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Feb 2026

4년째 이어진 전쟁, 누가 ‘패배’하고 있는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4년째를 맞았다. 국제사회는 여전히 이를 ‘러시아의 침공’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프랑스 역사학자 에마뉘엘 토드는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이 전쟁은 러시아의 공격인가, 아니면 서방 세계에 맞선 방어인가?”

신간 《서방의 패배》는 이 도발적인 문제 제기에서 출발한다. 1970년대 소련 붕괴를 예측해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토드는 이번에는 전쟁을 통해 드러난 ‘서방의 구조적 약화’를 분석한다. 이를테면 “러시아는 정말 팽창국가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서방 담론은 전쟁을 ‘푸틴의 제국주의적 확장’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토드는 이를 단순화된 해석이라고 본다. 러시아는 이미 세계 최대 수준인 1700만㎢의 영토를 보유하고 있고, 인구 감소라는 내부 과제에 직면해 있다. 새로운 영토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공간을 유지하는 것이 더 큰 과제라는 것이다. 그는 크림반도와 돈바스를 ‘역사적·언어적 러시아 공간’ 으로 규정하며, 이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을 영토 확장이 아닌 정체성 방어의 차원으로 해석한다. 이는 서방 중심 프레임을 전복하는 시각이다. 

책의 핵심은 경제 분석이다. 2014년 이후 이어진 서방의 제재, 그리고 전쟁 이후 강화된 금융·에너지 봉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경제는 붕괴하지 않았다. 토드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러시아는 장기간 제재에 대비해 경제 구조를 재편해왔다. 둘째, 에너지·식량 자원을 보유한 국가는 완전한 고립이 어렵다. 셋째, 중국·인도·중동 등 비서방 국가들이 제재 전선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는 러시아의 생존을 ‘서방 세계의 상대적 약화’와 연결 지으며, 세계 질서가 단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토드는 우크라이나를 전적으로 ‘피해자 국가’로만 보는 시각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재정·군사 지원에 의존해 유지되는 구조를 지적하며, 이번 전쟁이 단순한 침공 사건이 아니라 강대국 간 체제 충돌의 결과라고 본다. 또한 러시아의 패배를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국가는 주요 7개국(G7)과 일부 동맹국에 국한된다고 주장한다. 세계 인구 다수를 차지하는 글로벌 남반구 국가들은 실리 외교를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방의 ‘국제사회’라는 표현이 과장됐다는 것이다. 《서방의 패배》는 중립적 보고서가 아니다. 분명한 문제 의식을 가진 저작이며, 읽는 이에 따라 불편함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가치는 동의 여부에 있지 않다. 전쟁을 바라보는 단일한 시각에 균열을 내고, 국제 질서의 변화를 구조적으로 읽어내려는 시도에 있다. 
 

저자는 묻는다. “이 전쟁에서 진짜 흔들리고 있는 것은 러시아인가, 아니면 서방 문명인가.” 이 책은 러시아의 건재함을 말하기보다, 세계 질서의 재편을 말한다. 그리고 그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의미는 러시아를 옹호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전쟁을 해석하는 시각의 ‘기울기’에 주목하게 만든다는 점에 있다. 국내 언론 보도의 다수가 서방의 관점에 기반해 전쟁을 평가해왔다면, 토드의 책은 그 경사면을 반대 방향에서 비춰보게 한다. 특정 입장을 강요하기보다는, 우리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진 정보 환경 속에 있는지를 자각하게 만든다. 우크라이나 전쟁 4년. 전황은 여전히 불확실하고, 국제 질서는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서방의 패배》는 동의 여부와 별개로, 단일한 해석 틀에 균열을 내는 텍스트다. 전쟁을 둘러싼 담론이 보다 입체적으로 확장되기 위해 필요한 질문을 던진다. 서방의 시각에 익숙해진 독자에게, 이 책은 불편하지만 필요한 독서일지 모른다. 전쟁의 승패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전제로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일 것이다.

최승현 에디터 buyrussia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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