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Jan 2026

러-우크라 엇갈리는 전과 발표, 차이가 나는 근본 이유 - 전쟁 저널리즘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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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2025년) 12월, 푸틴 대통령은 젤렌스키 우크라-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가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으면 러시아는 무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군복 차림으로 특수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지휘 사령부 중 한 곳을 방문해 전황을 보고받고 이같이 경고했다. 

이 자리에서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우리의 합참 의장 격)과 동부 및 중부군단 사령관 등은 푸틴 대통령에게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州) 미르노그라드(러시아 이름으로는 디미트로프)와 자포로제(자포리자)주 굴랴이 폴레, 스테프노고르스크 등을 해방(점령)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를 즉각 부인했다.

미르노그라드 굴랴이폴레 등의 함락을 부인하는 우크라 총참모부 성명/페이스북 캡처
미르노그라드 굴랴이폴레 등의 함락을 부인하는 우크라 총참모부 성명/페이스북 캡처

 

이튿날(28일) 굴랴이 폴레 방어를 책임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남부방위군은 텔레그램을 통해 러시아군의 완전한 통제권을 부인하면서도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인정했다. 

해를 넘겨 지난 2일 한 우크라이나군 병사(호출부호·ID 플라워)는 "우리(우크라이나군)는 깃발(국기)을 앞세워 미르노그라드를 사수한 척해야 했지만, 끝내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며 "러시아군은 드론으로 주변을 샅샅이 정찰·수색하면서 우리가 미르노그라드와 로딘스케에 진입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있다"고 알렸다. 그는 "최근 미르노그라드에서 우리가 통제 중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깃발을 들고 그곳으로 군인을 파견한 것은 그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을 뿐"이라고도 했다. 

러시아가 우세한 군사력을 앞세워 모든 전선에서 진격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전과를 둘러싼 러-우크라 간의 말싸움은 늘 이런 식(러시아의 점령 발표→우크라이나군의 부인→현지 군인의 실제 상황 전달 SNS→외신의 관심 표명→우크라군의 철수 발표 순)으로 전개된다. 전쟁 중에는 전투 못지 않게 '프로파간다'(선전)전도 치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언론이 팩트(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전쟁 저널리즘'이 필요한 이유다.

오토바이를 탄 러시아 보병이 우크라이나 측이 설치한 철조망을 뛰어넘는 장면/텔레그램 영상 캡처
오토바이를 탄 러시아 보병이 우크라이나 측이 설치한 철조망을 뛰어넘는 장면/텔레그램 영상 캡처

'우크라이나전 3년째 전쟁 저널리즘'(이진희 저, 맑은 샘 2024년 10월 발간)의 기준으로 양측의 전과 홍보전을 더욱 구체적으로 짚어보자. 

미르노그라드는 최근 러-우크라 양국군이 가장 화끈하게 다툰 도네츠크주 전략 요충지 '포크로프스크'로 이어지는 외곽 도시다. 포크로프스크 포위에 나선 러시아군은 미르노그라드를 통한 우크라이나군의 물자 공급을 막기 위해 달려간 곳이다. 

미르노그라드의 위치. 도시 아래쪽(남쪽)과 위쪽에 전투 지역 표시(붉은 색 빗금)이 보이고, 도시 아래로 포크로프스크가 있다. 포크로프스크를 포함한 주변 지역은 이미 주황색(러시아군 점령)으로 변했고, 회색(중립지역)를 맞은 편은 우크라이나 통제지역이다/사진출처:딥 스테이트
미르노그라드의 위치. 도시 아래쪽(남쪽)과 위쪽에 전투 지역 표시(붉은 색 빗금)이 보이고, 도시 아래로 포크로프스크가 있다. 포크로프스크를 포함한 주변 지역은 이미 주황색(러시아군 점령)으로 변했고, 회색(중립지역)를 맞은 편은 우크라이나 통제지역이다/사진출처:딥 스테이트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12월 29일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기사 중 '전선 상황' (Ситуация на фронте) 코너에서 "푸틴 대통령은 지난 27일 러시아군 지휘부로부터 미르노그라드와 굴랴이 폴레 점령 상황에 관해 브리핑을 받았다"며 "우크라이나 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독일 일간지 빌트는 전장 지도를 게재하며 굴랴이 폴레가 러시아군에 의해 완전히 점령된 것으로 보도했다"고 전했다. 이 기사를 쓴 빌트의 군사 전문 율리안 뢰프케 기자는 "우크라이나군은 미르노그라드의 북부 지역과 중심부는 여전히 장악하고 있으나 포위망에 갇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크리스마스 이브(24일) 남부 지역에서 철수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서로 다른 러-우크라-빌트지의 주장이다. 점령과 장악(혹은 함락), 철수 등과 같은 단어의 사용 기준을 챙겨볼 필요가 있다. 어차피 전황은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공격군이 도시(혹은 마을)의 경계선 안으로 진입해(도시의 외곽 방어가 무너졌다는 뜻/편집자), 일부 지역를 장악하고, 점령지를 넓혀가면서 절반 혹은 3분의 2를 장악하면 방어 부대의 철수가 시작된다. 이어 적의 저항이 완전히 멈추는 함락 단계로 진행되는 게 보통이다. 그렇다면 어느 단계에서부터 점령(혹은 함락)이라는 단어 사용이 가능할까?

프로파간다 측면에서는 한쪽(공격군)은 첫번째 혹은 두번째 단계에서, 다른 쪽(방어군)는 거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서야 함락됐다는 단어를 쓰고 싶을 것이다. 그 내면에는 당연히 복합적인 심리적 동기가 작동한다. 한쪽은 진격하는 아군의 사기를 붇돋우기 위해 '점령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에서 '점령했다'고 쓰고 싶을 터이고, 다른 쪽은 '다 잃을 때까지 잃은 것은 아니다'며 방어군에게 희망을 주고 싶을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의 진격 모습/사진출처:우크라군 합참 페북
우크라이나군의 진격 모습/사진출처:우크라군 합참 페북

현장 군 지휘관의 욕심(?)도 빠뜨릴 수 없다. 특히 방어군 지휘관은 상부로부터의 엄중한 문책을 피하기 위해 '거짓 보고'의 유혹에 시달린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르노그라드 공방전이 치열하던 지난해 12월 하순, 한 우크라이나군 병사(호출 부호 무치나)는 "아직도 군 고위층에는 현장 지휘관이 쫓겨나지 않도록 서로 감싸며 챙겨주고 있다"며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그 규모가 놀랍다"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군 내부에 만연한 전장의 허위 보고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홍보전의 결과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러시아군은 12월 29일 굴랴이 폴레의 우크라이나군 지휘소를 점령했다. 우크라이나군에 복무 중인 언론인 블라디미르 보이코는 이튿날(30일) 굴랴이 폴레의 지휘소가 점령된 것은 군 내부의 대규모 탈영과 그간의 손실에 따른 결과라고 분석했다. 

호출부호 무치나를 쓰는 우크라이나 군인은 12월 28일 SNS에 "우리는 미르노그라드와 로딘스케를 사실상 잃었다"고 썼다.

러시아군의 포크로프스크 포위 여부가 관심을 모았던 지난해 10월쯤으로 돌아가 보자. 러시아 군사 전문 텔레그램 채널들이 포크로프스크 인근 마을의 점령 소식을 전하면, 우크라이나군은 이를 부인하고, 현지 주둔 우크라이나 군인이 SNS를 통해 군 지휘부의 부인을 반박하는, 소위 '주장→부인→반박'하는 게 일상적이었다. 그 끝은 러시아군의 실제 점령이었다. 급기야 알렉산드르 시르스키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은 10월 26일 포크로프스크 방어 부대장들과 긴급 회의를 갖고, "실제 상황에 대한 정보를 왜곡하거나 은폐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전황 왜곡에 따른 댓가는 바로 부대원들의 생명과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스트라나.ua는 "시르스키 총사령관의 이 경고는 매우 의미심장하다"며 "그가 과거 다른 지역 전선에서는 지휘관들의 거짓 보고를 거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군 지휘관들이 방어 작전 실패에 따른 문책을 피하기 위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거짓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우크라이나에서는 2025년 초 부대 통솔이나 방어 작전에 실패한 군 지휘관들이 체포돼 형사사건으로 재판에 회부된 데 대한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

러-우크라 전과 홍보전에는 제 3국의 언론 매체도 개입된다. 실제로 양측의 주장을 객관적으로 살펴본 뒤, 결론을 내려주는 듯한 느낌이다. 우크라이나군의 패배(함락 혹은 철수) 인정 전 단계에서 주로 나온다.
 
스트라나.ua는 12월 24일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 기사 중 '전선 상황' 코너에서 "독일 빌트지의 율리안 레프케 군사 전문 기자는 우크라이나 전황 분석 매체 '딥 스테이트'의 지도가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주와 자포로제주 전선의 실제 상황을 한 달 이상 늦게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썼다. 레프케 기자는 "러시아군이 최소 8개 마을에 이미 진입했거나 전투가 진행 중이라고 주장하는데, 딥 스테이트 지도에는 해당 마을들이 혼전 지역(지도에서는 회색으로 표시/편집자)으로 분류됐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격전지 세베르스크를 살펴보면 레프케 기자의 주장이 왜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는 12월 23일 텔레그램을 통해 "우리 군인들의 생명과 부대의 전투력을 보존하기 위해 세베르스크에서 철수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세베르스크 전투에서 침략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고도 했다. 세베르스크는 도네츠크주 산업단지겸 요새지역인 크라마토르스크와 슬로뱐스크에서 약 30㎞ 떨어진 곳이다.

크렘린은 12월 11일 (크라마토르스크를 향해) 북진하는 러시아군이 세베르스크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주장했으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곧바로 "사실이 아니다" 반박했다. 그러나 뢰프케 기자는 다음날(12일) "우크라이나가 세베르스크를 완전히 빼앗겼다"며 "러시아군의 점령 속도가 매우 빨랐다"고 주장했다. 딥 스테이트도 전황 지도에서 13일부터 세베르스크가 러시아의 완전한 통제 하에 있거나 부분적으로 회색 지대에 있는 것으로 표시됐다. 

그로부터 10여일이 지난 23일 우크라이나 총참모부가 세베르스크의 철군을 공식 확인한 것이다. 러-우크라 주장 간의 시차가 뢰프케 기자의 한달이 아니라 10여일에 불과했다.그 기간에 벌어진 양측의 치열한 홍보전에 제3국 독자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크렘린의 점령 발표가 나오기도 전에 우크라이나 군 지휘부의 거짓말을 비난하는 정치권의 목소리도 있었다. 한때 최고라다(의회) 국방위원회 소속이었던 마리야나 베주글라야 의원은 12월 9일 "세베르스크는 이미 러시아군에게 사실상 점령됐다"며 "군 지휘부는 숨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전날 딥 스테이트는 러시아군이 세베르스크의 절반 이상을 점령했다고 전했고, 뢰프케 기자도 9일 세베르스크의 우크라이나 방어선은 "붕괴되고 있다"고 짚었다. 크렘린의 완전 점령 발표보다 2, 3일 빠른 시점이었다.  

군복을 입은 푸틴 대통령에게 전과를 보고하는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사진출처:크렘린.ru
군복을 입은 푸틴 대통령에게 전과를 보고하는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사진출처:크렘린.ru

이같은 전과 논란이 어쩌면 한때의 '헛된 공방'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분명해지고, 2025년 한 해 동안 우크라이나는 전년보다 더 많은 영토를 빼앗겼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 'Come Back Alive'재단의 대표인 군사 전문가 타라스 흐무트는 12월 30일 우크라이나 프라우다지와의 인터뷰에서 "2024년에는 전년 대비 빼앗긴 영토(점령된 영토에서 수복 영토를 뺀 결과/편집자)가 110㎢였으나 2025년에는 1,700㎢로 15배나 더 늘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가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며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낙관적인 시나리오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튿날(31일)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은 "러시아군이 12월에 최고 수준의 진격 속도를 기록하며 750㎢넘는 지역을 점령했다"고 주장했다. 이틀 전(29일) 안드레이 벨루소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특수군사작전 점검 회의에서 "우리는 당초 계획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격하고 있다"며 "12월이 최고 속도를 기록한 달"이라고 말했다. 

해를 넘겨 지난 3일 AFP 통신은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와 미국기업연구소(AEI) 중대위협프로젝트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군사 전문가 발표를 분석한 결과, 러시아가 2025년 우크라이나 영토 0.94%에 해당하는 5천600㎢를 장악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서울 면적의 약 9배 넓이로, 러시아 전쟁 2, 3년차인 2023, 2024년에 차지한 면적을 합한 것보다 넓다. 러시아가 전격적으로 국경을 넘었던 2022년에는 6만㎢를 넘게 점령했지만, 이후 지루한 공방전에서 해가 갈수록 러시아군의 우위가 계속 확인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과 발표는 이 기조 속에서 판단하는 게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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