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Sep 2026

러시아의 또 하나의 새해, 9월 1일... 왜 이날 학생들은 입학을 할까

9월 1일 아침 러시아의 도시를 걷다 보면 평소와 조금 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모스크바 지하철역이나 아파트 단지 사이로 정장을 입은 남자아이와 흰 블라우스에 커다란 리본을 단 여자아이들이 보이고, 그 옆에는 꽃다발을 든 부모가 함께 걷는다. 장미처럼 화려한 꽃도 있지만 러시아의 늦여름과 초가을을 대표하는 글라디올러스나 아스트라를 든 아이들도 많다. 아이들은 아직 조금 긴장한 표정이고 부모는 아이보다 더 긴장해 보이기도 한다. 학교 앞에 도착하면 이미 운동장이나 현관 앞에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모여 있다. 반별로 줄을 서고 교장은 마이크 앞에서 새 학년의 시작을 알린다. 학교에 따라 러시아 국기가 올라가고 국가가 연주된다. 그 뒤 작은 종이 울린다. 러시아 사람들이 ‘페르브이 즈보노크(Первый звонок)’, 첫 번째 종이라고 부르는 순간이다.

전통적인 개학식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는 졸업을 앞둔 상급생과 갓 입학한 1학년 학생이 함께 등장하는 모습이다. 큰 학생이 어린아이를 어깨에 태우거나 손을 잡고 운동장을 돌면, 어린 학생은 손에 든 작은 종을 흔든다. 한 사람에게는 학교생활의 첫 번째 종이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학창시절 마지막으로 맞는 ‘첫 번째 종’이다. 세대가 하나의 종소리를 사이에 두고 교차하는 셈이다. 소련 시절부터 이어져 온 이 풍경은 오늘날의 러시아에서도 9월 1일을 상징하는 이미지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러시아 사람에게 이날은 단순한 개학일이 아니다. 공식적인 명칭은 ‘지식의 날’, День знаний다. 학교가 다시 문을 여는 날인 동시에 아이와 부모, 교사 모두에게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날이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9월 1일이 처음부터 학교의 시작을 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조금 더 오래전의 역사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만날 수 있다. 15세기 말부터 17세기 말까지 모스크바 러시아에서 9월 1일은 실제로 한 해의 시작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1월 1일에 느끼는 ‘새로운 시간이 시작된다’는 감각을 당시 러시아 사람들은 가을에 느꼈다. 농경사회에서 수확을 마치고 새로운 주기가 시작되는 시점과도 맞물려 있었다. 그러나 표트르 대제가 러시아를 서유럽의 시간 체계에 맞추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1700년부터 러시아의 새해는 1월 1일로 이동했다. 9월 1일은 달력의 첫날이라는 자리를 잃었다. 그런데 약 두 세기가 지나 이 날짜는 다시 러시아인의 삶에서 ‘시작의 날’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달력이 아니라 교육의 시작이었다.

제정 러시아 시절에는 지금처럼 전국의 학교가 같은 날 문을 열지 않았다. 김나지야와 실업학교, 교회학교, 농촌학교 등 학교의 종류도 달랐고 지역의 사정도 크게 달랐다. 어떤 학교는 8월에 수업을 시작했고 어떤 곳은 9월이나 10월에야 학생을 받았다. 농촌으로 갈수록 학사일정은 더욱 유동적이었다. 당시 러시아 인구의 상당수는 농촌에서 살았고, 농민의 자녀는 단순히 ‘학생’이라는 하나의 역할만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가족의 노동력이기도 했다. 여름과 초가을에 아이들은 감자를 캐고 곡식을 거두고 가축을 돌보며 어른의 일을 도왔다. 농가의 입장에서 학교 달력보다 수확의 달력이 먼저였다. 농사일이 끝나야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 북쪽과 남쪽의 기후가 달랐고, 시베리아와 유럽 러시아의 계절 또한 달랐다. 당시 학교의 시간은 국가가 일률적으로 정한 시간이 아니라 지역의 기후와 농촌의 생활주기가 결정한 시간에 가까웠다.

이 시간을 하나로 묶은 것이 소련이었다. 1935년 소련 당국은 초등학교와 중등학교의 교육 및 내부질서를 정비하면서 전국 학교의 수업 시작일을 9월 1일로 통일했다.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그저 개학 날짜를 하나 정한 행정규칙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당시 소련이라는 국가의 크기를 생각하면 의미가 달라진다.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수천 킬로미터가 떨어져 있고, 중앙아시아와 캅카스, 시베리아, 극동의 기후와 민족, 언어가 서로 달랐지만 국가가 아이들에게 같은 날짜를 제시한 것이다. “9월 1일에 학교로 오라.” 철도와 공장의 시간, 군대와 행정의 시간을 하나로 묶었던 소련은 교육의 시간도 하나로 맞추려 했다.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든 아이들은 같은 시기에 새 교과서를 받고, 같은 학년을 시작하고,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 안으로 들어왔다. 9월 1일이라는 날짜에는 그래서 소련식 중앙집권 교육의 성격도 녹아 있다.

다만 1935년부터 이 날을 ‘지식의 날’이라고 부른 것은 아니었다. 현재의 День знаний라는 공식적인 이름이 생긴 것은 1984년이다. 후기 소련 시기에 9월 1일이 국가적인 교육 기념일로 지정되면서 오늘날 익숙한 리네이카(линейка), 즉 개학식의 형식도 더욱 뚜렷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학교 앞에 반별로 줄을 맞춰 섰고 교장은 연설했으며 우수학생과 졸업반 학생이 후배들에게 말을 건넸다. 소련 시절의 사진을 보면 여자아이들은 갈색 원피스에 흰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에 커다란 흰 리본을 달고 있다. 손에는 집 정원이나 다차에서 잘라온 글라디올러스와 아스트라가 들려 있다. 교사에게 꽃을 건네는 9월 1일의 문화도 이런 생활 속에서 굳어졌다. 지금도 러시아인의 오래된 가족앨범을 펼쳐보면 비슷한 사진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새 옷을 입은 아이가 자기 몸집만 한 꽃다발을 안고 학교 앞에 서 있는 사진이다. 한국 사람에게 초등학교 입학식 사진이 특별한 기억인 것처럼 러시아인에게도 ‘첫 번째 9월 1일’은 개인의 성장과 가족의 시간을 기록하는 중요한 장면이다.

소련은 사라졌지만 9월 1일의 의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가 바뀌고 사회가 달라진 뒤에도 살아남은 대표적인 생활문화 가운데 하나가 됐다. 물론 그 안에 들어가는 내용은 달라졌다. 오늘날 러시아 학교에서는 국기와 국가, 학교 행사가 이전보다 다시 강조되고 있고 월요일에는 ‘중요한 것에 관한 대화(Разговоры о важном)’라는 특별활동이 진행되는 학교가 많다. 소련 시절 9월 1일 첫 수업으로 ‘평화의 수업(Урок мира)’이 열리곤 했다면, 지금은 국가와 사회, 가족, 역사, 직업, 학습의 의미와 관련한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한 세대가 지나면서 의식의 내용은 달라졌지만 학교가 아이들을 공동의 시간과 가치 안으로 불러들이는 방식 자체는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러시아 학교의 학기 운영 방식 역시 한국과 비교하면 흥미롭다. 한국에서는 자연스럽게 1학기와 2학기라고 생각하지만 러시아의 초·중등학교는 전통적으로 한 학년을 네 개의 ‘체트베르티(четверть)’로 나누어 운영해 왔다. четверть는 말 그대로 4분의 1이라는 뜻이다. 9월에 1분기가 시작되고 가을방학을 한 뒤 2분기로 넘어간다. 새해를 전후한 긴 겨울방학이 끝나면 3분기가 시작되고 봄방학 뒤 4분기를 거쳐 5월 말 학년을 끝낸다. 러시아 학교를 다녀본 사람들이 가장 힘든 시기로 자주 꼽는 것은 3분기다. 1월의 새해 연휴가 끝난 뒤부터 3월 말까지 이어지는데 네 분기 가운데 가장 길다. 모스크바에서는 해가 여전히 짧고 눈과 얼음, 진창이 반복되는 시기이고 시베리아나 북부지역이라면 겨울의 강도가 훨씬 세다. 러시아의 가장 긴 겨울과 학교의 가장 긴 체트베르티가 겹치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 1학년 학생에게는 특별한 배려가 들어간다. 일반적인 가을방학과 겨울방학, 봄방학 이외에 2월 무렵 추가 방학을 주는 경우가 많다. 처음 학교에 들어간 아이가 긴 3분기를 그대로 버티지 않도록 중간에 한 차례 더 쉬게 하는 것이다. 수업시간도 처음부터 상급생과 같지 않다. 학년 초에는 한 교시의 시간을 짧게 운영하고 하루 수업 수도 적게 시작해 서서히 학교생활에 익숙해지도록 한다. 러시아 교육에서는 1학년을 단순히 ‘공부를 시작하는 시기’로만 보지 않고 아이가 교실에 앉아 있는 법, 다른 아이와 함께 생활하는 법, 학교라는 제도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는 기간으로 보는 성격이 강하다. 정식 점수를 늦게 도입하거나 초기 숙제를 제한하는 방식도 이런 적응 개념과 연결돼 있다.

그렇다고 오늘날 러시아의 모든 학교가 반드시 네 체트베르티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트리메스트르(триместр) 방식이나 모듈식 일정을 채택하는 학교도 있다. 대략 5~6주 공부한 뒤 짧게 쉬는 형태로 학습과 휴식을 보다 규칙적으로 배치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모스크바의 한 학교와 다른 지역 학교가 모두 9월 1일 개학했더라도 실제 방학 날짜는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겉으로 보면 러시아 교육은 매우 중앙집권적으로 보이지만, 실제 학교의 연간 일정에서는 일정 수준의 자율성이 존재한다. 전국의 아이들이 같은 날 출발하되 그 한 해를 어떻게 나누어 달릴지는 학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학년의 큰 틀은 여전히 분명하다. 러시아의 일반학교는 1학년에서 11학년까지 이어지고 보통 5월 말이면 정규수업을 마친다. 그리고 약 세 달에 가까운 긴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이 긴 여름은 러시아인의 어린 시절을 이해할 때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러시아 문학이나 영화, 개인의 회상 속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다차(дача), 여름캠프, 할머니 집의 기억도 이 긴 방학과 연결돼 있다. 부모가 도시에서 일하는 동안 아이가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다차에 머물고, 강에서 수영하고, 숲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할머니와 텃밭 일을 돕기도 한다. 그렇게 6월과 7월, 8월을 보낸 뒤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때가 바로 9월이다. 새 옷을 사고 교과서를 준비하고 다차에서 가져온 꽃을 들고 학교로 간다. 그래서 러시아의 9월 1일은 단순히 학교의 개학일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여름에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경계에 가깝다.

대학으로 가면 시간의 단위도 바뀐다. 초·중등학교에서 체트베르티라는 말이 익숙하다면 대학에서는 한국처럼 세메스트르(семестр), 즉 두 학기 체제가 일반적이다. 9월에 첫 번째 세메스트르를 시작해 겨울까지 수업하고, 학기 말에는 ‘세씨야(сессия)’라고 부르는 시험기간을 거친다. 겨울방학 뒤 두 번째 세메스트르가 시작되고 여름을 앞두고 다시 시험을 치른다. 러시아 대학생에게도 9월은 새로운 ‘쿠르스(курс)’, 즉 새로운 학년으로 올라가는 시기다. 따라서 9월의 시작이라는 감각은 초등학생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대학생까지 러시아의 교육기관 전체가 같은 계절에 새로운 주기를 시작한다.

한국과 비교해보면 이 차이는 더욱 선명하다. 한국의 새 학년은 3월에 시작한다. 겨울이 끝나고 나뭇가지에 새잎이 돋기 시작할 때 아이들이 새로운 교실로 간다. 그래서 한국인의 기억 속에서 입학과 새 학년에는 봄이라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겹친다. 새 교과서와 아직 조금 차가운 봄바람, 개나리와 벚꽃이 학교의 시작과 함께 떠오른다. 러시아는 정반대다. 자작나무 잎이 노랗게 변하기 시작하고 아침 공기가 차가워지는 때에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간다. 머지않아 비가 내리고 첫눈이 내리고 긴 겨울이 시작될 것이다. 그 겨울로 들어가는 문턱에 학교가 있다. 그런데 러시아인에게 가을은 한편으로 봄과 비슷하다. 여름 동안 흩어졌던 사람들이 도시로 돌아오고 직장은 다시 속도를 내며 학교와 대학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회의 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9월 1일이라는 날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러시아의 여러 시대가 한곳에 겹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때 이 날은 러시아의 새해였다. 제정 러시아에서는 지역과 계절에 따라 학교마다 서로 다른 시간이 흘렀다. 1935년 소련은 그 시간을 하나로 묶어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의 아이를 같은 날 학교에 불러들였다. 1984년에는 그 날에 ‘지식의 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91년 소련이 무너진 뒤에도 러시아는 그 날짜를 버리지 않았다. 교과서도 바뀌었고 교복도 바뀌었다. 칠판 옆에는 디지털 화면이 놓였고 아이들이 배우는 국가와 역사의 이야기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그런데 9월 1일 아침 아이가 꽃을 들고 학교로 가는 풍경과 첫 번째 종소리는 남았다.

어쩌면 그래서 러시아 사람에게 9월 1일은 단순한 개학일보다 조금 더 큰 날인지 모른다. 한 가족이 아이가 한 살 더 자랐음을 확인하는 날이고, 한 사회가 긴 여름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날이며, 국가가 아이들을 다시 하나의 시간표 안으로 불러들이는 날이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러시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날이 되면 새로운 시간이 시작된다. 표트르 대제가 달력의 새해를 1월로 옮긴 지 300년이 넘었지만 러시아인의 생활에는 여전히 9월에 시작되는 또 하나의 새해가 남아 있다.

최승현 에디터 buyrussia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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