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기사
11일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미국과 이란 간에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이 열린다. J.D. 밴스 부통령을 비롯한 미국 대표단은 9일(현지 시간) 파키스탄을 향해 떠났다. 밴스 부통령은 "(협상에서) 이란이 선의로 행동한다면, 미국은 도움을 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란 대표단의 출발 여부는 엇갈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 대표단이 9일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했다고 보도했지만, 이란 국영 통신사 타스님은 이란 대표단이 아직 테헤란에 있다고 이튿날(10일) 반박했다. 이란 국영 프레스 TV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헤즈볼라 공격이 중단되지 않아 대표단이 이슬라마바드 출발을 여러 차례 연기했다"고 전했다.
이란 대표단을 이끄는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은 "레바논 휴전과 이란의 동결 자산 해제가 이슬라마바드 대면 협상의 전제 조건"이라며 "아직 충족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조건들이 이행되지 않는다면, 이슬라마바드 미-이란 협상은 시작하기도 전에 좌초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일각에서 나온다.

가까스로 성사된 이슬라마바드 협상을 앞두고 미국과 이란 간의 기싸움이 거센 가운데, 이번 협상이 어떻게 끝나든 미국의 이란 공격은 70년 전 영국과 프랑스가 수에즈 운하의 통제권을 두고 이집트와 다툰 '1956년 수에즈 위기'(제2차 중동 전쟁)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무성하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9일 '수에즈 운하에서 호르무즈 해협까지: 이란 전쟁 이후 미국은 70년 전 영국과 프랑스처럼 세계적 리더십을 잃게 될까?'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미국 패권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서방 언론에서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며 "영국 주간지 뉴 스테이츠맨은 '군사 신정 독재 정권(이란)이 제국주의적 미국 패권의 붕괴를 촉발시켰다'고 썼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70년 전 1956년에 수에즈 운하를 둘러싸고 발생한 국제적 군사 분쟁과 유사한 점을 드러낸 것도 흥미롭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영국의 역사학 교수 해럴드 제임스는 6일(현지 시간)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올린 기고문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과거(1956년) 수에즈 운하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집트를 공격한 역사를 거론하면서 "미국이 중동에서 교착 상태에 빠지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1956년 수에즈 운하 위기가 영국과 프랑스 제국주의의 종말을 알렸듯이,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 역시 '수에즈의 순간'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수에즈 운하의 위기는 1956년 7월 이집트의 민족주의 지도자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이 아스완댐 건설 자금을 마련하고 탈(脫)식민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가 운영권을 가진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면서 시작됐다. 그해 10월 이스라엘이 수에즈 운하와 접한 시나이 반도를 공격했고(제 2차 중동전쟁), 영국과 프랑스도 곧바로 공습에 가담했다. 위협을 느낀 나세르 대통령은 자폭하듯, 수에즈 운하에 수십 척의 배를 가라앉혀 선박 통행을 막았다. 그렇게 수에즈 운하는 6개월 간 폐쇄됐다.
나무위키 등에 따르면 국면 전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양대 강대국으로 등장한 미국과 소련에 의해 이뤄졌다. 공산 물결의 확산 저지에 몰두하던 미국의 아이젠하워 정부는 영-프 두 나라가 자신과 상의 없이 이집트를 공격해 중동의 지정학적 균형을 깬 데 격분했다.
더욱이 그해 11월 4일 소련의 탱크가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로 진입해 헝가리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올해 70주년을 맞은 헝가리 민주화 운동은 12일로 예정된 헝가리 총선에서도 친(親)러, 친서방 세력 간 이슈로 떠오른 상태다. 민족주의적 민주화 운동을 부추긴 혐의로 당시 헝가리의 너지 임레 총리는 소련군에 의해 루마니아로 끌려가 처형되고 강경파 친소 인사가 정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수에즈 운하 문제에 발목이 잡힌 서유럽 진영은 그 과정에 대응할 여유가 없었다.
소련은 또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한 이집트를 감싸며 영-프-이스라엘의 무력 사용에 핵 위협을 가했다.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에서 물러섰고, 미국도 철군을 거부한 영국과 프랑스에 대해 석유 및 금융 제재를 가했다. 두 나라로 석유 운송을 중단하는 한편, 산유국들에게도 수출을 금지하도록 압력을 가하니, 수에즈 운하를 둘러싸고 영-프-이스라엘 vs 미-소 간 대결이 펼쳐졌다.


미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소련의 결의안을 지지했다. 압력을 받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들은 영-프 두 나라에 대한 석유 금수 조치를 도입했다. 파운드화를 매각하고 재정 지원을 거부하는 미국의 금융 제재로 영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도움을 요청하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렸다. 그 결과, 영-프 두 나라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기구의 주도 아래 경제 자유화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광대한 식민지 영토를 갖고 있으며 중동마저 계속 영향권 하에 두고 싶었던 영-프 양국에게 수에즈 위기는 '전후 세계 질서가 완전히 변했다'는 점을 실감하게 했다. 수에즈 사태를 계기로 중동·아프리카 일대의 국가들이 잇따라 독립을 선언하고(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 체제 붕괴), 미국과 소련이 세계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양강 구조'로 변했기 때문이다.
특히 중동의 경우, 수에즈 위기 이후 약 20년 간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주도하는 '키신저 안보 시스템' 체제가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했다. 미국은 걸프지역 산유국들에게 안보를 보장하고 그 대신 산유국들은 석유를 오직 미국 달러로만 판매한 뒤 그 수익금을 미국에 투자하는 시스템이다. '페트로 달러'라는 용어는 여기서 시작됐다. 미국의 항공모함(안보 보장)과 페트로 달러로 상징되는 중동의 이같은 체제는 반세기 동안 거의 변함없이 유지돼 왔다.
물론,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50년 석유 구매 계약은 2024년에 만료됐고 OPEC+ 산유국들은 결제 통화를 다변화하기 시작했다. 달러의 결제 비중은 10년 전 거의 100%에 달했다가 현재는 거의 80%선까지 떨어졌다.
중동의 '키신저 체제'에 유일하게 반기를 든 나라가 이슬람 혁명을 거친 이란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마저 '페트로 달러' 체제로 복귀시키려다 결국 전쟁을 피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에 이어 이란의 에너지 자원 통제권에 대한 욕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낸 이유다.
미-이란 협상에서 가늠이 가능하듯, 이란은 아직 이번 전쟁에서 패했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전쟁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권을 확보했다. 미국과 국제 사회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지만, 이란은 미국에 제시한 '10개항의 평화 계획'을 통해 전쟁 후에도 호르무즈 통제권 유지 계획을 분명히했다.

러시아 경제 전문 매체 비즈니스온라인은 미-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이 한달쯤 지속된 3월 31일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에도 현재에도 해상 항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며 "70년 전에는 수에즈 운하였고, 현재는 호르무즈 해협"이라고 지적했다. 국제정치 전문가인 알렉산드르 쿠즈네초프는 이 매체 기고에서 "미국이 중동에서 대영 제국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망했다.
이슬라마바드 협상이 어떻게 끝날지 예측은 불가하다. 그러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교착 상태에 빠지더라도,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확보한 이란은 승자로, 이 해협의 해상 통제권을 사실상 이란에게 넘겨준 미국은 패자로 자리매김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의문시되고, 이란과 그 동맹국인 러시아, 중국이 빈 자리를 치고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공교롭게도 이란-러-중국은 세계 경제의 탈(脫)달러화를 추진 중이다. 따라서 걸프 지역이 '페트로 달러'의 영향권에서 '페트로 위안'으로 대체될 위험도 높아졌다.
실제로 친트럼프 성향의 린지 그레이엄 미 상원의원은 지난 6일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달러에 대한 공격"이라며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과 대가로 위안화를 받는 것에 대해 분노하기도 했다.
물론, 지정학적 변화는 하루 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영국이 중동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잃은 것은, 수에즈 위기 10년 후인 1968년, 해럴드 윌슨 총리가 "수에즈 동쪽에는 단 한 명의 영국군도 없다"고 천명하면서 현실화했다. 대영 제국이 수에즈 위기를 극복하는데 실패한지 10년 만에 중동에서의 모든 영향력을 잃은 것이다.
분명히 세계적인 변화는 '관성'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고, 이란 전쟁으로 드러난 방향은 명확하다. 국제사회가 다극화로 가는 길목에서 이란 전쟁은 미국의 1극 체제(패권)가 끝나가고 있음을 재확인하는 결정적인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적어도 무력과 경제력(관세 부과 정책)을 앞세워 세계적 패권을 유지하려는 트럼프 미 행정부의 전략적 접근 방식은 이란 전쟁을 계기로 크게 흔들릴 것으로 봐야 한다.
미국이 당초 계획대로 무차별적인 공습에 이은 전격적인 지상 작전으로 이란을 소위 '석기 시대'로 돌릴 수도 있다. 이란 정치및 군사 지도부가 미국이 협상을 구실로 시간을 벌다가 결정적인 공격을 가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럴 만한 이유도 분명히 있다. 이란 대표단이 스티브 위트코프 미 대통령 특사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와 만나 핵 협상을 계속하며 양보할 의사를 표명했던 지난 2월 28일,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기습적으로 이란을 공격했다. 지난해 6월의 이란 핵시설 폭격(12일 전쟁)도 비슷한 상황에서 벌어졌다. 또한 1999년 미국 주도 나토(NATO)군의 세르비아 폭격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서방 지도자들과 코소보 문제 해결을 논의하던 중에 시작됐다.
이란 지도부는 자국의 석유 수출항이 있는 하르그섬이 함락되거나 에너지 기반 시설이 공격받을 경우, 미국과 동맹을 맺은 이웃 국가들의 해수 담수화 시설을 파괴하고, 바레인과 아랍에미리트(UAE)의 일부 지역을 점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해수 담수화 시설이 파괴된다면 두바이, 아부다비, 도하와 같은 중동의 '인공 낙원'은 하루아침에 사라질 지 모른다. 사막이 도시를 뒤덮고, 초현대적인 고층 빌딩들이 폐허로 변할 수도 있다.
UAE의 일부 지역을 점령하겠다는 이란의 경고 또한 허풍이 아니다. 사산 왕조(3~7세기)와 사파비 왕조(16~18세기) 시대에 바레인과 UAE는 페르시아 제국의 일부였다. 하물며 일부 이란인들은 이를 역사와 정의를 회복하는 행위로 믿고 있다. 이란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지상작전을 펼 경우, 미국이 부담해야 하는 위험도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제임스 교수는 르몽드 기고에서 "영-프랑스의 수에즈 운하 (공격) 실수는 다행히 단기간에 끝났지만, 두 나라를 굴욕에 빠뜨리고 그들의 국제적 야망을 무너뜨렸다"면서 "미국도 현재 중동에서 교착 상태에 빠지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