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2일은 러시아에서 ‘우주비행사의 날’이다. 1961년 이날, 스물일곱 살 유리 가가린은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비행 시간은 108분. 숫자로는 짧다. 하지만 그 108분이 끝난 뒤, 가가린의 인생은 오히려 더 길고 복잡한 이야기로 바뀌었다. 그는 우주에서 돌아온 순간부터 더 이상 한 명의 조종사가 아니었다. 세계가 알아보는 얼굴이 됐고, 소련이 가장 아끼는 상징이 됐다.
가가린의 귀환 뒤 첫 장면부터가 이미 영화 같다. 그는 우주선과 함께 내려온 게 아니라하강 도중 캡슐에서 사출돼 낙하산으로 타고 내려왔다.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는 금속 캡슐 속에서 문을 열고 걸어나온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사람이었다. 소련은 한동안 이 착륙 방식을 숨겼지만 차후 인정했다. ‘최초로 우주에 간 인간’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건 귀환 뒤다. 가가린은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국가 영웅이자 상징’이 됐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그의 비행 직후 모스크바에서는 대대적인 환영 행사가 열렸고 그는 레닌 훈장과 소련영웅 칭호를 받았다. 거리와 광장, 도시 이름이 그를 기념했다. 인간 유리 가가린은 그날부터 체제의 얼굴, 냉전 시대의 미소가 됐다. 그리고 곧바로 세계 순방이 시작됐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가가린은 1961년 4월 말부터 이른바 ‘평화의 세계 순방’에 나섰고, 3년 동안 약 30개국을 방문했다. 거명해보자면 체코슬로바키아, 불가리아, 핀란드, 영국, 쿠바, 인도, 이집트, 일본, 프랑스, 멕시코 등이다. 말 그대로 한 번은 108분 만에 지구를 돌았고, 그 뒤에는 몇 년에 걸쳐 실제 지구를 돌게 된 셈이다. 소련은 그를 우주비행사이자 외교관, 냉전의 스타로 사용했다.

이 순방에서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가 영국 방문이다. 영국 왕실 공식 사이트는 1961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 공이 버킹엄궁에서 가가린을 맞았다고 적고 있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소련의 젊은 우주비행사가 버킹엄궁 초대를 받아 왕실과 만난 것이다. 정치적으로 보면 묘한 장면이다. 공산주의 국가의 영웅이 영국 왕실 식탁에 앉았다. 상징만 놓고 보면, 그 자체가 이미 한 편의 기사였다.
영국 북부 맨체스터에서의 장면은 더 생생하다. 영국영화협회가 보존한 당시 기록 영상 설명에는, 비 오는 날에도 수많은 군중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남자’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고 적혀 있다. 영상 속 가가린은 군중 속에서 웃고, 손을 흔들고, 사람들이 기대한 그대로의 영웅처럼 움직인다. 흥미로운 건 그가 그 자리에서 '으로의 우주 탐사에 대한 희망도 말했다는 점이다. 그는 이미 세계적 우상이었지만, 머릿속은 다시 우주로 향해 있었다.

문제는 바로 거기서 시작됐다. 그는 우주에 갔다 왔지만, 정작 다시 우주에 가기 어려운 사람이 됐다. NASA는 소련 당국이 몇 년 동안 그를 두 번째 우주비행에 배치하는 데 매우 조심스러웠다고 적고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귀했기 때문이다. 영웅이 한 번 더 날아오르다 사고라도 나면, 소련이 잃는 건 조종사 한 명이 아니었다. 그래서 가가린은 우주에 다녀온 뒤 후배 우주비행사들을 훈련시키는 책임자가 됐고, 스타에서 사실상 또다른 우주인 영웅을 양성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는 명예는 얻었지만 자유는 줄었다.
그렇다고 가가린이 순순히 전시장 속 인물이 된 것은 아니다. 그는 계속 돌아가고 싶어 했다. NASA에 따르면 그는 주콥스키 공군공학아카데미에서 우주비행체 설계 관련 논문을 마치고, 다시 우주 임무에 복귀하려 애썼다. 결국 그는 소유스 1호의 주조종사 블라디미르 코마로프의 백업으로까지 올라갔다. 여기서 드러나는 가가린의 진짜 얼굴은 의외로 소박하다. 그는 ‘최초’라는 칭호에 안주한 인물이 아니었다. 다시 비행복을 입고 싶어 한 현역 파일럿이었다.
하지만 소유스 1호는 비극으로 끝났다. 1967년 4월, 코마로프는 귀환 도중 추락해 사망했다. NASA는 이 사고 뒤 소련 지도부가 가가린을 더 위험한 우주비행에 보내지 않기로 사실상 결심했다고 적고 있다. 그 판단은 냉정했다. 가가린은 너무 상징적이었다. 소련은 세계의 영웅이 된 그를 잃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 순간부터 가가린은 우주 시대의 선구자이면서도, 동시에 다시는 우주로 돌아갈 수 없는 우주를 잃어버린 미망인이 된다.

이후 그의 삶은 아이러니하다. 그는 우주로는 못 갔지만, 비행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NASA에 따르면 그는 다시 항공기 비행 자격을 되찾기 위해 애썼고, 결국 교관 동승 조건 아래 비행이 허용됐다. 그런데 그의 마지막은 우주가 아니라 지구 내부였다. 1968년 3월 27일, 그는 교관 블라디미르 세료긴과 함께 MiG-15UTI 훈련기에 올랐다가 추락사했다. 그의 나이 서른넷이었다. 그는 다시 우주에 오르지 못했고, 대신 크렘린 벽에 안치되면서 소련의 신화가 됐다. 108분의 우주 여행 이후 1967년 4월까지 7년 간 우주를 그리워한 그의 삶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최승현 에디터 buyrussia2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