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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정·관계를 강타한 에너지 부문(원전 기업 에네르고아톰) 부패 스캔들로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치적 위상이 크게 뒤흔들리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향햔 새로운 국면이 열리는 것 같다. 바이러시아(www.buyrussia21.com)가 얼마 전 '시간은 누구의 편인가?(상·하편)'라는 기사를 내보낼 때만해도 생각지도 못한 사건 전개이자 국면 전환이다.

미국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입지가 좁아든 틈을 놓치지 않고 새로운 평화안을 꺼내들었고, 우크라이나 집권 여당인 '국민의 종' 내부에서도 야당을 포함한 '거국 내각'을 구성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각기 다른 두 개의 흐름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미-러-우크라 간에 합의된 평화안(초안)이 우크라이나 거국 내각(혹은 거국 내각이 실시한 대선에서 승리한 새로운 대통령)을 거쳐 전쟁 종식으로 가는 발판이 될 수도 있다. 러-우크라 평화협정은 지난 5월로 공식 임기가 끝난 젤렌스키 대통령이 아니라 합법적인 권한을 지닌 국가 수장에 의해 서명되어야 한다는 푸틴 대통령의 주장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는 곧 러시아 특수군사 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의 승리를 뜻한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19일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 기사 중 '새로운 평화 계획. 젤렌스키 (대통령)가 수락할까요?'(Новый мирный план. Примет ли его Зеленский)라는 코너에서 "서방 언론들이 오늘(19일) 놀라운 소식을 보도하기 시작했다"며 "미국과 러시아가 새로운 우크라이나 평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의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Axios)가 28개 항으로 된 평화안을 처음 보도했고, 폴리티코(Politico)와 영국 로이터 통신, 파이낸셜 타임스(FT)가 이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이 자체적으로 우크라이나 평화안(평화 계획안)을 만들었다는 보도가 몇 차례 나왔지만, 이렇게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휴전을 이끌어낸 자신감과 경험을 바탕으로 '평화로 가는 러-우크라 실천 계획'(평화안)을 세세하게 짠 것으로 추정된다.
서방 외신들에 따르면 미국 평화안은 크게 △우크라이나의 평화 △안보 보장 △유럽 대륙의 안보 △미-러-우크라 향후 관계 등 4개로 나눠 모두 28개 항목으로 되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특사인 스티브 위트코프와 푸틴 대통령의 대외 정책 특사 키릴 드미트리예프(직접투자기금 대표)가 평화안 마련에 전적으로 참여했다. 미-러 양국의 주장을 조율해 만든 평화안이라는 뜻이다.
악시오스는 미국이 평화안 마련에 참여하지 못한 우크라이나와 유럽 측에 이를 제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반면 폴리티코는 미국이 유럽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우크라이나가 이 안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혹은 압력)할 계획이라고 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제는 어떤 조건이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여건(부패 스캔들로 실각 위기에 처한 상태/편집자)에 처한 것으로 여긴다고 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 평화안은 19일 키예프(키이우)에 도착한 대니엘 드리스콜 미 육군장관 등 미군 대표단에 의해 다음날(20일)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제시될 계획이다. 주말까지는 승인을 받을 작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키이우의 답변(혹은 의견)를 들고 모스크바로 갈 예정이다.
이 통신은 미 고위관리를 인용해 "유럽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사실상 관심이 없다"며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의 동의 여부인데, 에너지 부패 스캔들과 최전선의 전황을 고려할 때 우크라이나가 수락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또 우크라이나에게는 전쟁 종식 후까지 감안한 합리적인 안이라고도 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러-우크라 양국 모두 공식적으로는 이 평화안을 일체 언급하지 않고 있다. 다만,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 18일 이례적으로 평화 협상 과정을 강화하기 위해 튀르키예(터키)를 방문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수도 앙카라에서 위트코프 미 대통령 특사와 만날 것으로 전해지면서 뭔가 중대한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하지만, 위트코프 특사는 앙카라 방문을 연기했다고 악시오스는 전했다. 대신 드리스콜 육군장관 등 미 군사 대표단이 20일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전황 설명과 함께 이 평화안을 설명할 계획이라는 것. 스트라나.ua는 이 만남은 사실상 최후통첩의 성격을 가질 수 있다고 해석했다.

평화안의 내용은 영국 매체인 로이터 통신과 FT에 의해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키예프는(러시아군이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도네츠크주(州) 일대를 넘겨주고(철수하고, 돈바스 지역 전체를 러시아에게 양도/편집자) △우크라이나군 규모의 감축과 특정 무기의 폐기를 수용하며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어 사용과 러시아 정교회의 활동을 보장한다는 것 등이다. 다만, 우크라이나군이 철수한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은 비무장지대로 설정돼 러시아군도 주둔할 수 없다는 단서 조항이 달려 있다고 악시오스는 보도했다.
러시아가 임의적으로 합병한 나머지 2개 지역, 즉 헤르손주와 자포로제(자포리자)주는 현 전선에서 전투를 멈추되 러시아군이 점령한 다른 주(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주와 하르코프주)의 땅과 일부 교환될 수도 있다고 했다. 또 우크라이나가 군사력(병력과 무기)를 축소하는 대신, 미국이 우크라이나 안보를 보장하기로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악시오스 소식통에 따르면 이 평화안 작성에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휴전에 앞장선) 카타르와 터키가 간여했으며, 특히 카타르 고위 관계자가 지난 주말 위트코프 특사와 우메로프 우크라이나 국가국방안보회의(우리의 국가안보실 격) 서기(장관급, 사무총장) 간의 회담에 참석했다. 우메로프 서기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허락을 받고 위트코프 특사와 협상에 임했으며, 그의 의견이 28개 항에 다수 반영됐다고 한다.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이 협상을 강화하기 위해 터키를 방문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악시오스는 그러나 우크라이나 소식통을 인용해 "우메로프 서기가 평화 계획의 모든 조건을 수용하지 않았으며, 여러 조항에 반대했다"고 전했다. 위트코프 특사가 당초 예정된 젤렌스키 대통령(예르마크 대통령 실장 배석)과의 만남을 취소(혹은 연기)한 이유라고 했다.
한 미국 고위 관리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위트코프-우메로프 합의안에 반대하고, 유럽 동맹국들과 만든 평화안을 갖고 터키 (앙카라)로 향하자, 위트코프가 앙카라행 비행기 탑승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가진 평화안(12개항으로 된 우크라-유럽 평화안/편집자)은 러시아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위트코프 특사에게 앙카라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협상 전권을 부여했지만, 그의 회담 연기 요청을 수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압박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측은 "공은 이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넘어갔으니 기다릴 수밖에 없다"며 "원한다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직접 워싱턴에 와 미국의 평화안을 논의할 수도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언론에 공개된 평화안은 위트코프 특사가 몇 차례 크렘린을 찾아가 푸틴 대통령과 합의한 기본 틀과 뒤이어 알래스카 미-러 정상회담에서 암묵적으로 확인된 평화안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일찌감치 도네츠크주 철군 등 미-러 간의 합의 내용을 공식, 비공적으로 거부했고, 급기야 10월 중순 워싱턴 미-우크라 정상회의 석상에서 위트코프 특사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도네츠크 지역을 포기할 것을 촉구했다는 뒷이야기도 흘러나왔다.
문제는 그후 젤렌스키 대통령의 입지가 초대형 부패 스캔들로 급격히 약화되었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각 전선에서 공세를 강화하고, 키예프 등 주요 도시의 에너지, 철도 인프라를 겨냥한 공습을 계속하며 전쟁 주도권을 잡아가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정권은 대통령의 측근 민디치와 관련된 에너지 부패 스캔들로 위기에 빠졌다. 벼랑 끝으로 몰린 젤렌스키 대통령로서는 국면 타개를 위한 마지막 카드로 미국 주도의 평화안에 얹혀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정반대의 시나리오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부패 스캔들로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 팀(진영)이 러시아에게 영토 양보나 수세적 타협을 할 경우, 닥쳐올 후폭풍을 경계할 수도 있다. 부패 혐의에 국가에 대한 배신과 러시아에 굴복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지기 때문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거꾸로 지난 2월 백악관 논쟁에서 얻어냈던 '국익 수호' 이미지로 부패 스캔들로 추락한 지지율의 상승을 노릴 수도 있다. 예컨대 "'도네츠크주를 넘겨주라'는 미국의 위협과 최후통첩에 넘어가지 않겠다. 국익이 최우선"이라는 대목을 강조하면서다.

그의 선택에서 간과할 수 없는 변수가 바로 전황이다. 백악관 논쟁(2월)과 워싱턴 정상회담(10월) 당시와는 달리, 최전선의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에너지 철도 인프라를 겨냥한 러시아군의 공습도 겨울철 난방 시즌을 앞두고 더욱 잦아졌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자금 확보도 아득하다. 미국 대신 대(對)우크라 재정 지원 총대를 맨 유럽연합(EU)이 러시아의 동결 자산을 토대로 한 '배상 대출'을 시도하고 있지만, 내부 반대가 만만찮다. 그렇다고 회원국이 각자 주머니돈을 더 털 입장도 안된다. EU의 경제대국인 독일부터 경제적 침체 및 하락 국면에 빠져 있다. 경제가 정치적 결정을 제어하는 모양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과거와 같이 '흔들림 없는 국익의 수호자' 이미지를 강조하기에는 모든 상황이 너무 급박한 셈이다.
우크라이나가 미국 평화안을 끝까지 거부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화를 돋울 수도 있다.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이 경고한 대로 시간이 흐를수록 평화 조건은 더욱 나빠질 수도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에게는 선택해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그가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 예상치 못한 국면 전개 두가지-젤렌스키의 선택으로 이어집니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