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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우크라 간 3자 평화 협상이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두 차례,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 차례 등 3번에 걸쳐 진행됐지만, 논의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는 분석이 유력한 가운데, 타결의 실마리가 어쩌면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나올 수도 있다는 느낌이다. 개전 초기에 군 최고 지휘관으로서 곧 무너질 것처럼 위태위태한 군사 방어망을 단시간에 제대로 세운 잘루즈니 전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현 주영 우크라이나 대사, 이후 잘루즈니로 표기)이 군 통수권자(젤렌스키 대통령)를 대놓고 비난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국가 안위의 책임은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를 도와 국가 방위에 나선 군 총사령관이 군 통수권자의 과거 결정을 공격한다는 것은, 자칫하면 적전분열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미-러-우크라 3자 협상에서 입지가 취약한 우크라이나에게 잘루즈니의 언행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권위를 뒤흔든 에너지 부문의 '권력형 부패 스캔들'과 함께 협상 테이블에서 아킬레스건(腱)이 될 수도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불화 끝에 2024년 2월 영국 주재 대사로 군복을 벗은 잘루즈니는 지난 2년 간 우크라이나 내부 정치적 변화에 사실상 눈과 입을 닫아 왔다. 언론들이 잘루즈니가 대통령의 가장 유력한 대항마라는 사실을 전제로, 그의 통상적인 발언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가 하면, 잘루즈니 선거 캠프가 마련됐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의 무거운 입은 좀체 열리지 않았다.
그가 오랜 침묵을 깼다는 것은, 우크라이나 내부의 정치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현실 인식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두 가지다. 하나는 미-러-우크라 3자 협상이 교착상태라는 분석에도 불구하고, 타결 가능성이 높다는 정무적인 판단이다. 협상 타결될 경우, 2, 3개월 안에 선거(총선과 대선)가 치러진다. 다른 하나는 우크라이나 권력 내부의 변화다. 에너지 부문 권력형 부패 스캔들로 젤렌스키 대통령의 오른팔 격인 예르마크 대통령 실장이 실각하고 그 자리를 군 정보총국(GUR)의 부다노프 국장이 이어받았다. 정보 전문가이면서 대중적 지지도가 높은 그의 중앙 정치 무대 등장은 젤렌스키 vs 잘루즈니 간의 1대1 선거판을 젤렌스키 vs 잘루즈니 vs 부다노프 간 3파전으로 바꿔놓았다. 덩달아 잘루즈니의 지지도가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잘루즈니로서는 비록 몸은 해외(영국)에 있지만, 국내에 자신의 존재 가치를 각인시킬 필요성을 느낄 만하다. 그가 군총사령관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젤렌스키 대통령을 직격한 한 이유로 보인다.
그가 젤렌스키 대통령을 공격 표적으로 삼은 것은 크게 3가지다. △2023년 반격 작전 수립시 대통령의 실책 △전쟁 발발 직후 자신에 대한 위해및 협박 △전쟁 발발 전 계엄령 발령 건의를 무시한 대통령의 현실 인식 부족이다. 잘루즈니가 포문을 연 것은 지난 18일 AP통신과의 회견에서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그는 2023년 여름 우크라이나의 반격 작전이 실패한 이유로 대통령이 필요한 자원을 제대로 배분하지 못한 전략상 실수를 들었다. 그는 "나토(NATO)와 공동으로 수립된 반격 계획은 모든 병력을 '하나의 주먹'처럼 한 곳(자포로제 전선)에 집중시켜 아조프해로 진출하는 것이었다"며 "그러나 (대통령은) 병력을 나눠 자포로제와 바흐무트 등 여러 방향으로 공격하도록 했다"고 비판했다. 군사력이 열세인 상태에서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은 작전인 병력의 집중과 전술적 기습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당시 서방 외신들도 우크라이나군이 남부 전선(자포로제)과 바흐무트 전선으로 병력을 분산한 것이 반격 작전 실패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보도한 바 있다.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약속과는 다른, 서방 국가들의 무기 지원 부족을 비난했다. 잘루즈니는 또 자신과 젤렌스키 대통령 사이에 국가 방어 전략을 놓고 깊은 갈등이 있었으며, 2022년 9월에는 국가보안국(SBU)이 자신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고 주장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면담 후 수십 명의 SBU 특수 요원들이 갑자기 사무실에 들이닥쳤고, 그 자리에는 10여 명의 영국군 장교도 있었다는 것. 기가 막힌 것은 SBU 요원들은 왜 왔는지, 무엇을 수색하는지 밝히지 않았다고 했다.
잘루즈니는 SBU 요원들이 문서와 컴퓨터를 뒤지는 것을 막고, 예르마크 당시 대통령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군을 동원해) 맞서겠다"고 대들었다. 또 바실리 말류크 SBU 국장에게 전화해 이유를 물었으나, "아는 바가 없으니 조사해 보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고 그는 폭로했다. 전쟁 전에는 총사령관실이 있는 건물(호텔)에 '스트립쇼 클럽'(나이트 클럽)이 입주해 있었는데, SBU 요원들이 이 '스트립쇼 클럽'에 대한 수색 영장을 받아 자신의 사무실에 처들어왔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고 그는 밝혔다. 잘루즈니는 "이를 SBU의 실수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따져 물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잘루즈니 총사령관실에 대한 SBU의 습격 소문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그가 이를 직접 확인한 것은 처음이다. SBU 측은 그러나 요원들이 잘루즈니 총사령관실을 찾아간 게 아니라 전쟁 전 입주한 기관(스트립쇼 클럽)을 압수수색하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AP 통신이 입수한 법원 문서에 따르면, SBU는 범죄 조직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스트립쇼 클럽'을 수색하기 위해 영장을 발부받았다. 하지만 스트립쇼 클럽은 전쟁 전에 이미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포로셴코 전 대통령과 가까운 블로거이자 전직 의원인 보리슬라프 베레자는 최근 유튜브 채널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세르게이(세르히) 크리보노스 전 특수작전부대 부사령관이 나와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SBU 요원들이 잘루즈니를 체포하기 위해 사무실로 들이닥치자, 그는 곧바로 특수작전부대를 불러 맞섰고, 키예프(키이우) 도심에서 총격전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을 겨냥한 위해 사건은 또 있었다. 전선 시찰을 나갔을 때, 현장 지휘관과 짧은 전화 통화가 끝난 뒤 잘루즈니가 머물던 건물에 미사일이 떨어졌다는 것. 베레자는 "엄청나게 두꺼운 벽 덕분에 목숨을 건졌지만 총사령관은 부상을 입었다. 만약 상처가 왼쪽으로 8~10cm만 더 갔더라면, 총사령관은 지금쯤 여기에 없었을 것"이라며 "SBU 특수부대의 적 지휘센터 공격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러시아 국영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이 2023년 5월 헤르손에서 미사일 공격을 받아 두부 폐쇄성 손상(머리를 가격당한 권투 선수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머리 손상/편집자)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그는 즉각 니콜라예프(미콜라이프)를 거쳐 키예프 군병원으로 옮겨져 두개골 수술을 받았다고 이 통신은 전했다. 미사일 공격 주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는다.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의 폭탄 발언 이후, SBU가 그를 협박하는 정도가 아니라 암살하려고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포로셴코 전 대통령 소유의 'TV 채널 5'의 진행자 야니나 소콜로바는 19일 "최고 사령관이 있는 키예프 도심의 한 호텔 나이트클럽(스트립쇼 클럽)에 대한 SBU의 수색은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을 암살하기 위한 시도였다"며 "수색 당시 나이트 클럽은 최소 1년 동안 문을 닫은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잘루즈니의 이같은 폭로전에 우크라이나 대통령실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포로셴코 전 대통령의 유럽연대당 소속 알렉세이(올렉시) 곤차렌코 의원은 대통령실은 잘루즈니가 AP 통신과의 인터뷰 발언을 철회하도록 설득에 나섰으나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잘루즈니의 인터뷰는 2월 13~15일 뮌헨 안보회의 직전에 녹음되었는데, 대통령실은 그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는 것이다. 곤차렌코 의원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뮌헨 연설에서 잘루즈니를 언급하며, "그를 마크 밀리 장군(전 미국 합참의장)에게 무기를 요청하러 보냈는데, 밀리 장군은 무기를 주지 않고 '참호를 파라고 했다'고 말한 게 웃긴다'"며 "순전히 거짓말이고, 잘루즈니는 밀리 장군에게 가지도 않았다"고 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AP통신의 잘루즈니 인터뷰가 타전된 18일 저녁 대국민 영상에서 "전사들의 용기만이 우리(우크라이나)의 외교적 역량과 강력한 외교적 입지를 보장한다"며 "전시에는 조국을 지키고 국민을 지켜야 할 때이므로 개인적인 문제는 나중으로 미뤄야 한다"고 말했다. 잘루즈니의 인터뷰 발언에 대한 대통령의 신중한 답변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친(親)정부 매체들은 잘루즈니 인터뷰를 거칠게 비판했다. 젤렌스키 행정부의 정치 전략가로 널리 알려진 블라디미르 페트로프는 유튜브에서 "잘루즈니가 히스테리적으로 폭발했다"며 "모욕감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친정부 논평가인 블라디미르 졸킨은 "잘루즈니가 2023년 반격 작전 실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할 뿐"이라며 "맡은 임무를 실패하면 남 탓으로 돌리는 것을 보면, 잘루즈니는 이미 장군으로서의 명예를 완전히 실추시켰다. 모두 선거 운동 때문"이라고 썼다.
이에 맞서 이틀 뒤(20일)에는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이 또 포문을 열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전쟁 발발 전에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다면, 러시아의 침공(러시아의 특수군사작전)에 더 잘 대비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잘루즈니는 "계엄령은 1월이나 늦어도 2월에 선포됐어야 했다"며 "마이크 타이슨(러시아군)과 싸우게 됐는데, 그전에 해본 싸움이라고는 동생이랑 베개싸움밖에 없었는데, 제대로 준비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나아가 "계엄령 문제를 여러 차례 제기했지만, 레즈니코프 당시 국방장관의 지지만 얻을 수 있었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것을 우려해 계속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그같은 상황에서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러시아군이 오데사에 상륙하는 것을 막기 위해 흑해에 기뢰를 설치했고, 일부 부대를 전략적으로 더 유리한 위치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도 했다.
4년전 개전 상황을 되돌아보면, 젤렌스키 대통령과 그의 가족은 전날 밤(2022년 2월 23~24일 밤, 푸틴 대통령의 군사작전 개시 명령 발표는 24일 새벽/편집자)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속에 평소처럼 평화롭게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24일 새벽 그의 아내는 멀리서 들려오는 폭발음을 들으며 서둘러 짐을 싸고 있었다고 한다.
가디언에 따르면 번스 미 CIA 국장은 2022년 1월 키예프로 날아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전쟁 임박을 경고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반응은 그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다"고 했다. 오히려 1주일 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전하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오는 5월은 늘 그랬던 것처럼 밝은 햇살과 (평화로운) 주말, 바비큐 (파티), 그리고 승리의 날이 될 것"이라며 "전쟁 경고에 흔들리지 말고, 식료품이나 생필품을 사재기 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곧바로 전쟁이 터지고 수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전투 지역에서, 또 러시아군의 점령 하에 들어가면서 대통령의 발언은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했다"고 가디언은 짚었다.
관심은 잘루즈니 전 총사령관의 향후 행보다. 그가 주영 대사직 사의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지난해 말부터 나돌았고, 새해 들어 두차례나 젤렌스키 대통령을 면담했다.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까?

현지 매체 '제르칼로 네델리'(주간 거울이라는 뜻)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잘루즈니에게 주영 대사에서 주미 대사로 옮겨갈 것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잘루즈니는 반대 의사를 표시하지는 않았지만, 오랜 기간 대사직 수행을 원치 않는다는 의견을 표명했다고 한다. 사실상 거부의사라고 할 수 있다. 스트라나.ua는 "올해(2026년) 선거를 실시할 가능성은 낮지만 내년(2027년)은 알 수 없다"며 "선거 운동은 올해 시작될 수도 있다"고 짚었다. 강력한 대항마인 잘루즈니를 대선 과정에서 배제하기 위해 그에게 주미 대사를 제안한 것도, 잘루즈니가 오랜 기간 해외 근무를 거부한 것도, 정치적으로는 납득이 가능한 의사 표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잘루즈니가 현직에서 정치적 발언을 계속한다면 대통령실에서 그를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우크라이나 법무부는 그의 입을 닫게 만들 실질적인 방안을 찾을 수도 있다. 예컨대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이 빠르게 러시아군에게 함락된 것에 대한 책임 잘루즈니 총사령관에게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2023년부터 나왔다. 그에 대한 형사 처벌 여부는 양날의 칼이 될 게 틀림없다. 전쟁 초기 '전쟁 영웅'으로 부상한 그를 뒤늦게 형사처벌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그의 정치적 욕망을 중간에 꺾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의 인기를 더 높여줄 수도 있다.
잘루즈니에게도 고민은 있다. 지지율 하락이다. 액티브 그룹이 1월 31일~2월 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잘루즈니의 지지율은 지난해 12월 16.6%에서 1월 14.9%, 2월 10.8%로 떨어지고 있다. 반면 부다노프 대통령 실장의 지지율은 12월 7.3%, 1월 6.3%, 2월 9.4%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17.8%, 21.7%, 22.3%로 상승세다.
결과가 다른 여론조사도, 물론 있다. '제르칼로 네델리'에 따르면 한 선거 캠프 사무실이 2월 1일~3일 실시한 비공개 여론조사 결과, 지지 후보를 결정한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잘루즈니가 19.2%(1월 22%에서 하락), 젤렌스키 대통령이 34%(1월 30%에서 상승), 포로셴코 전 대통령이 10.6%, 부다노프 대통령 실장이 9.1%(1월 13%에서 하락)의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전체 응답자를 대상으로 한 결선 투표 지지율 조사에서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잘루즈니와 맞붙을 경우, 30%의 득표로 잘루즈니(35%)에게 뒤지고, 부다노프 실장과 맞붙을 경우 31%로 앞서는(부다노프 27%) 것으로 나타났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