단'(2014년 친러시아 정부를 전복시킨 반정부 시위/편집자) 사건 후 미 중앙정보국(CIA) 등이 우크라이나 정보기관 쇄신 과정에서 친(親)러시아 성향의 인사들이 남아 있는 SBU를 견제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보도가 2024년 2월 미국에서 나왔다. 

GUR은 특히 2022년 2월 전쟁 발발 이후 키릴 부다노프 전 국장(현 대통령 실장)이 러시아를 겨냥한 '사보타주'에 적극 개입하면서 조직의 몸집을 현재 수준으로 키웠다. 동시에 부다노프 실장 자신도 정치적 영향력이나 대(對)국민 지지도에서 세 손가락(젤렌스키 대통령과 잘루즈니 전 군총사령관·현 주영국 대사, 최근에는 페도로프 전국방장관이 급부상했다/편집자) 안에 들 정도다. 

 

도심에서 야간에 대치중인 GUR과 SBU 특수부대원들/영상 캡처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3일 "GUR과 SBU 요원들 간의 총격전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며 발생 원인은 개인적 요인과 제도적 요인으로 나눌 수 있다고 짚었다. 

개인적 요인은 부다노프 실장(전 GUR 수장)과 알렉산드르 포클라드 SBU 국장 대행 간의 갈등이다.
시작은 이렇다. 

전쟁 발발 직후 벨라루시에서 진행된 러시아와의 첫(1차) 평화 협상에 참석했던 데니스 키레예프(당시 45세)가 2022년 3월 SBU에 연행된 뒤 주검으로 발견됐다. 

10개월 뒤인 2023년 1월, 미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평화협상에도 참여한) 키레예프가 '모스크바의 스파이'로 몰려 SBU에 의해 제거됐다고 전했다. 부다노프 당시 GUR 국장은 WSJ의 보도를 인정하면서 "키레예프의 특급 정보가 전쟁 초기 키예프(키이우)의 방어에 결정적으로 도움이 되었으며, 젤렌스키 대통령이 그에게 사후 훈장을 수여했다"고 SBU를 겨냥했다. 그는 "러시아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러시아에 고급 정보 루트를 갖고 있는 금융전문가 키레예프와 만나 '우크라이나를 위해 일해 줄 것'을 요청하고, 확답을 받았다"며 "그후 키레예프로부터 많은 고급 정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와의 벨라루스 1차 평화 협상에 참석한 키레예프(맨 왼쪽 동그라미 표시)/사진출처:ok.ru

WSJ은 "2022년 2월 23일 오후, 키레예프가 부다노프 국장에게 '푸틴 대통령이 지금 막 24일 공격 개시 결정을 내렸다'는 최신 정보를 전달했다"며 "주요 공격 지점의 하나로 '고스토멜 비행장'을 찍어줬다"고 전했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우크라이나군 지휘부는 키예프 방어작전 수립및 군대 배치를 위한 귀중한 시간을 얻었고, 격전 중에 고스토멜 공항이 파괴되는 바람에 러시아군이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 부다노프 국장은 "키레예프 (고급 정보)가 없었다면, 키예프가 러시아군에 점령되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키레예프는 2022년 3월 5일 SBU 방첩 책임자 사무실의 전화를 받고 키예프 성소피아 대성당 부근으로 갔다가 SBU의 미니버스로 끌려간 뒤 뒷머리에 총알이 박힌 채 도심의 한 거리에서 발견됐다. GUR는 그가 끌려간 지 1시간 30분만에 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달려갔으나 이미 늦었다고 했다. 부다노프 국장은 대노했다.

미하일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보좌관도 "개전 초기에는 법 집행기관(보안기관, 군정보기관, 검찰, 경찰 등)들 간에 유기적인 협조 체계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불미스런 일이 벌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로부터 4개월여가 지난 2022년 7월 중순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반 바카노프 SBU 국장을 해임했다. SBU 요원들과 검찰청 직원들이 러시아 특수 요원들과 수시로 접촉하며 반역 행위를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지금, 키레예프를 살해한 요원들이 현 포클라드 SBU 국장 대행의 전 부서 요원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부다노프-포클라드 간 해묵은 갈등은 그동안 젤렌스키 대통령과 바실 말류크 SBU 국장의 노력으로 봉합됐지만, 물밑에서는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두 사람의 불화는 포클라드가 SBU 국장 대행으로 임명된 이후, 다시 불거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신에게 충성스러운 포클라드를 정식 SBU 국장으로 임명하기 위해 최고 라다(의회)에 임명 동의를 요청할 계획을 세우자, 부다노프 실장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나섰다는 것.

 

도심 총격전 영상 속에는 누군가의 손에 수갑을 채우고 연행하는 장면이 나온다/영상 캡처 

갈등이 터진 건 SBU가 스테판 카플루노프 '러시아 의용군'(RDC, 러시아의 반정부 인물들로 편성된 우크라이나 부대의 하나/편집자) 부사령관을 체포, 구금하면서부터다. SBU는 GUR 특수부대의 지휘를 받고 있는 RDC의 부사령관 카플루노프가 러시아 FSB의 지령을 받고,  우크라이나 독립기념일(8월 24일)에 키예프를 방문한 러시아 반정부 지도자의 암살을 사주했다며 기념일 전날(8월 23일) 그를 전격 체포했다.

카플루노프 부사령관의 항변은 예상된 것. 그는 두 세력 간의 총격전 와중에 풀려난 뒤 "SBU가 부다노프 대통령 실장과 가까운 GUR '티무르' 특수부대 사령관의 명예를 실추시키기 위해 나를 감금하고 학대했다"고 비난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포클라드 SBU 국장 대행이 부다노프 실장에게 "나를 건드리지 마라"고 직접 경고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부다노프 실장과 '티무르' 부대 사령관, 그리고 카플루노프 부사령관 등은 "SBU가 카플루노프를 납치하고, 비무장 GUR 병사들에게 발포했다"며 반격에 나서는 모양새다. 특히 부다노프 실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누구도 군인을 납치하거나, ​​도시 거리에서 발포하거나, 범죄 명령을 내리고 처벌 없이 실행할 권리가 없다"고 SBU의 행태를 직격했다. 

 

사건 와중에 부상자를 옮기는 듯한 모습/영상 캡처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부다노프 실장이 몸집을 키운 GUR이 이젠 군사적인 측면 뿐 아니라 정치·경제적 분야에서도 SBU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다는 사실을 또 다른 충돌 원인으로 들 수 있다. 두 기관은 기업을 '피싱'(사기성 콜센터)으로부터 보호하고 공직자 및 정치인을 엄호하는 이해관계에서 사사건건 맞부딪힌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겐나디 트루하노프 오데사 시장의 인사문제다. 당시 부다노프 GUR 국장은 트루하노프 시장을 지지했으나, 안드레이 예르마크 당시 대통령 실장과 SBU의 입김에 밀려 그를 지키지 못했다.

두 기관은 또 지난해(2025년) 5월에도 키예프 도심의 한 건물 사용을 놓고 충돌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사진출처:president.gov.ua



젤렌스키 대통령은 누구의 편이었을까?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 총격전의 책임을 물어 SBU의 고위 간부인 올레그 흐라모프 국가기밀보호 및 허가부 부장을 2일 해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앞서 SBU와 GUR 간 총격전 사건을 보고받고 조사를 지시하며 '인사 교체'를 예고했는데, 겉으로는 SBU에 책임을 물은 것으로 보인다. 

2022년 7월 중순에도 젤렌스키 대통령은 SBU 수장을 해임했다. 러시아 측과의 내통 여부를 문제삼았지만 러시아로부터 고급 정보를 빼낸 GUR 협력자 키레예프의 살해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2024년부터 젤렌스키 대통령이 예르마크 실장의 편을 들어 부다노프 GUR 국장을 해임할 것이라는 소문이 정치권에 나돌기 시작했다. 세상 일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법이어서, 무소불위의 예르마크 실장이 에너지 공기업의 권력형 부패에 연루돼 되레 옷을 벗었고, 부다노프 국장이 그 자리를 꿰찼다. 분명히 부다노프 국장의 또다른 승리다.

반전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부다노프의 GUR 장악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의도로 대통령실에 데려왔다는 해석에서 시작된다. 예르마크 전 실장의 측근이자 해외정보국(SVR) 국장이었던 올레그 이바셴코가 부다노프의 분신과도 같은 GUR을 맡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바셴코 국장은 취임후 GUR 내 친(親) 부다노프 인맥 숙청에 착수했다. 그럼에도 GUR 특수부대인 '티무르'는 여전히 부다노프 실장을 추종하고 있는 게 분명했고, SBU가 '티무르' 사령관을 잡기 위해 카플루노프 '러시아 의용군'(RDC) 부사령관을 잡아다가 족쳤다는 설이 퍼지고 있다. 조직간 경쟁에다 개인적인 구원(舊怨)까지 겹쳤다는 분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지 보도를 종합하면 1일 밤 총격전은 SBU가 체포한 카플루노프 부사령관을 데리고 그의 집을 수색하려다 미리 대기 중인 GUR 요원들과 마주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대치 중, 혹은 오랜 대치 끝에 어느 한쪽이 먼저 도발(발포)한 것으로 추정된다. 낮과 밤 영상이 모두 SNS에 올라왔는데, 낮 영상에도 총을 겨눈 상태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번 사건에 대한 공식 발표를 먼저 내놓은 곳은 SBU다. 처음에는 GUR과 합동으로 최근 우크라이나에 도착한 러시아 반정부 인사에 대한 암살을 막았다고 발표했다. 이후 SBU의 설명이 조금 달라졌는데, 암살 수사의 일환으로 카플루노프 부사령관의 자택을 수색하러 갔다고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신원 미상의 군인들이 나타나 SBU '알파' 부대에 저항했고, 알파 부대는 총기를 사용해 조직원(GUR 요원) 3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SNS에 올라온 한 영상을 보면 총기를 소지한 양측 관계자들이 대치하다 몸싸움을 벌이고, 이내 한 차례 총성이 울린다. 어느 쪽이 먼저 총을 발사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키예프 유리 슘스키 거리에서 마주친 GUR과 SBU는 대치 중에 '티무르' 부대 지휘관과 '알파 부대' 지휘관이 현장에 와 카플루노프 부사령관과 대화하고 서로 악수를 나눴다. 타협이 이뤄진 것으로 비춰졌는데, 나중에 합류한 SBU 제5부(해임된 올레그 흐라모프 국가기밀보호 및 허가부 부장/편집자) 소속 요원들이 갑자기 비무장 상태였던 GUR 요원들을 체포하려 했고 저항하자, 여러 발의 총격이 가해졌다고 한다. 

GUR은 이튿날(3일) 총격전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 논평을 내놨다.
우선 GUR 산하에는 수천 명의 숙련 병력으로 구성된 '티무르' 특수부대가 있으며, 이 부대에는 카플루노프 부사령관이 소속된 ‘러시아 의용군(단)·RDC’도 포함돼 있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또 카플루노프 RDC 부사령관이 SBU 요원들에게 백주에 납치돼 정식 기소 없이 억류되었으며, 법적 절차를 진행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진 후, SBU 요원들이 비무장한 GUR 요원들을 억류하고 발포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GUR 한 소식통의 설명은 또 달랐다. GUR은 SBU 소속 특수부대 장교 3명을 구금했는데, 그중 한 명은 2022년 키레예프의 살해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알렉산드르 보바였다는 것. 사실이라면 2022년의 구원이 2026년에 다시 불거진 셈인데, 진실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언젠가 또 밝혀질 것이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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