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어가 어렵다는 말은 맞을까 틀릴까. 학습자에 따라 다르기는 할 것 같다. 처음에는 문자가 겁을 준다. А, Б, В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그런데 Ж, Ц, Ч, Ш, Щ, Ы, Ь, Ъ가 나오면 외국인의 눈은 잠시 멈춘다. 특히 라틴문자에 익숙한 사람에게 키릴문자는 첫날부터 낯선 얼굴을 하고 있다. 러시아어 알파벳은 33개 문자로 구성되며, 그 안에는 소리를 내는 글자뿐 아니라 앞 자음의 발음을 바꾸는 연음부호 ь, 분리 기능을 하는 경음부호 ъ 같은 문자도 들어 있다.
하지만 러시아어의 진짜 어려움은 알파벳이 아니다. 키릴문자는 며칠이면 읽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읽었다고 끝난 게 아니다. 써 있는 대로 들리지 않는다. о라고 적혀 있어도 강세가 없으면 а에 가깝게 약해진다. хорошо는 글자만 보면 ‘호로쇼’처럼 보이지만 실제 발음은 ‘하라쇼’에 가깝다. молоко도 ‘몰로코’가 아니라 ‘말라코’처럼 흘러간다. 러시아어는 표음문자처럼 보이지만, 실제 말소리에서는 강세가 없는 모음이 줄어든다. 이 지점에서 외국인은 첫 번째 배신을 당한다. 글자는 배웠는데, 귀가 따라오지 않는다.
러시아어 발음의 핵심은 강세다. 영어권 학습자를 대상으로 한 음성학 연구에서도 러시아어 강세는 자유강세이며, 단어의 어느 음절에도 올 수 있고, 같은 단어라도 문법 형태에 따라 위치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된다. 잘못된 강세는 단순히 “외국인 억양”으로 끝나지 않는다.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зАмок은 성이고, замОк은 자물쇠다. мУка는 고통이고, мукА는 밀가루다. плАчу는 “나는 운다”이고, плачУ는 “나는 돈을 낸다”다. 러시아어에서 강세는 장식이 아니다. 단어의 뼈대다.
여기에 러시아어 특유의 소리들이 붙는다. ы는 한국어에도, 영어에도 정확히 대응되는 소리가 없다. быть와 бить는 외국인 귀에는 비슷하게 들리지만, 러시아인에게는 완전히 다른 말이다. мыл과 мил도 다르다. 하나는 “씻었다”이고, 하나는 “귀엽다, 사랑스럽다”는 뜻이다. ш와 щ도 외국인에게는 비슷한 ‘쉬’ 계열 소리처럼 들린다. 하지만 러시아어에서 ш는 단단하고 어두운 소리이고, щ는 더 길고 부드럽게 입천장 쪽으로 올라가는 소리다. 여기에 경음과 연음의 대립까지 들어온다. брат은 형제이고, брать는 “잡다, 취하다”라는 동사다. лук은 양파 또는 활이고, люк은 해치, 맨홀 뚜껑이다. 러시아어는 혀의 위치 하나로 단어를 갈라놓는다.
문법으로 들어가면 러시아어는 더 차가워진다. 러시아어 명사는 격에 따라 형태가 변한다. 주격, 생격, 여격, 대격, 조격, 전치격. 여섯 개다. 그런데 명사만 변하는 것이 아니다. 형용사도 따라 변한다. 대명사도 변한다. 숫자도 영향을 준다. 러시아어 문장은 단어가 자리를 지키는 방식이 아니라, 단어가 몸을 바꾸는 방식으로 의미를 만든다. Грамота.ру의 러시아어 문법 설명도 명사의 격을 형태론적 특징으로 다루며, 격마다 어미 변화가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книга, 책이라는 단어를 보자. “책이 있다”면 книга다. “책이 없다”면 нет книги가 된다. “책에게 다가간다”면 к книге다. “책을 읽는다”면 читаю книгу다. “책에 대해 말한다”면 о книге다. “책으로 공부한다”면 с книгой다. 한국어는 조사로 해결한다. 책이, 책을, 책에, 책으로. 러시아어는 단어 자체가 변한다. 더 귀찮은 것은 형용사까지 따라간다는 점이다. новая книга, новую книгу, новой книги, новой книге. 책 하나를 말하는데 주변 단어들이 줄줄이 옷을 갈아입는다.
외국인이 러시아어에서 자주 무너지는 곳은 대격에서도 나온다. 러시아어는 생물과 무생물을 다르게 취급한다. “나는 책상을 본다”는 Я вижу стол이다. стол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형을 본다”는 Я вижу брата다. брат이 брата로 바뀐다. 살아 있는 대상을 목적어로 놓으면 생격 형태가 끼어든다. 문법이 세계관처럼 작동한다. 러시아어는 사물을 보는 방식과 사람을 보는 방식을 문장 안에서 구별한다.
숫자도 만만하지 않다. один год, два года, пять лет. 하나면 год, 둘·셋·넷이면 года, 다섯부터는 лет. 21은 снова один이므로 21 год, 22는 22 года, 25는 25 лет다. 외국인은 여기서 다시 멈춘다. 숫자를 말했을 뿐인데 명사의 형태를 다시 계산해야 한다. 러시아어는 말하는 사람에게 늘 묻는다. 몇 개인가. 살아 있는가. 남성인가 여성인가 중성인가. 주어인가 목적어인가. 끝난 일인가 진행 중인 일인가. 한 번 말하려면 문법적 검문소를 계속 통과해야 한다.
동사로 가면 러시아어는 더 러시아어다워진다. 시제는 겉으로 보면 단순하다. 과거, 현재, 미래. 영어처럼 현재완료, 과거완료, 미래완료 같은 복잡한 시제 체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어 교사들이 “러시아어도 쉬운 점이 있다”고 말할 때 자주 드는 근거가 이것이다. 관사도 없다. a, the 같은 것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 빈자리를 동사의 상이 차지한다. 러시아어 동사는 완료상과 불완료상으로 나뉜다. Грамота.ру는 동사의 상을 “행위가 시간 안에서 어떻게 진행되거나 분배되는지를 나타내는 형태론적 특징”으로 설명한다. 완료상은 끝난 행위, 한계에 도달한 행위를 나타내고, 불완료상은 과정, 반복, 지속, 사실 자체를 나타낸다.
читать와 прочитать를 보자. 둘 다 “읽다”다. 하지만 Я читал книгу는 “나는 책을 읽고 있었다”거나 “읽은 적이 있다”는 말에 가깝다. Я прочитал книгу는 “나는 그 책을 다 읽었다”다. писать는 쓰는 과정이고, написать는 써서 완성한 것이다. открывать는 열고 있는 행위이거나 반복적으로 여는 행위이고, открыть는 열어버린 것이다. 한국어로는 “읽었다” 하나로 대충 넘어갈 수 있는 곳에서 러시아어는 묻는다. 그래서 끝났나. 아니면 그냥 했나. 결과가 있나. 아니면 과정인가.
외국인이 특히 헷갈리는 문장이 있다. Он пришёл과 Он приходил. 둘 다 “그가 왔다”로 번역될 수 있다. 하지만 같지 않다. Он пришёл은 그가 와서, 지금 여기 있거나 도착이라는 결과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Он приходил은 그가 왔던 적이 있다는 말이다. 대개 지금은 없다는 느낌이 붙는다. 그러니까 러시아어 동사는 단순히 사건을 말하지 않는다. 사건의 끝, 흔적, 방향, 반복 여부까지 같이 말한다.
그리고 악명 높은 운동동사가 등장한다. 영어의 go 하나로 처리할 수 있는 세계가 러시아어에서는 갈라진다. 걸어서 가는가, 차를 타고 가는가, 한 방향으로 가는가, 자주 다니는가, 갔다가 돌아왔는가. идти는 지금 걸어서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ходить는 걸어서 다니는 습관, 반복, 왕복의 느낌이다. ехать는 교통수단을 타고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ездить는 교통수단을 이용해 다니거나 갔다 온 경험을 말한다. Cambridge University Press에 실린 러시아어 운동동사 연구도 러시아어의 motion lexicon, 즉 이동을 표현하는 어휘 체계가 러시아어와 영어 사용자 사이에서 중요한 차이를 만든다는 점을 다룬다.
예문으로 보면 더 선명하다. Я иду в магазин은 “나는 지금 가게에 걸어가고 있다”다. Я хожу в магазин은 “나는 가게에 다닌다” 또는 “가게에 갔다 온다”는 느낌이다. Я еду в Москву는 “나는 지금 모스크바로 차나 기차 등을 타고 가고 있다”다. Я ездил в Москву는 “나는 모스크바에 다녀왔다” 또는 “가본 적이 있다”에 가깝다. Я поеду в Москву는 “나는 모스크바에 갈 것이다”인데, 교통수단을 전제로 한다. 그냥 “가다”가 아니다. 러시아어는 이동을 해부한다.
여기에 접두사가 붙으면 동사는 거의 지도처럼 변한다. идти에 при-가 붙으면 прийти, 도착하다. у-가 붙으면 уйти, 떠나다. в-가 붙으면 войти, 안으로 들어가다. вы-가 붙으면 выйти, 밖으로 나가다. под-가 붙으면 подойти, 가까이 다가가다. от-가 붙으면 отойти, 물러나다. пере-가 붙으면 перейти, 건너가다. до-가 붙으면 дойти, 끝까지 가닿다. за-가 붙으면 зайти, 잠깐 들르거나 안으로 들어가다. об-가 붙으면 обойти, 돌아가거나 피해서 가다. 러시아어 동사는 발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공간을 가른다.
그러니 러시아어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문자와 소리의 거리가 있다. 둘째, 강세가 자유롭고 자주 이동한다. 셋째, 명사·형용사·대명사가 격에 따라 변한다. 넷째, 문법적 성이 있다. стол은 남성, книга는 여성, окно는 중성이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책상이 왜 남성이고, 책이 왜 여성인지 이해할 방법이 없다. 그냥 외워야 한다. 다섯째, 동사의 상이 사건의 완료 여부를 강제로 선택하게 만든다. 여섯째, 운동동사는 방향, 방식, 반복, 왕복, 수단까지 따진다. 러시아어는 대충 말하게 놔두지 않는다.
한국어 화자에게 러시아어는 영어권 학습자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어렵다. 한국어에도 조사가 있으므로 격의 개념 자체는 낯설지 않다. “철수가 영희에게 책을 주었다”에서 이, 에게, 을이 기능을 표시한다. 이 점은 러시아어 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한국어는 명사 자체가 변하지 않는다. 책은 책이다. 책이든 책을이든 책에게든 책으로든, 중심 단어는 그대로다. 러시아어는 книга가 книги, книге, книгу, книгой로 바뀐다. 여기에 новая까지 новую, новой로 같이 변한다. 한국어 화자는 구조는 이해하지만, 변화표 앞에서 지친다.
영어가 상대적으로 쉬워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어가 본질적으로 쉬운 언어라기보다, 현대 세계가 영어에 먼저 노출되도록 만들어져 있다. 노래, 영화, 인터넷, 제품 설명, 운영체제, 학술자료가 영어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미국 국무부 산하 FSI 기준에서도 러시아어는 영어권 학습자에게 상당한 학습 시간이 필요한 “hard language” 범주로 분류된다. 해당 기준에서는 러시아어 같은 언어를 실무 수준으로 익히는 데 약 44주, 1100시간 정도의 수업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러시아어가 절망적인 언어는 아니다. 오히려 일정 지점을 넘기면 구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관사가 없다는 점은 확실한 장점이다. a book인지 the book인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시제도 영어보다 단순하다. 철자와 발음의 관계도 예외가 많긴 하지만 영어처럼 완전히 제멋대로는 아니다. 무엇보다 러시아어는 구조가 무너진 언어가 아니다. 너무 구조적이라 어렵다. 처음에는 그 구조가 감옥처럼 느껴진다. 나중에는 그 구조가 길이 된다.
러시아어는 외국인에게 친절한 언어가 아니다. 처음부터 웃으며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문 앞에 세워두고 묻는다. 강세는 어디인가. 성은 무엇인가. 몇 격인가. 완료인가 불완료인가. 걸어가는가 타고 가는가. 갔다 오는가 그냥 가는가. 이 질문들에 대답하지 못하면 문장은 삐걱거린다. 하지만 바로 그 까다로움 때문에 러시아어는 한 번 몸에 들어오면 깊게 남는다. 러시아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어를 외우는 일이 아니다. 세계를 다르게 나누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러시아어는 어렵다. 맞다. 하지만 그 어려움은 혼란이 아니라 질서에서 온다. 러시아어는 느슨한 언어가 아니다. 모든 단어가 자기 자리에서 신분증을 요구하는 언어다.
최승현 에디터 buyrussia21@gmail.com
참고 자료
Russia Beyond, Почему русский язык так сложен для иностранцев? 2018.
Грамота.ру,
RussianLessons.net, 「Verbs of Motion」.
FSI Language Difficulty Ranking, 「Category IV — Russ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