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Sep 2026

러시아 영주권 취득자, 한국 은행 통장도 세무당국 신고 대상일까?

러시아에서 장기간 생활하는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한국에 하나 이상의 은행계좌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내거나, 귀국했을 때 사용하는 생활비 계좌일 수도 있고, 급여나 임대료가 들어오는 계좌일 수도 있다. 증권계좌나 예·적금 계좌를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도 흔하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당연히 ‘한국 통장’이다. 그러나 러시아 영주권인 ВНЖ를 취득하는 순간 러시아 법률이 이 통장을 바라보는 방식은 달라진다.

러시아 외환법에서 중요한 것은 통장이 어느 나라 은행에 개설돼 있는지보다 그 계좌의 소유자가 러시아 법률상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는가다. 러시아 연방법 제173-ФЗ 「외환규제 및 외환통제에 관한 법률(О валютном регулировании и валютном контроле)」은 러시아 시민뿐 아니라 러시아 영주권을 가지고 러시아에서 상시 거주하는 외국인 역시 외환법상 ‘거주자(резидент)’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국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더라도 러시아 ВНЖ를 취득한 사람이라면 러시아 외환법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서울이나 부산, 대전의 은행에 개설된 계좌는 러시아의 시각에서는 러시아 국경 밖에 존재하는 ‘해외 금융계좌’가 된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 연방세무청은 2026년 8월 해외계좌 신고 의무를 다시 안내했다. 이를 새로운 규제가 도입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이 제도 자체가 올해 새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근거가 되는 연방법 제173-ФЗ는 이미 2003년에 제정됐다. 이번 세무청 안내는 새로운 세금을 만들거나 해외계좌 신고 제도를 새로 도입한 것이 아니라, 기존 외환법에 따른 신고와 보고 의무를 다시 한번 환기한 성격에 가깝다. 다만 20년 넘게 존재했던 법이 최근 다시 주목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러시아 정부가 외환거주자의 해외계좌를 관리하는 기본적인 목적은 러시아 안팎으로 움직이는 외화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있다.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자금이 러시아 국내에 머물러 있는지, 해외로 빠져나갔는지, 다시 러시아로 들어오는지를 파악해야 외환시장과 자본 이동을 관리할 수 있다. 특히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를 둘러싼 금융환경은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 중앙은행의 해외 외화자산을 동결하고 국제 금융제재를 확대하면서 러시아 정부와 중앙은행은 자본의 해외 유출과 외화 거래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 왔다.

해외계좌 신고 제도 자체가 전쟁 이후 생긴 것은 아니지만, 전쟁과 금융제재 이후 러시아 정부가 해외 금융자산과 국제 자금 이동을 훨씬 민감하게 바라보게 된 것은 분명하다.

교민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실제로 무엇을 신고해야 하느냐는 점이다. 러시아 외환법상 해외 금융계좌와 관련한 의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해외계좌의 존재 자체를 신고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계좌에서 일정 기간 동안 돈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보고하는 것이다.

두 절차는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른 의무다. 먼저 해외 은행이나 금융기관에 계좌를 새로 개설했거나 계좌를 폐쇄했을 경우, 또는 계좌번호와 같은 주요 정보가 변경됐을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해당 사실이 발생한 날부터 1개월 이내에 러시아 세무당국에 통보해야 한다.

세무서를 직접 방문하거나 우편을 통해 신고할 수 있고, 러시아 연방세무청의 개인 납세자 계정인 ‘Личный кабинет налогоплательщика’를 이용해 전자적으로 신고하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에서 ВНЖ를 가지고 생활하는 한국인이 한국에 잠시 귀국해 새로운 은행계좌를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그 계좌는 한국에서는 국내계좌이지만 러시아 외환법상으로는 해외계좌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러시아 세무당국에 계좌 개설 사실을 통보해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한국 통장이다. 한국에서 계좌를 만든 뒤 수년이 지나 러시아 ВНЖ를 취득한 경우에는 계좌 개설 시점과 ВНЖ 취득 시점, 러시아 내 실제 체류 상황 등에 따라 신고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영주권을 받기 전에 만든 통장이니 상관없다”고 판단하기보다는 관할 세무서나 러시아 세무 전문가를 통해 자신의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계좌 개설 사실을 신고했다고 모든 의무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일정한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 해외계좌에서 발생한 자금 이동 내역도 별도로 보고해야 한다.

해외계좌의 입금과 출금, 연말 잔액 등 자금 흐름에 관한 보고는 일반적으로 다음 해 6월 1일까지 제출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2026년 한 해 동안 발생한 해외계좌 거래가 보고 대상이라면 2027년 6월 1일까지 관련 보고를 제출하는 식이다.

다만 ВНЖ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모든 해외계좌의 거래내역을 매년 러시아 세무청에 제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외환법에는 몇 가지 중요한 예외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러시아 국외 체류기간이다. 해당 연도에 러시아 밖에서 생활한 기간이 합계 183일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해외계좌와 관련한 일부 보고 의무가 면제될 수 있다. 때문에 ВНЖ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신고와 보고 의무가 자동으로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볼 수는 없다.

실제로 그 사람이 러시아에서 얼마나 생활했는지가 중요하다. 또 하나 교민들에게 중요한 예외가 있다. 러시아와 금융정보를 자동으로 교환하는 국가에 개설된 계좌 가운데 거래 규모가 일정 수준 이하인 경우에는 연간 자금이동 보고 의무가 면제될 수 있다.

그 기준 가운데 하나가 연간 60만 루블이다. 일정한 조건 아래 해외계좌의 연간 입출금 누계액이 60만 루블 이하이거나, 거래가 없었던 계좌의 연말 잔액이 해당 기준 이하인 경우에는 연간 자금이동 보고 의무가 면제될 수 있다. 여기서 한국 교민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대한민국은 러시아 연방세무청이 지정한 금융정보 자동교환 대상국 목록에 포함돼 있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우선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한국 계좌의 경우 60만 루블 기준 등에 따라 연간 자금이동 보고 면제 규정을 적용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금융정보가 국제적인 자동정보교환 체계를 통해 러시아 세무당국의 확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대한민국이 자동정보교환 대상국이라는 사실만으로 모든 한국인의 모든 금융계좌 정보가 러시아 세무당국에 자동으로 전달된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금융기관의 종류와 계좌 유형, 계좌 소유자의 세법상 지위, 국제정보교환 기준 등에 따라 실제 전달되는 정보는 달라질 수 있다. 다만 “한국에 있는 통장이니 러시아에서는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기 어려운 환경이 된 것은 분명하다.

국가 간 금융정보 교환망이 만들어지고 금융기관의 고객정보와 세금정보가 전산화되면서 과거처럼 국경이 금융정보를 차단해 주는 시대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여기서 또 하나 구분해야 할 개념이 있다. 러시아의 ‘외환법상 거주자’와 ‘세법상 거주자’는 같은 개념이 아니다. 러시아 세법에서 개인이 세법상 거주자인지를 판단할 때는 일정 기간 동안 러시아에서 실제로 체류한 날짜가 중요한 기준으로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12개월 동안 183일 이상 러시아에 체류했는지가 주요 기준이 된다.

반면 외환법에서는 ВНЖ를 가지고 상시 거주하는 외국인이 외환거주자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러시아에서 183일 이상 살지 않았기 때문에 러시아 세금 거주자가 아니다. 그러니 해외계좌 신고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단순하게 연결해서는 안 된다. 세금 문제를 판단하는 법과 외환거래를 관리하는 법이 서로 다르고, 각각 사용하는 ‘거주자’라는 용어의 의미도 다르기 때문이다. 신고를 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행정벌금도 부과될 수 있다.

해외계좌 신고를 기한보다 늦게 한 경우 개인에게 1천~1천500루블 수준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으며, 계좌 자체를 신고하지 않은 경우에는 개인 기준 4천~5천루블의 벌금이 적용될 수 있다. 자금이동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거나 늦게 제출하는 경우에도 별도의 행정벌금 규정이 있다. 벌금 액수만 놓고 보면 큰 금액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몇 천 루블의 벌금보다 이후 발생할 수 있는 행정상의 번거로움이 더 중요하다. 해외 송금 규모가 커지거나 부동산 거래가 발생하고, 자금 출처를 설명해야 하거나 세무당국의 추가 확인이 필요한 상황에서 과거의 해외계좌 미신고 기록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ВНЖ를 가지고 있는 한국 교민이라면 한 번쯤 자신의 금융 상황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자신이 현재 유효한 러시아 ВНЖ를 보유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해당 연도에 러시아에서 실제로 며칠을 생활했는지, 한국에는 몇 개의 은행·증권 계좌가 있는지, 해당 계좌를 언제 개설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 지난 1년 동안 한국 계좌에서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오고 나갔는지, 연말 잔액은 어느 정도였는지, 과거 러시아 세무당국에 해당 계좌를 신고한 사실이 있는지도 확인하는 것이 좋다. 러시아에서 10년, 20년을 살아온 교민에게 한국 통장은 특별한 해외자산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내고, 한국 휴대전화 요금을 내고, 귀국했을 때 생활비로 사용하는 평범한 통장일 뿐이다.

그러나 개인의 생활감각과 국가의 법률적 시각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한 사람에게는 오래전부터 사용해 온 한국 통장이지만, 러시아 외환법의 시선에서는 러시아 국경 밖에 존재하는 금융계좌다. ВНЖ를 취득한다는 것은 단순히 러시아에 오래 체류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러시아의 노동법과 세법, 외환법 등 여러 법률관계 안으로 한 단계 더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2003년에 만들어진 오래된 외환법이 2026년에 다시 교민들에게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 자체는 오래됐다. 그러나 돈이 움직이는 방식은 달라졌다. 금융기관은 서로 연결되고 세무당국은 국가 간 정보를 교환한다. 사람은 러시아로 국경을 넘었고, 통장은 한국에 남아 있다. 그러나 금융정보는 더 이상 그 국경에 머물지 않는다.

최승현 에디터 buyrussia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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