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Mar 2026

전쟁 가운데 러시아인의 노동관은 어떻게 바뀌었나...'노동의 애국적 의미' 강해졌다

러시아인의 일에 대한 가치관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전쟁 이후 러시아는 생존과 안정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사회, 그리고 전쟁 이후에는 국가를 위한 노동이라는 의미까지 덧붙은 사회라고 봐야한다.

브치옴에 따르면 러시아의 실업률은 2025년 12월 2.2%였고, 2026년 1월에도 같은 수준이었다. 2025년 연평균 월 실임금은 100,360루블(한화 약 179만5천 원)로 처음 10만 루블을 넘어섰고, 12월 평균임금은 139,727(한화 약 250만 원)루블에 달했다. 겉으로만 보면 러시아 노동시장은 꽤 견조해 보인다. 하지만 실업급여는 여전히 작다. 2026년 기준 최소 1,863루블(약 3만3천 원), 최대 첫 3개월 15,886루블(한화 약 28만4천 원) 수준이다. 평균 임금과 비교하면 안전망이 넉넉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러시아에서 일을 잃지 않는 것은 단지 직업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의 기반을 지키는 문제다.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 소비에트 선전포스터. 출처 :얀덱스.루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은, 이제 러시아인이 일을 바라보는 기준이 월급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2025년 브치옴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인이 생각하는 ‘위신 있는 일’의 조건은 높은 임금 92%, 사회적 의미 80%, 고용 보장 78%였다. 또 2025년 ‘가장 좋은 고용주’ 조사에서는 높은 급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응답이 확인됐다. 구직자들은 제때 약속을 지키는 회사, 안정성, 안전한 노동환경, 편한 일정과 괜찮은 분위기를 더 중요하게 보기 시작했다. 자기계발 기회나 회사가 제공하는 성장 서사는 오히려 뒤로 밀렸다. 지금 러시아인이 원하는 것은 화려한 비전보다 제대로 주는 월급, 무너지지 않는 직장, 예측 가능한 삶에 더 가깝다.

전쟁 이후의 변화는 직업선호도에서도 읽힌다. 2024년 브치옴 조사에서 러시아인이 꼽은 가장 위신 있는 직업은 IT 전문가와 의사였지만, 그 바로 뒤에 군인이 올랐고 기능직과 엔지니어의 평가도 함께 상승했다. 2025년 조사에서는 기능직을 유익한 직업으로 본 응답이 89%, 고용이 보장된다고 본 응답이 69%였으며, 특히 건설·금속·석유가스·군수산업 분야에서 기능직 수요가 크다고 인식됐다. 이건 중요한 변화다. 예전 러시아 사회에서 좋은 직업이란 법률가나 사무직, 혹은 ‘화이트칼라’ 이미지와 가까웠다면, 최근 러시아에서는 국가를 실제로 움직이고 버티게 하는 직업, 즉 의료·IT·군·엔지니어·기능직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2025년 평균 실제 노동시간은 하루 7시간 9분으로 오히려 전년보다 2분 짧아졌다. 하지만 초과노동 경험은 넓게 퍼져 있다. 2026년 브치옴 조사에서는 47%가 최근 1년 안에 초과근무를 했다고 했고, 20%는 초과근무에 대해 정당한 수당을 받지 못했거나 덜 받았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86%는 초과근무가 ‘대체로 자발적’이라고 했지만, 동시에 다수는 초과노동 확대가 노동자보다 사용자에게 더 유리하다고 봤다. 이 대목은 러시아인의 노동 태도를 가장 잘 보여준다. 오늘의 러시아 노동은 단순한 근면 미화가 아니라, 돈을 더 벌기 위해, 혹은 사람이 부족해서 감당하는 현실적 초과노동의 성격이 강하다.

전쟁 이후 새로 강해진 것은 ‘노동의 애국적 의미’다. 2026년 브치옴 조사에서 응답자의 71%는 타인을 위한 무보수적 봉사나 헌신의 개념이 자신에게 가깝다고 답했고, 조국에 대한 봉사의 핵심으로는 나라를 지키는 일 33%,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 24%, 애국심 17%를 꼽았다. 또 61%는 자신을 ‘일에 진심인 사람’으로 보았다. 이 수치들은 러시아 사회에서 노동이 더 이상 개인 생계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고, 국가와 사회를 지탱하는 행위로 재해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지금의 러시아인은 ‘일을 좋아해서 일한다’기보다, 일해야 살 수 있고, 동시에 일은 국가를 떠받치는 행위라는 인식 속에서 일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최승현 기자 buyrussia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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