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Oct 2026

갑자기 키예프에 안전한 곳이 없다고? 왜? 드론 공방전서 러시아가 밀린 거 아니었어?

관련기사

네이버에서 러시아 혹은 우크라이나 관련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러시아가 4년 7개월차에 접어든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에게 밀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국내 언론만 보고 있으면 그렇다는 말이다.

'우크라 드론, 3200㎞ 날아가 러 '가스 수도' 때렸다'고 쓴 조선일보 9월 11자를 시작으로, 모스크바도 때릴 수 있는 탄도미사일…우크라 업체, 연내 배치 추진 (뉴시스 9월 14일), "우크라 공습에 러 정유능력 14% 마비"…모스크바 공장도 타격 (뉴스1 9월 21일), 러시아 심장부 모스크바 뚫렸다…우크라, 1600대 드론 '사상 최대' 대공습 (파이낸셜 뉴스 9월 21일), 우크라 "신형 '펠리컨' 탄도미사일로 모스크바 공격" (연합뉴스 9월 21일), 푸틴의 자랑이었는데…시속 425㎞ 러軍 드론 격추되는 굴욕의 순간 [영상] (서울신문 9월 29일), “여기 숨었네?”…‘푸틴의 보석’ T-90 전차, 위장 딱 걸린 뒤 ‘활활’ (서울신문 9월 29일) 등의 기사로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각각의 기사가 "사실이 아니다"는 뜻은 아니다. 약간 과장된 기사 제목이 국내 독자들에게 자칫 잘못된 현지 전황을 전해주는 것은 아닐까 우려하는 정도다.

 

전쟁 종식의 핵심 지역이 된 우크라이나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에서의 '러시아군 공격-우크라군 방어' 전황은 별개로 하더라도,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본토를 공격, 파괴하는 각 분야의 손실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당하는 기반 산업의 피해가 엄청나게 더 크다는 게 객관적 현실이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한국으로부터 패트리어트 방공 미사일 체제나 한국형 방공망 지원 요청을 거절당하자 몹시 서운한 감정에서 북한군 포로 2명의 서울 송환 비공개 합의를 깼다는 분석이 나올 만큼, 우크라이나의 방공망은 현재 바닥을 헤메고 있다. 제트 엔진을 단 러시아 신형 드론 '게란' 모델이나 탄도 미사일은 수도 키예프(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상공을 제 집 드나들듯이 오가며 주요 시설을 유린하고 있다. 키예프만 해도 일부 관공서는 물론이고 철도 차량기지와 유무선 통신 데이터 센터, 비즈니스 건물, 주유고및 주유소, 물류용 창고, 주거용 건물 등이 매일 폭격을 당하는 판이다.

키예프 시민들도 24시간 울리는 공습 경보에 참다 못해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폭발음을 들으며 일어나고, 잠자리에 들고,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일한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친정부 인사들은 이같은 SNS를 오래 전에 최전선으로 변한 다른 도시들에 비하면 '행복한 불만'이라고 질타하지만, 힘겨운 현실을 반박하지는 못했다. 

24시간 진행되는 러시아군의 폭격에 대한 심경을 틱톡에 올린 키예프 거주 요가 강사 율리야/영상 캡처
24시간 진행되는 러시아군의 폭격에 대한 심경을 틱톡에 올린 키예프 거주 요가 강사 율리야/영상 캡처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키예프의 젊은 요가 강사 율리아는 28일 틱톡에 올린 폭발음 영상에서 "집 전체가 흔들렸다"며 "키예프가 8일 동안 끊임없는 공습을 받고 있으며, 지난 23일에는 7번의 요가 교육 시간 내내 폭발음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교육하는 내내 몸이 떨렸다"며 "어떤 순간에는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인들이 여전히 강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건 부자연스럽다. 누구도 이런 환경에서 살아서는 안 된다. 키예프는 최전선 도시로 변해가고 있으며, 이제는 숨쉬기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또 "많은 시민이 이같은 삶을 감당할 수가 있어서가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남아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일부 서방 외신은 이제 키예프에서도 '안전지대가 사라졌다'고 전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그동안 안전지대로 여겨진 키예프 도심의 정부·외교기관 건물이 러시아 드론에 잇달아 피격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 5일 우크라이나 국가보안국(SBU) 청사가 처음으로 러시아의 제트 추진 드론 공격을 받았고, 27일에는 키이우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대사 관저로 사용되는 건물이, 이튿날(28일)에는 우크라이나 국립과학아카데미(과학원)가 드론 공격을 피해가지 못했다. SBU와 국립과학원은 주요 정부·외교시설이 모여 있는 키예프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러시아 공격이 뜸한 곳이었다. 

또 유무선 통신 데이터 시설이 파괴돼 TV 방송 송출이 한때 중단되고, 인터넷이 끊어졌다. 

일리야 코토우 우크라이나 국가전략·공공정책개발센터 대표는 현지 매체에 "러-우크라 사이에는 확전을 피하기 위해 국가기관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합의가 존재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이제는 키이우에 안전한 건물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드론 전쟁' 이전부터 모든 전쟁의 판을 가르고, 가른 제공권이 러시아로 완전히 넘어왔다는 사실이다. 러시아 드론·미사일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의 표적을 향해 날아오는데, 제대로 격추하지 못하니, 인명및 시설 피해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최고라다(의회)의 세르게이 라흐마닌(야당인 보이스당) 의원은 29일 현지 라디오 매체에 출연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제트 추진 신형 드론에 대한 대비가 늦었다"며 "러시아 드론 '게란-4'와 '게란-5'는 7㎞가 넘는 고도에서 우크라이나 상공으로 진입하는데, 우크라이나 방공 시스템은 최대 5㎞ 고도에서 드론을 요격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또 "러시아 신형 드론은 시속 450~600㎞의 속도로 비행하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요격기가 따라잡을 수 없다"며 "더 높은 고도에서 빠른 드론을 격추하려면, 비용을 지금보다 훨씬 많이 지불해야 하거나, 아니면 요격할 방법이 없다"고 한탄했다. 

우크라이나군 정보총국(GUR)이 발표한 러시아 게란-4 드론의 제원/사진출처:GUR 스트라나.ru
우크라이나군 정보총국(GUR)이 발표한 러시아 게란-4 드론의 제원/사진출처:GUR 스트라나.ru

실제로 우크라이나 군 당국이 밝힌 제트 추진 드론 격추율은 60%에 불과하다. 러시아 드론 10대 중 4대가 목표물을 정확하게 때린다는 이야기다.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격추율이 90%에 이른다는 주장은 이미 흘러간 옛이야기다.

반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드론 격추율은 여전히 95%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관심은 제공권을 장악한 러시아군이 국립과학원과 같은 관변 기관 건물에 이어 대통령실이나 정부 청사, 의사당 등 국가 정책결정기관을 직접 겨냥할지 여부로 쏠린다.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키예프 국립과학원이 불타는 모습. 직원들의 안타까운 탈출 장면이 눈에 밟힌다/텔레그램 캡처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키예프 국립과학원이 불타는 모습. 직원들의 안타까운 탈출 장면이 눈에 밟힌다/텔레그램 캡처 

스트라나.ua는 28일 "지난 며칠간 이어진 키예프에 대한 24시간 공격, 특히 28일 도심에 대한 공습은 우크라이나 수도가 러시아 탄도 미사일은 물론, 드론 공격에도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며 국가 정책결정기관에 대한 러시아군의 추가 타격을 우려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정부 청사 지역이 그동안 러시아의 공습을 받지 않는 이유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양국 당국 간의 암묵적인 합의(코토우 우크라이나 국가전략·공공정책개발센터 대표)로부터 핵전쟁 대비 구소련의 지하 벙커에 대한 공습 무익설, 키예프 주요 지역을 보호하는 강력한 방공망 구축설 등이다. 

이제는 양국 당국 간의 공습 자제 합의가 없는 한, 대통령을 비롯한 우크라이나 고위 관리들과 의원들의 신변 안전 문제는 전쟁 발발 이후 가장 시급한 과제가 됐다는 게 스트라나.ua의 진단이다. 일각에서는 의사당을 지하로 옮기는 등 국가 주요 기관의 안전 확보 논의가 앞으로 더욱 활발해지고, 대통령의 해외 순방 및 관련 행사에 대한 보안 조치 또한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크라이나의 한 의원이 9월 초 의회가 지하 대피소로 옮겨갈 경우, 모바일로 표결하는 방법을 시연하고 있다/텔레그램 영상 캡처
우크라이나의 한 의원이 9월 초 의회가 지하 대피소로 옮겨갈 경우, 모바일로 표결하는 방법을 시연하고 있다/텔레그램 영상 캡처

스트라나.ua는 러시아군이 키예프의 국가 정책결정기관을 타격하지 않는 것은 적절한 공격 시점을 내다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우크라이나가 모스크바의 중심부를 때릴 경우, 보복 공격의 목표로 남겨두고 있다는 것. 키예프의 국가 정책결정기관을 선제 공격하는 것보다는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에 대한 보복 조치의 일환으로 대응하는 게 국제적으로 명분이 낫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군의 본토 정유시설 공격에, 흑해 부두및 선박 공격에, 인터넷 쇼핑몰 물류 창고 공격에 러시아가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원칙에 따라 우크라이나 관련 시설을 무자비할 정도로 맹폭한 지금까지의 경험을 보면 그렇다. 

재미있는 것은, 키예프가 느끼는 최근의 심각한 공습 불안 증상은 4년 6개월여에 걸친 전쟁 기간 전체로 따지면 4번째 국면 전환에 해당한다는 분석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사회는 전쟁 발발 초기에는 충격과 공포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첫번째 단계다.

그러나 이 혼란은 러시아군이 한달여 만에(2022년 3월 말) 키예프와 수미, 체르니노프(체르니히우)에서 철수하면서 사라졌고, 승리가 임박했다는 기대감과 함께 우크라이나 사회는 어떠한 고난도 감수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전쟁 첫해(2022년) 가을 하르코프(하르키우)와 헤르손 지역에서 거둔 우크라이나군의 승리는 이같은 기세를 더욱 고조시켰다.

그해 겨울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인한 대규모 정전 사태조차도 이러한 민심을 흔들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사회는 국가 지도자(젤렌스키 대통령)가 공언한 대로, 우크라이나군의 대대적인 반격 작전으로 '얄타에서 커피 마실 날'을 기대하고 있었다.

3단계는 2023~2024년에 걸쳐 진행됐다.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은 실패했고, 러시아군이 다시 주도권을 잡은 게 분명해졌다. 특히 남성들에 대한 군 징집 강화는 전쟁에 대한 장미빛 기대를 걷어갔다. 그간 누려온 평범한 일상은 무너졌고, 수십만 명의 남성들은 징집을 피해 지하로 숨어 다녔다. 일부는 목숨을 걸고 이웃나라(루마니아와 헝가리)로 탈출을 시도했다. 

이때 우크라이나 당국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러시아 쿠르스크주(州)를 기습공격하고, 핵전력 파괴를 겨냥한 '거미줄 작전'을 펼쳤으며, 러시아 본토의 후방 공격에 나섰다. 

다행스럽게도 전쟁은 최전선 지역을 제외하면 우크라이나 일반 국민이나 상당수의 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았다. 수백만 명이 전력과 난방 없이 지내야 했던 지난 겨울을 제외하면, 우크라이나는 재정적으로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서방의 원조 덕분에 사회 복지 예산은 줄어들지 않았고, 경제 전반으로 돈이 흘러 들어가면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내수를 자극했다.

스웨덴 방송 카메라에 잡힌 우크라이나의 길거리 강제 동원. 징집관들이 한 남성을 억지로 버스 안으로 우겨넣는 모습/영상 캡처
스웨덴 방송 카메라에 잡힌 우크라이나의 길거리 강제 동원. 징집관들이 한 남성을 억지로 버스 안으로 우겨넣는 모습/영상 캡처

하지만, 계속되는 러시아군의 공습과 길거리 강제 동원,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 협상, 권력형 부패 스탠들 등을 지켜보는 여론은 사회 밑바닥에서부터 바뀌고 있었다. 전쟁 피로감과 조속한 평화에 대한 열망이 갈수록 커진 것. 키예프가 8일간 24시간 러시아군의 공습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을 계기로, 전쟁에 대한 우크라이나 민심은 네 번째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는 게 스트라나.ua의 진단이다. 

러시아군은 이제 접근 가능한 우크라이나의 거의 모든 산업 시설과 물류망, 국가 인프라 등을 공격 목표로 삼고 있다. 그 결과, 제철및 금속 산업은 이미 붕괴되고, 수출 항만 봉쇄로 농업 부문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미 큰 적자를 보이고 있는 세수(예산 수입)는 기업의 피해가 커지면서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권력 기관간 투쟁, 권력형 부패 스캔들도 여전하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러시아 후방에 대한 새로운 공격과 도네츠크, 드니프로페트로프스크, 자포로제(자포리자)로의 진격 발표 등을 통해 부정적인 여론을 덮으려고 한다. 그러나 러시아 총선이 최근 푸틴 대통령의 승리로 끝난 상태에서 길거리 반전 시위와 같은 민심 이반 가능성은 낮아졌고, 러시아군이 몇몇 전선에서 패퇴하지 않는 한, 우크라이나 프로파간다(선전전)의 한계는 분명하다.

키예프와 달리 일찌감치 최전선 도시로 분류된 하르코프의 한 주민은 지난 2월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꺾이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지쳤다. 어떤 일이 있어도 견뎌야 한다는 주장은 고통을 미화할 뿐이다. 무적이라는 생각, 이 철옹성 같은 하르코프에서 버티는 것에 이젠 진절머리가 난다. '무적'이나 '철옹성' 류의 모든 이야기는 마치 독과 같다. 고통을 정상화하고, 피로감과 우울, 트라우마를 배신으로 둔갑시키며, 진정한 애국심과 영웅은 완전히 무너질 때까지 묵묵히 버티는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주장이다."

7개월이 지난 지금, 키예프 시민들이 하르코프와 같은 고통을 본격적으로 호소하기 시작했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