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의 봄철 공격이 본격화할 태세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수풀이 우거지면, 공격 부대는 은폐·엄폐가 쉬워 작전을 펼치기에 훨씬 유리하고 안전하다. 공중에 늘 떠 있는 적 드론의 매서운 눈을 피할 수 있다. 겨울 내내 소강상태를 보이던 우크라이나 전선은 조만간 러시아군의 공세로 금새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합참의장 격)겸 특수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총사령관은 21일 "러시아군은 모든 전선에서 공세를 펼치고 있다"며 "올해들어 1,700㎢ 넘는 땅과 80개 마을을 점령했다"고 발표했다. 지난달(3월)에만 34개 마을(700㎢)을 차지했다고도 했다.
그는 또 "돈바스 지역을 구성하는 루간스크주(州)를 완전히 장악했으며(4월 1일엔 99.7% 점령 발표), 도네츠크주에서는 슬라뱐스크-크라마토르스크-콘스탄티노프스카 요새 지역에서 진격하고 있다"며 "선봉대가 이미 슬라뱐스크에서 약 12㎞, 크라마토르스크에서 약 7㎞ 앞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크라스니 리만의 약 70%가 러시아군의 통제 하에 있으며, 쿠퍈스크-우즐로바야 남쪽 오스콜 강 동쪽 기슭에서의 전투가 끝나면서 그 지역(쿠퍈스크) 우크라이나군은 포위됐다"고 강조했다.
남쪽 굴랴이 폴레 전선에 대해 그는 우크라이나군이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주(州)와의 접경 지역인 굴랴이 폴레 북쪽 480㎢를 해방(탈환)했다는 주장을 "작전 실패를 덮기 위한 정보 캠페인"으로 일축한 뒤 "러시아군이 굴랴이 폴레 서쪽에서 공세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우크라이나 북부 수미주(州)와 하르코프(하르키우)주에서 안전지대(완충지대)를 계속 구축 중"이라고 덧붙였다.
당연히 우크라이나 측은 그의 발표들을 확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키릴 부다노프 우크라이나 대통령 실장은 23일 "우리는 (전쟁에서) 지고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면 위험이 뒤따른다"며 "오는 9월까지는 러시아군의 공세와 우크라이나군의 돈바스 철수를 요구하는 워싱턴 압박에 시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의 발언은 11월 미국의 중간선거, 9월 러시아의 총선을 앞두고 미-러 양국이 군사작전이든 평화협상이든 성과를 거두기 위해 거칠게 나설 것이라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그는 "영토를 잃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잘랐다.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의 발표를 반박하던 우크라이나 측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이틀 뒤(23일)부터다. 우크라이나군 정보 매체 '딥 스테이트'는 23일 "우크라이나군이 요새 지역인 코스탄티노프카(코스안티니우카)를 사수하는 데 점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가장 심각한 것은 보병 병력의 부족"이라고 전했다. 딥 스테이트는 현지 전투 상황 지도를 게시하며 "전선 방어는 주로 드론에 의해 유지되고 있지만, 공격에 나선 러시아군의 '끝도 없는' 병력이 콘스탄티노프카의 방어선을 '천천히 무너뜨리고' 있으며, 건물들을 조직적으로 파괴해 방어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러시아군은 코스탄티노프카 남동쪽 외곽의 무너진 주택가에 숨어 드론 공격을 피한 뒤, 시내로 진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도 했다.
이튿날(24일) 우크라이나 군사 블로거 '섀도우'는 "러시아군이 콘스탄티노프카 서쪽의 '들린나야 발카'에 진입해 도시를 포위 공격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썼다. 러시아군이 콘스탄티노프카로 향하는 우크라이나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면서 도시를 포위할 것이라는 소식은 이미 지난 1월에 나온 바 있다.
러시아군은 또 봄철 공세를 앞두고 우크라이나인들이 등록한 위성통신 기기인 '스타링크'의 단말기를 대량으로 구매하고 있는 것으로 23일 전해졌다. 러시아 독립(반정부) 매체인 '베르스트카'(Вёрстка, 뵤르스트카로 읽는다. 2022년 4월 창간/편집자)는 이날 "예상됐던 대로 우크라이나인들이 돈을 받고 러시아군 측에 스타링크 설치를 도와주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인들은 그 대가로 수백 달러를 챙기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군인들마저 이 일에 가담한다"고 보도했다. 베르스트카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SNS)에는 스타링크 설치에 관한 광고가 많이 올라와 있는데, 그중 한 군데에 연락했더니, 즉시 단말기를 설치하고 최대 1년까지 구독을 신청해 주겠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가격은 기기 모델과 구독 기간에 따라 7만4,000~13만8,000루블이었다. 판매자는 중국에서 배송된 스타링크 단말기 사진을 보여주면서, 우크라이나에서 검증 및 활성화 과정을 거친 기기들을 우크라이나 시민이나 법인의 단말기로 등록한 뒤 우편으로 여러 지역을 거쳐 러시아 쪽으로 배송된다고 설명했다. 러시아로 운송되는 동안에는 안전을 위해 스타링크 전원을 끈다고도 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러시아가 전선에서 스타링크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올해 초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엑스) CEO와 우크라이나에 있는 모든 스타링크 단말기를 끈 뒤 새로 등록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군이 그동안 전선에서 써온 단말기가 차단되면서 부대간 혹은 공군·드론군과 지상군 간의 합동작전시 소통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더욱 충격적인 소식은 우크라이나군 제14독립기계화 여단이 결사항전 중인 쿠퍈스크 전선에서 흘러나왔다. 이 곳은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사령관이 21일 전과 발표에서 우크라이나군이 포위됐다고 주장한 지역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굶주림으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제14독립기계화여단 제2대대 소속 병사들의 지친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23일 온라인에 올라왔다. 페이스북의 메타가 운영하는 소셜 네트워크(SNS) '스레드'(인스타그램과는 달리 텍스트 콘텐츠가 중심이 된다/편집자)를 통해서다. 게시자는 "식량도 물도 없이 병사들은 오랫동안 진지에 고립돼 있지만, 지휘부는 아무런 응답도 없다"며 "굶주린 병사들이 빗물만 마시다가 의식을 잃어가고 있다"고 썼다.
사진들이 우크라이나 사회에 충격을 안겨주자 국방부는 해당 진지에 대한 보급이 차질을 빚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여단장이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병력 교체및 순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방부의 발표와는 달리, 이튿날(24일) 제14여단 여단장과 직속 상관인 제10군단 사령관이 경질됐다. 현장 지휘 책임을 물은 것이다.
스트라나.ua는 24일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 기사중 '전황'(Ситуация на фронте) 코너에서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는 쿠퍈스크 전선에 고립된 병사들의 비참한 사진들이 공개된 후 제14여단 여단장을 해임하고 제10군단 군단장을 강등시켰다"며 "지휘관들에게 실제 상황을 은폐한 책임을 물었다"고 썼다. 현지 지휘관들은 일부 진지의 함락과 보급 문제, 특히 특정 지역의 식량 부족 문제를 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매체는 "제14여단 사건은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사령관의 발표를 부분적으로 뒷받침한 것"이라고 짚었다.
앞서 지난 10일에도 스트라나.ua는 러시아군 병력 손실에 관한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의 발표를 믿을 수 없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고위 당국자는 지난 몇 달 동안 러시아군의 병력 손실이 전쟁 발발 이후 최고 수준에 달했다고 주장해 왔다. 특히 미하일 표도로프 국방장관은 갓 취임한 지난 1월 "러시아의 전해(2025년) 12월 사상자 수(사망자와 중상자)가 3만 5천 명에 달해 역대 최다"라고 발표했다. 이어 지난 3일에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 한달(3월) 간 러시아군이 전쟁 발발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를 냈다"고 주장했다. 그가 제시한 수치는 '3만 5천 명 이상'으로, 표도로프 장관이 주장한 2025년 12월과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언급한 3월 사상자 수가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가 발표한 자료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는 4월 1일 기준 러시아군의 사망및 부상자 수를 129만8,730명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한 달 전인 3월 1일에는 126만6,770명. 그 차이는 3만1,960명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주장한 3만 5,000명보다 3,000여 명이 적다. 표도로프 장관이 지난 1월 발표한 사상자 수 3만 5천 명도 그 당시 절대로 '역대 최다'가 아니다. 역시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의 자료에 따르면, 2024년 12월부터 2025년 3월까지 러시아군의 사상자 통계를 보면, 재작년(2024년) 12월에는 4만8,670명, 2025년 1월 4만8,240명, 2월 3만6,570명, 3월 4만1,160명이었다. 벌써 만 단위부터 다르다.
우크라이나군 측이 제시한 러시아 병력 손실은 물론, 추정치다. 드론을 이용하면 최전선 전투 지역의 사상자 수를 어느 정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있지만, 그 병사가 전사했는지, 중상을 입었는지, 아니면 곧 복귀할 수 있을지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 모든 전쟁에서 적군의 사상자는 항상 과장되고 아군의 사상자는 축소되는 법이다. 이는 역사에 전쟁이 기록될 때부터 내려온 불변의 진리다. 우크라이나군의 발표를 통계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프로파간다'(정보전)의 일부로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 병력의 손실을 과장하는 것은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 성격도 갖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지역을 철저하게 방어하고 있으니, 돈바스를 무작정 러시아로 넘기라는 요구를 철회하라는 뜻이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말부터 러시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자는 구호를 내세워 '러시아군 사상자 매달 5만 명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거의 매달 발표한 러시아군의 사상자 수는 늘어났고, 마치 '5만 명' 목표에 근접해가는 것처럼 비쳤다. 그러다 보니 고위 당국자의 발표가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의 자료와도 어긋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스트라나.ua는 꼬집었다.
반면,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보다 훨씬 더 많은 사상자를 냈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시신 교환 수치를 들고 있다. 러시아는 그동안 우크라이나군 전사자 시신을 1,000구 보내면서 우크라이나로부터 겨우 30, 40구만 받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측은 진격하는 러시아군의 손에 러-우크라 전사자들의 유해가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반박한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군사·정치 지도부가 우크라이나군이 공세를 펼쳐 러시아로부터 수백 ㎢의 영토를 해방했다는 지난 몇개월 간은 어땠을까? 당시 알렉산드르(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은 우크라이나군이 전선에서 주도권을 잡았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러-우크라 간 시신 교환 비율은 변함이 없다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은 날이 갈수록 전쟁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는 21일 모스크바 외곽 오딘초보에서 열린 지방정부 행사에서 "특수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은 극도로 복잡하고 위험한 작전"이라면서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게 어떻게 끝날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한 러시아 군 장교는 "승리가 우리의 것이라는 데에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으며, 적군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맞장구를 치자, 푸틴 대통령은 "맞다. 그들도(우크라이나) 이 모든 것을 공식화하는 방법(종전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니 두고 보자"고 했다. 또한 "우리는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에 '안보지대(완충지대)'를 계속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올해 가을 총선에 러시아에 합류한 4개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게 된다"고 알렸다. 도네츠크, 루간스크, 헤르손, 자포로제(자포리자) 등 우크라이나의 4개 주도 이제 러시아 총선 지역에 포함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러시아군 점령지역은 차근차근 러시아 영토로 완벽하게 편입될 것으로 보인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