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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4월) 15일 크렘린 경제 부처 회의에서 이례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푸틴 대통령이 참석한 경제 관료들에게 경제 성장률이 당초 예상치를 밑도는 이유를 설명하라고 질책성 지시를 한 것이다.
두 가지 설명이 가능했다. 서방의 대(對)러 경제제재가 시간이 흐르면서 경제를 압박하는 현실을 인정했거나,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경제 전반을 다시 한번 돌아보라는 메시지였다.

그리고 채 한달도 지나가기 전인 지난 12일 거시 경제 지표를 수정하는 러시아 경제개발부의 발표가 나왔다.
피남.ru 등 러시아 경제전문 매체에 따르면 러시아 경제개발부는 이날 올해(2026년) GDP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1.3%에서 0.4%로 대폭 낮췄다. 당연히 국내외 언론에서 소위 '전시 경제'의 활황으로 4.0% 이상의 고성장을 일궜던 러시아 경제가 드디어 구조적 한계에 직면한 게 아니냐는 진단이 나올 법하다.
푸틴 대통령의 질책성 지시에는 올 1분기 마이너스 성장(-0.3%)이라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분기 기준 경제 위축은 2023년 이후 3년여 만이었다. 이를 근거로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일부 언론에서는 러시아의 '5월 위기설'이 나돌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한달 전(4월 28일) '러시아의 내부 정세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К чему ведут внутренние процессы в России и как они повлияют на войну в Украине)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인터넷 접속 제한과 텔레그램 차단 등 러시아 정부의 통제 정책에 대한 인플루언스들의 불만이 연속적으로 터져나오면서, 누적된 경제적 요인들과 맞물려 러시아의 (5월) 위기설이 대두했다"고 그 과정을 자세히 보도했다.
특히 "올해 초반의 마이너스 경제 성장 등 러시아 경제에 관한 부정적인 전망이 확산되면서,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 최고 지도자는 '1917년 (프롤레타리아 공산 혁명)의 재현 위협'까지 들먹였다"고 스트라나.ua는 전했다. 1917년 제정러시아 시절, 제1차 세계대전의 전비(戰費) 부담과 식량난, 사회적 불평등 등이 겹치며 '2월 혁명'이 터져 기존 질서가 무너졌고, 극심한 혼란 속에서 볼셰비키(공산당) 세력이 '10월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100년 전 역사를 꺼집어낸 것이다. 공산당으로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누적된 사회적 피로감과 경제 위기 등을 계기로 막연하나마 다시 한번 권력 장악을 기대하는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러시아가 곧 붕괴할 것"이라는 우크라이나 당국의 주장과 일부 외신 보도도 한 몫을 한 것이라고 스트라나.ua는 짚었다. 러시아 당국의 일상 제한 조치에 대한 사회적 불만과 전시를 틈 탄 정보기관(보안군)의 독단적인 행동, 전쟁 피로감, 미래에 대한 경제적 불안감 등이 러시아 체제 붕괴의 정황 증거로 제시됐다.
전쟁 발발 4년을 훌쩍 넘긴 푸틴 대통령의 통치 체제가 실제로 그 정도로 허약할까? 아닐 것이다.
'5월 위기설'을 분석한 스트라나.ua도 역설적이지만, 새해들어 위기에 처했던 러시아 경제와 재정이 이란 전쟁과 국제 유가의 급등 등으로 숨통을 틔웠고, 러시아의 지정학적 여건도 나아지고 있다고 풀이했다.
러시아 연방 통계청(Rosstat)도 15일 경제지표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발표했다. 연방 통계청이 최종 확정한 공식적인 3월 GDP 성장률은 1.8%로, 1월과 2월의 마이너스( 1월 -1.8%, 2월 -1.1%)성장에서 벗어났다. 1분기 전체로는 0.2% 성장이다. 푸틴 대통령의 질책을 부른, 일각의 마이너스(-) 0.3% 성장과는 다른 지표다.
그 계기가 된 것은 이란 전쟁 발발 이후 국제 유가의 급등이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전날(14일) 러시아산 원유 가격이 2023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국제 유가의 상승으로 러시아의 재정 수입이 40% 증가했다는 보도(러시아 경제 매체 코메르산트 7일자) 도 나왔다.
국제 정세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새로 발표된 러시아 경제개발부의 경제 전망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다. 분명한 것은 러시아 정부가 막연한 낙관론에서 냉철한 현실론으로 경제 상황을 진단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푸틴 대통령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 매체 DP.ru 발표 이튿날(13일) "경제개발부는 지난 6개월 동안 러시아 경제의 미래에 대한 낙관론을 다소 누그러뜨렸다"며 "전날(12일) 발표된 2026년 새 경제 전망은 지난해(2025년) 9월의 발표 당시보다 대부분의 지표에서 상당히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향후 3년간의 경제 시나리오 또한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명백한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고, 미래에 대한 경제 낙관론은 냉혹한 현실과 부딪혔다"고 진단했다.
경제연구소를 운영하는 경제 매체 피남.ru는 전문가들을 동원해 경제개발부의 새 경제 전망을 부문 별로 분석했다.
우선, GDP 성장률.
새 경제 전망은 올해 GDP 성장률을 당초 1.3% 성장에서 0.4%로, 2027년에는 2.8%에서 1.4%로, 2028년에는 2.5%에서 1.9%로 낮췄다.
막심 레셰트니코프 경제개발부 장관은 이날 경제 전망의 수정에 대해 "높은 성장기를 거친 뒤 뒤따르는 구조적인 미세 조정"으로 설명하면서 "러시아 경제는 지난 3년간 실질적으로 10% 성장했다"고 주장했다.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부총리도 현지 경제매체 베도모스티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경제는 노동력 부족과 서방의 제재, 사회·군사 부문의 지출 증가를 포함한 '지출 구조 변화' 등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경제 흐름은 순환적이며, 높은 성장 뒤에는 항상 조정 국면이 뒤따른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민간 경제전문가들의 의견은 조금 다르다.
싱크탱크 카네기 재단의 러시아·유라시아센터 연구원 알렉산드라 프로코펜코(러시아 중앙은행 출신)는 "이번 경제 전망 수정이 갑작스럽다기보다는 논리적인 결과"라고 말했다. 지난 1분기의 마이너스 성장 이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조정이었다는 뜻이다.
러시아 가이다르 연구소의 예브게니 고류노프 통화정책 부문장은 "새 전망치는 비관적이지만 상당히 합리적인 변화를 보여준다"고 말했고, 러시아 플레하노프 경제대학교 글로벌 금융시장 및 핀테크학과 부교수인 엘비라 아샤예바는 "경제개발부의 수정된 전망은 외부 충격과 내부의 구조적 제약 등에 의해 형성된 새로운 경제 현실을 반영한다"고 평가했다. 아사예바 교수는 "GDP 성장률의 둔화는 기본적으로 중앙은행의 통화 긴축정책과 높은 금리, 그리고 러시아 경제의 구조적 요인들에 의한 것"이라며 "경제개발부와 중앙은행 간 경제 전망의 차이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현 통화 정책에 대한 효과를 다르게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은행은 일반적으로 외부 환경의 불확실성을 더 폭넓게 고려한다는 게 그녀의 주장이다.
아사예바 교수에 따르면 이란 전쟁 등 중동 사태가 러시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이중적이다. 국제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의 상승은 러시아의 무역수지 개선에 기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압력과 경기 침체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것. 경제개발부의 GDP 성장률 하향 조정은 러시아 현 통화정책을 고려할 때 당연한 과정이라는 게 아사예바 교수의 결론이다.
하지만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는 "러시아 경제는 푸틴 정부의 군사비 지출에 힘입어 수년간 성장세를 이어왔지만 전쟁이 길어질수록 경제 부담도 커지고 있다"고 이번 조정을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설명했다. 러시아의 GDP 성장률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2022년 -1.4%를 기록한 이후 2023년 4.1%, 2024년 4.3%를 찍었고, 지난해에는 0.6~1.0% 성장세로 급락했다.
러시아 경제개발부는 "새로운 거시경제 지표는 2025년 가을(9월) 당시보다 더 긴축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바탕으로 산정됐다"며 "2026년 기준금리 전망치는 평균 14~14.5%로, 지난해 9월 당시의 12~13%보다 높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러시아 경제정책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오래된 철학적 딜레마에 직면한다. 경제개발부는 중앙은행의 통화 긴축정책(고금리 유지 혹은 금리 인상) 때문에 성장률 전망치를 낮출 수밖에 없고,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4%까지 떨어져야 금리 인하가 가능하다고 반박한다.

경제개발부 전망에 따르면 소비자 물가(인플레이션)는 2025년 5.6%에서 2026년 5.2%로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지난해 9월의 전망치(4%)보다는 여전히 높다. 물가가 경제개발부의 당초(지난해 9월) 전망대로 4%로 낮아져야 금리 인하가 가능하다는 게 중앙은행의 논리다. 그 결과, 금리인하가 먼저냐? 경제성장이 먼저냐는 정책상 충돌 지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소브콤뱅크의 수석 분석가인 미하일 바실리예프는 물가 상승률(인플레이션)은 두 가지 서로 다른 외부 요인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본다. 억제 요인으로는 중앙은행의 통화 긴축 정책과 루블화 강세를, 압박 요인으로는 중동 사태와 여전히 높은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 경직된 노동 시장과 이에 따른 임금 상승, 재정 정책의 완화 위험성, 10월로 예정된 공공요금 인상 등을 들었다. 특히 중동 사태는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결정적인 외부 요인인데, 중동 분쟁이 한 달씩 늘어날 때마다 러시아의 인플레이션은 연 0.3%포인트(P)씩 상승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성장을 책임지는 레셰트니코프 경제개발부 장관은 마이너스 성장으로 떨어진 러시아 현 경제 상황이 통화 정책을 완화(금리 인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많은 전문가들도 이에 동의하지만, 중앙은행은 보다 더 신중하게 접근할 게 틀림없다. 경제성장보다 인플레이션 억제에 더 큰 비중을 둘 것이기 때문이다.
미하일 바실리예프 수석은 연말까지 기준금리가 (현재의 연 14.5%)에서 12.5%로 인하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2027년 말에는 10%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아사예바 교수는 "경제개발부가 인플레이션의 둔화(2025년 5.6%에서 2026년 5.2%로)를 전망하는 것은 긴축 통화정책이 지속될 것이라는 가정에서 나온 것"이라며 고금리가 기업 활동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FT 등 외부에서도 "러시아 정부가 기업을 지원할 재정 여력이 부족해 기업들은 대출에 의존하고 있는데, 금리가 높다 보니 많은 기업이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덩달아 부실채권 비율의 상승으로 금융권 부담도 커지고 있다. 러시아 경제가 금리와 물가(인플레이션), 성장 등 서로 맞물린 압박 요인 사이에 갇혀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전쟁 비용으로 급증한 국가 지출은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이에 따라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매우 높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밖에 없으니, 경제성장이 고꾸라지는 상황이다.

중동의 정세에 따라 크게 출렁거리는 국제 유가의 전망에 대해서는 부처별로, 전문가별로 상대적으로 편차가 크다.
러시아 에너지부는 올해 브렌트유 평균 가격을 배럴당 81달러로 상향 조정했지만, 러시아의 대표 유종인 우랄산 원유(우랄유)의 평균 가격은 59달러를 유지했다. 올해(2026년) 1~4월 우랄유 평균 가격이 배럴당 64.4달러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에너지부의 유가 전망에 고개를 갸웃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그런가 하면 러시아 중앙은행은 4월 기준 우랄유 가격을 배럴당 65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다만, 장기 전망에서는 2027년 61달러, 2028년 50달러로 내렸다.
미하일 바실리예프 수석은 우랄유 평균 가격을 배럴당 67달러로 전망하면서 "중동 분쟁이 몇 달 더 장기화된다면 유가는 더욱 높아질 것이고, 중동 분쟁이 종식되고 호르무즈 해협이 개방된 후에도 전 세계 석유 공급이 회복되는 데는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나아가 "각국은 계속해서 석유 비축량을 늘릴 것이기 때문에 유가는 장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록 국제 유가의 일시적인 급등에 따른 것이겠지만, 경제개발부의 새 경제 전망에서 위안이 될 만한 것은 루블화 환율이다. 경제개발부는 2025년 달러당 83.4루블에서 2026년에는 평균 81.5루블(지난해 9월 전망에서는 92.2루블)로 가치가 상승했다가 2027~2029년에는 거꾸로 가치가 떨어지면서 2027년 87.4루블, 2029년에는 96루블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대해 경제 전문가 드미트리 폴레보이는 "2026년 루블화 환율을 당초 92.2루블에서 81.5루블로 급격히 떨어뜨린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경상수지 개선 규모가 고작 130억 달러에 불과한 상황에서 그같은 루블화 가치의 상향(환율 하락) 조정은 자본 유출이 크게 감소했을 때에만 가능하다"며 "지난해 9월의 전망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국제 유가가 배럴당 59달러일 때 환율을 연초 달러당 77.7루블에서 81.5배럴로 올렸는데(가치 하락), 중동 분쟁의 여파로 국제 유가가 70달러, 혹은 80~90달러까지 오르면 환율은 어떻게 될까"라고 되물으며 "경제개발부가 유가의 재정 산입 규칙을 고려하더라도, 2026년 잠재적 수출 증가 규모와 루블화 강세 가능성을 과소평가한 것"이라고 직격했다. 그는 같은 이유로 "2026년과 2027~2029년 명목 GDP는 이번에 수정된 예측(전망)치보다 높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벡터 캐피털의 전문가들도 "경제개발부는 당초 환율이 2028년 달러당 100.1루블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제는 2029년에도 그 수준을 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며 "수정 전망된 81.5루블도 다소 높은 수치"라고 지적했다. "루블화 강세를 뒷받침하는 주요 요인은 중동 분쟁으로 인한 높은 에너지 가격(국제유가)과 중앙은행의 통화 긴축정책(고금리)"이라고 그들은 설명했다.
이외에 러시아 경제개발부는 총 소비지출(2025년 4.1% 증가에서 2026년 0.8%로 하향 조정)와 유료 서비스 이용 부문(2.8%에서 1.7%로 하향)과 같은 다른 경제 지표에서도 경기 부진을 예상했고, 지난해 2.3% 감소한 고정 자산 투자도 0.5% 증가하는 게 아니라 되레 1.5% 줄어들 것으로 수정 전망했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